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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Nov 10. 2023

구축에서 아낄게 따로 있지

[28년산 구축 적응록] #2. 돈 좀 쓰는 게 맞는 구축 필수템

있을 때 잘해야 했다. 풍족하게 있어 소중함을 몰랐던 것들이 구축에는 적었다. 아니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집안에서 엘리베이터를 호출하거나, 방마다 디지털로 실시간 온도를 확인할 수 있거나, 들어감과 동시에 들어오는 화장실 센서등의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나도 염치가 있는데 28년 노년의 구축아파트에게 그런 걸 바랄 리가 없다. 꼭 있어야 하는데 없고, 있다 싶으면 성에 안 차게 적은 구축의 것들 이야기다.


신축에는 많이 있지만, 구축에는 없고 부족한 것들을 고치고 채우다 보니 돈이 들었다. 어차피 내 집도 아니고 뭘 해도 티가 잘 안나는 구축이라 생각하며 자꾸 가성비템, 최저가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살아보니 구축에서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 있었다.  오늘은 구축, 이 것만은 반드시 돈을 들여야 하는 것! 다른 건 아껴도 이것만큼은 사치를 부려야 하는 것들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열일하는 우리 집 멀티멀티멀티멀티탭

 

가장 먼저 멀티탭이다. 나는 살림에는 재능도 흥미도 없는 연차만 가득 찬 11년 차 주부다. 나의 부족함을 장비빨로 채우다 보니 집안 가전만 쓸데없이 4차 산업혁명을 땡겨 맞이했다. 의류 건조기, 음식물 쓰레기용 건조기를 따로 쓰고 있는 것은 물론 식기세척기, 로봇 물걸레 청소기, 정수기, 무선 핸디 청소기 등등. 우리 집에는 다른 집안에 비해 가전제품이 많은 편이다. 이렇게 가전을 사 모았던 건 어찌 보면 내가 신축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구축에 이사오고서야 들었다.

 

구축은 콘센트가 정말이지 현저히 적다. 생각해 보면 28년 전 우리 엄마도 세탁기, 냉장고, 유행이었던 착즙기 정도가 주방 가전의 전부였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 시절 지어진 이 구축 아파트에는 주방 콘센트가 고작 2개가 있다. 다른 방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정말이지 딱 1개 정말 많아야 2개 정도의 콘센트가 있다. 신축은 '이런 곳에도?' 싶은 곳에도 콘센트가 있었는데 구축은 꼽고 싶은 곳에도 콘센트가 없었다. 그렇게 멀티탭 라이프가 시작됐다. 멀티탭을 연결하기 위해 멀티탭을 연결하고, 꽂았다 하면 3-4개가 기본인 삶이었다.

 

과거가 궁금해지는 구축의 콘센트

그러다 전 세입자가 놓고 간 다용도실 멀티탭을 사용하다 일이 벌어졌다. 이상하게 건조기만 사용하고 나면 건조기 손잡이와 몸체에서 미세한 전기가 느껴졌다. 만지면 타다닥 소리가 나기도 했다. 이유를 알고 보니 오래되고 저렴한 멀티탭을 써서 사용가능 전기 용량을 초과하였고 그로 인해  전기가 누전되고 있던 것이다.


그 뒤로 멀티탭을 모두 교체했다. 나의 전기제품 사용전력을 확인하고 그를 감당할 수 있는 고용량 멀티탭을 구매했다. 콘센트마다 전기를 차단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는지도 확인했다. 요즘은 누선 되는 전기를 잡아주는 멀티탭도 있다니 이왕이면 이런 것을 구매하는 것도 추천하고 싶다. 집안 곳곳에 다 녹아버린 콘센트 구멍이 있는 걸 보면서 구축 사는 동안에는 멀티탭에 돈을 아끼지 말아야겠다 다짐했다.    

 

다음은 페인트다. 구축의 몰딩은 전체 인테리어를 하지 않은 이상 세월의 흔적을 정통으로 맞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 보니 보통 페인트로 칠을 하는데 페인트 칠만큼은 돈을 좀 주고라도 냄새 적고 무해한 고급 친환경 페인트를 칠해야 한다. 의외로 몰딩이 차지하는 부분이 집에서 꽤 되고 이 부분들을 냄새나는 페인트로 칠해버리면 두통과 오랜 시간 싸워야 한다. 구축은 지난 화에서 말했듯 집안 온기 때문에 환기도 쉽지 않다.

저렴한 페인트 냄새와 싸우는 양파와 식빵들


나는 집주인이 입주 3일 전에 초저가 페인트로 칠한 몰딩에 당첨이 됐고 페인트 냄새로 머리가 너무 아파왔다. 혹시 나처럼 이미 칠해져 버린 페인트 냄새 때문에 힘들다면 양파, 식빵, 숯 등으로 탈취에 노력을 기울여도 좋을 것 같다. 나의 기준 가장 효과가 좋았던 것은 식빵이었다. 저렴한 식빵을 잔뜩 사서 집안 곳곳에 잘 펼쳐 놓으니 식빵 표면이 마를 때쯤엔 냄새가 제법 사라졌다. 하루 이틀 간격으로 빵을 세 번 갈아주고 나니 냄새가 현저히 줄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은 도어락이다. 구축의 문은 정말이지 가볍다. 바람이 좀 부는 날은 손으로 직접 밀지 않으면 반자동으로 닫히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도어락은 최소한의 치안을 책임져 준다. 구축은 앞집과의 거리도 가까워 앞집 분들과 활동 시간이라도 겹치면 온몸으로 가리고 비밀번호를 눌러야 한다. 이 집에 남겨졌던 도어락은 마치 90년 대 집에서 쓰던 유선 전화기 같은 느낌을 줬다. 번호도 잘 안 눌리고 이런 걸로 집을 지킬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가볍고 허술해 보였다. 최저가 마니아 집주인의 씀씀이를 미루어 보아 번호가 눌리는 도어락을 교체해 줄 리 만무했다.

누르다 보면 과거로 갈 것 같은 타임머신 느낌의 예전 도어락


나는 전셋집임에도 자비를 털어 도어락은 교체했다. 같은 층이라도 집과 집 사이의 거리가 멀찌감치 떨어져 문 앞에서는 도무지 마주칠 일 없던 신축의 복도와는 달리 앞집과 틈만 나면 마주치는 구축 라이프에서 도어락을 채 가리지 못하고 문을 열고 닫아야 하는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무게감이 있고, 최소한 비밀 번호 입력 전 랜덤 숫자를 입력해야 하는 허수 기능을 지원 해주는 도어락 정도는 달아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사람들은 모두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돈을 쓴다. 신축 집에 쓰는 돈이 멋을 내고, 더 앞서가는 것에 중심을 두고 있었다면, 구축에 쓰는 돈은 불편함을 덜어내고 안전함을 더하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한다. 나이가 들어서는 번쩍거리는 보석과 화려한 화장보다 질이 좋은 옷, 기능성이 잘 가미된 신발, 깔끔함을 더해주는 향기 등이 더 중요한 것처럼 구축도 그렇다. 오래되었다고 포기하고, 해도 티가 안 난다고 무조건 계산기만 두들겨서도 안된다.

 

아끼지 않고 돈 좀 쓴 구축 필수템들 덕분에 나는 오늘도 맘 편하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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