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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Nov 08. 2023

[쓰는 인생] 브런치 먹지 말고 쓰자

#브런치 작가의 시작 

"밥 한번 먹자!" 


아이 엄마가 되고 이 말은 빈 말이 아닌 꼭 지켜야 하는 약속이 되었다. 무릎 나온 추리닝 바지에 민낯까지 모두 까 보여준 동네 엄마들과 아이들 등원 또는 등교 후의 브런치는 필수 활동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수의 사람들과 사교 활동을 즐기지 않는 내향형의 사람이다. 그리고 아이의 인생만큼이나 내 인생의 성취와 행복이 중요한 개인주의 엄마이기도 하다. 그러나 프리랜서 영상작가로 일하는 반업주부라 집에 있으니 불러내기 쉽고, 내 인생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 된 아이의 사교활동이 걸려 있다는 이유로 정기적으로 엄마들과 밥 한 번을 먹어야 했다. 내향형이고 개인주의고, 나의 성향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없는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아이가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생 3학년이 되기까지 엄마들의 브런치 자리에 불려 가 오전 아홉 시부터 이곳이 프랑스도 아닌데 프렌치토스트를, 내가 아메리칸도 아닌데 아메리칸 블랙퍼스트를 먹어야 했다. 나의 교육관과 다른 아이들의 학원 이야기와 교육 이야기도 들어야 했고, 정성스럽게 나의 시간을 내고 싶지도 않은 남편욕, 시어머니욕을 신명 나게 해대야 했다. 어떤 때는 보지 않는 돌싱들의 tv 출연도 관심 있는 척 들어야 했다. 그 자리에 내 관심사는 없었고, 엄마들도 내가 요즘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있는지는 묻지 않았다. 브런치에서 오고 가는 대화의 주인공들은 정작 그 자리에 없는 기묘한 식사가 매번 이어졌다. 

먹고 오면 소화제를 먹게 했던 기름진 아점


즐겁지 않았다. 다녀오면 기가 빨렸고, 그 자리의 대화는 마라탕과 탕후루보다도 영양가가 없어 보였다. 나는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나의 성장이 더 간절했다. 20세기에 태어난 엄마 주제에 21세기의 아이의 미래를 설계할 만큼 나는 미래를 내다보는 데 자신 있지 않았고, 내 아이의 인생은 제발 스스로 그려가길 바랐다. 엄마가 지금의 삶을 잘 살아간다면 그것이 아이 삶에 교과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뚜렷했다. 그리고 한 가지의 생각이 강하게 남았다.

       







나는 브런치를 먹고 싶은 것이 아니라 쓰고 싶었다.


나는 더 이상 나의 시간을 남의 이야기와 걱정을 하는데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꼭 필요한 자리가 아니면 밥 한번 먹자는 제안을 거절하기 시작했다. 나는 브런치를 먹고 싶은 것이 아니라 쓰고 싶었다. 이미 카피라이터로, 작가로 글을 쓰고는 있었지만 밥벌이로 쓰는 글이 아니라 내 얘기를 쓰고 싶었다. 그 시작으로 글쟁이들의 아지트,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나의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열망이 되지 못한 기대와 결심은 언제나 미루기 쉬운지라 마음만 먹은 채 올해도 다 가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에 "슬초 브런치 프로젝트"를 모집한다는 글을 봤다. 슬초 채널은 아이의 교육 때문에 보고 시작했었지만 아이 교육의 끝에는 언제나 좋은 내가 돼야 한다는 결론이 있었다. 운동하고, 쓰고, 읽고! 그중에 올 한 해가 가기 전에 마음만 먹었던 브런치 작가의 꿈을 이루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충동적으로 슬초 브런치 프로젝트에 신청을 했다.


막상 수업이 시작되니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평범한 내 일상을 평범하지 않게 쓰는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글에 수정을 주는 광고주도, 토를 다는 업체 사장도 없었지만 오히려 그들이 없다는 것이 어색했고, 내 글의 방향을 알 수 없어 더 힘이 들었다. 프로젝트를 함께 참여하며, 함께 쓰는 분들의 불타는 의지가 나의 글의 유일한 빨간펜이었다. 


내 평생 먹었던 그 어떤 브런치보다도 나를 행복하게 했던 브런치.

브런치 작가의 삶이 시작됐다. 


슬초 브런치 프로젝트가 쏘아 올린 작은 성취로 요즘 내 삶에 웃을 일이 많아졌다. 오랜만에 정말 신이 났다. 관심 없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를 쓴 다는 것이 이토록 기분 좋은 일인지 오랜만에 느꼈다. 내가 시작했고, 시작한 것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삶에 큰 용기가 되었다. 정기적인 엄마들의 브런치 자리에 끼지 않아도 나는 충만했고, 충만해진 나의 기분은 아이가 느꼈다.     


그렇게 한 번의 낙방 끝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내가 그동안 먹었던 그 어떤 브런치보다도 황홀했고, 만족스러웠다. 더욱 벅차오르는 것은 이 것이 시작이라는 것이다. 쓰고 싶던 이야기를 쓸 것이다. 내가 있는 내 이야기를 쓸 것이다. 작지만 매일매일 기록하고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좋은 삶을 살아낼 것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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