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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와따 Jan 07. 2023

필름 카메라

마음의 온도까지 맺히는 따듯한 사진이 좋다

작년 4월의 [제주도 한 달 살기]는 많은 추억을 남겼다. 좀 더 늦게 은퇴를 해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즐겼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게 가장 큰 아쉬움이다. 느닷없는 퇴직으로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머리를 비워야 한다는 강박으로 찾았던 제주였다. 이런 우리 부부의 기분 하고는 상관없이 대학생이었던 아이들에게는 한 번 더 놀 수 있는 기회였다. 한 달 사는 동안 아들과 딸이 따로따로 3일 정도씩 다녀갔다. 


딸아이와 살아오면서 그렇게 많은 대화를 했던 기억이 없다. 대한민국에서 오늘을 살아야 하는 아버지가 스물세 살의 딸과 살갑게 대화를 하는 시간을 갖는 건 힘들다. 나는 그저 ‘내 맘 알지’를 가슴에 품고 살았던 보통의 아버지였다. 제주도에서 함께했던 시간 동안 나는 요즘 것들의 사진 찍는 법을 배웠고, 열심히 배우는 아빠를 보면서 딸아이도 즐거워했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정해진 자리에서 포즈를 취하고 찍는 찰나를 서로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 내가 배운 이론이다. “하나, 둘, 셋” 찰칵! 이것이 사진을 찍는 매뉴얼 아니던가? 하지만 마치 천동설과 지동설이 충돌하듯, 딸아이의 행동은 충격적이었다. 내가 사진을 찍는 동안 계속 움직이면서 포즈를 취했다. 고개를 숙이고, 돌리고, 팔을 들어 이쪽저쪽을 가리키기도 했다. 앉았다 일어나기도 했으며 한 바퀴를 빙글 돌기도 했다. 걸어가는 것을 찍으라고 주문하기도 했고, 걸어오는 것을 찍으라 하기도 했다. 사진기의 높이는 허리춤이다. 나는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렀고, 그렇게 수 십장을 찍은 것 중에서 한두 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는 방식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사진을 찍는 내가 같이 걸으면서 찍기도 해야 했다. 이런 사진 찍는 방식에 지쳐 떨어진 것은 마눌님이다. “아휴, 그만 좀 하자”를 연발하며 나이 든 티를 냈다. 

     

나는 그동안 내가 가지지 못했던 가족들과의 ‘시간’에 대한 애틋함과 세상 신기한 사진 찍기 방법에 푹 빠졌다. 물론 딸아이의 칭찬이 한몫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사진 찍는 방법에 대해서 어떤 요구 사항에도 단 한 번의 불평이나 불만도 없이 다 들어주는 모습에 딸아이는 크게 만족했다. “친구들하고 놀러 가면 다들 이렇게 맘껏 찍고 싶은데 서로 찍어 주는 것이 힘들어서, 좀 더 찍어 달라고 하기 미안해서, 인생 샷 건지는 것이 힘들었는데 아빠가 다 해 주니까 너무 좋다” 면서 나를 한껏 추켜세웠다. ‘인정’에 목말랐던 것일까? 가족끼리 함께 하는 낯선 시간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었을까? 뭔지는 모르지만 딸아이의 칭찬은 정말 기분이 좋았다.

     



작년 말에 일본 여행을 떠나는 딸아이가 1회용 필름 카메라를 챙기는 것을 보았다. ‘그런 건 왜 가져가느냐’고 물었다. 요즘 대세란다. 아이폰으로는 아무리 찍어도 필름 카메라의 ‘갬성’이 나오지 않는다면서, 요즘 또래에서는 이것이 유행이라 친구들도 챙겨 간다고 한다.  신기했다. 우리는 디지털카메라가 나오기 전에는 필름을 사서 카메라에 넣어 사진을 찍었다. 그것을 인화하려면 또 비용을 지불하던 시대에 살았다. 아껴야 했다. 한 장에 150 원하는 인화비용이 아까워서 100원짜리를 찾으면 반가워했던 기억이 난다. 담배 한 갑이 5~6백 원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비쌌다. 설령 흔들리거나 눈을 감은 사진도, 야간에 찍은 사진이 토끼 눈으로 빨갛게 나오더라도 그것은 소중한 것이었다. 앨범에 보관했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사진은 아낄 필요가 없다. 수 십, 수 백 장을 찍어도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다. 찍고 삭제하고 필요한 것 한 장을 취하면 된다. 그렇게 세대 간에는 ‘다름’이 생겼다. 그런데 아껴서 찍어야 하는 구시대의 유물인 필름 카메라를(그것도 1회용) 소중하게 챙기는 딸아이를 보면서 왠지 모를 동지애가 생겼다. 


내가 제주도에서 요즘 것들의 사진 찍기를 이해하고 즐거워했던 것처럼, 내 아이가 옛날의 필름카메라로 우리 세대의 추억 만들기를 경험하는 것이 너무 기쁘다.  디지털이 점령한 세상이다. 손편지에서 이메일로, 그리고 SNS로. 클릭 몇 번이면 집 앞으로 배송되는 다양한 상품들. 풍경과 인물을 담아내는 디지털에서 마음의 온도까지 맺히는 필름으로 기억되는 세상도 어딘가 이렇게 계속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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