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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령 Oct 16. 2023

교수자의 의사소통능력에 따라 수업의 질은 달라진다.

학교 수업에 지친 교사를 위한 솔루션 

  교육학 수업을 강의하게 되면서 알게 된 새로운 영역은 '교수자의 의사소통능력'에 관한 부분이다. 

사범대 4년, 사범대학원 5년이라는 긴 시간의 학업과 연구 기간을 거쳤음에도

나는 여전히 학생들과 실제 마주하는 '교실에서의 강의 능력'에 대해 확고한 성장에 어려움을 느꼈었다.


   실제로 많은 초보 교사분들이나, 사범대를 전공하는 예비 교사분들, 교육현장을 경험한 중견 교사분들까지

자신들의 '교수학습능력- 교수자로서의 의사소통 능력(강의 능력/ 강의 기술)'에 대해 고민하고 배워본 경험은 많이 없을 것이다. 


  내 경우, 대학과 대학원에서 국어 교육 전공자로서 '국어라는 언어의 체계, 한국어 문학(현대/고전, 운문/산문), 다양한 글의 종류에 따른 읽기와 쓰기 교육, 화법/독서/작문/문법/매체 등등' 많은 전공 지식에 대해서는 배웠지만, 그 많은 지식 체계들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기초적인 '의사소통능력 향상법'에 대해서는 전달받은 경험이 없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다양한 형태(연령, 학업 욕구, 동기, 의욕, 학업 목표, 학습 태도, 학습 방법이 제각기 다른 수백명의 학습자)를 가르친다는 것에 대해 '무엇이 문제인가, 어떤 방법에서 접근해야 하나, 어떤 해결책을 써야하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은 부족한 것 같다. 


그런데 교육학의 마지막 챕터는 '교수자의 의사소통능력'이라는 단원이라는 게 의미심장하다. 

교육의 질은 결국, 교수자의 의사소통능력에 달려있다는 말이 아닐까?

화법에서 설득 전략 중에 '이성적 설득/ 감성적 설득/ 인성적 설득(감화)'라는 내용이 있다.

이 내용과 접목시켜 생각해보면, 교수자는 지식과 정보를 이성적으로 전달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하며, 학생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주는 감성적인 설득 능력도 있어야 하고, 인성적으로 존경받을 만한 태도와 품위를 갖고 학생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즉, 지식을 많이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재미없고 딱딱한 말투로는 학생들에게 동기 유발을 하기에 부족하며, 인성적으로도 존경받을 만한 품성을 갖추어야 학생들이 믿고 따라온다는 것이다.


평생교육 분야에서 다양한 강의 방법을 소개하다보면,

교수자는 정보 전달자부터 학습 촉진자까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부담이 있으며, 한정된 시간 내에 관련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설득하여 자신이 의도한 대로 판단,의사결정이 되도록 해야한다고 한다. 또한 교수자는 논리에 감성을 입히고 태도를 무기로 청중의 변화를 유도하는 의사소통 능력도 있어야 한다고 한다. ([출처] 평생교육방법론 11주 1강|작성자 태섭이)(블로그))



교수자의 의사소통능력. 너...무.... 어렵다!

훌륭한 의사소통능력을 갖춘 교사가 되어야만, 어떤 유형의 학습자를 상대로도 시간이 아깝지 않은 수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을 얼마만큼 아는가'보다는 깊이 알지 못해도 '재미있고, 쉽게,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능력'이 더 중요한 셈이다. 실제로 수업을 하다보면 수십 년을 같은 내용을 가르쳐도, 어떤 학생들을 대상으로 가르치냐에 따라 수업의 내용과 질, 깊이가 달라짐을 느낀다.


  학업 욕구가 충만하고 기본적인 학습 능력도 있으며, 목표도 뚜렷한 상위권 학습자들과,

학업 동기도 부족하고, 기초적인 학습 능력도 없으며, 목표도 의욕도 없는 하위권 학습자들에 대한 접근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초보 교사로서 내가 저질렀던 크나큰 실수는, 내가 아는 만큼, 많은 지식을 전달하려했던 '욕심'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수한 학생들이 많은 학교에서는 그런 교수법이 먹히기도 했다. 많이 전달하고 오래 수업하고, 많은 과제를 주고, 높은 목표를 설정할수록, 학생들은 눈에 띄게 성장하고 발전해갔다. 

그러나 기초학력이 낮고,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목표도 없는 학생들에게는 지식 따위는 필요없는 것이었다. 그 아이들에게는 그저 학교라는 감옥같은 공간에서 움직임을 통제당하며, 관심도 없는 교과서를 본다는 게 고역이자 고난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의미있는 지식'이란 아이들 삶과 연관되는 것이 아닐 바에야 의미 없는 시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최근에 교직에 회의감을 느낀 이유 중의 하나가, 이렇게 어렵고 전문적인 수업을 해야함에도 

학교 교육에서는 '수업의 질이나 학생들의 진정한 의미있는 성장' 등보다 단편적인 행정절차, 의미없는 생활지도와 규율에 의한 통제, 성장과는 무관하게 학교를 자신들의 자녀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라 착각하는 일부 무개념한 학부모님들... 등 다양한 요소들이 수업에 집중하기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교사는 다양한 학습 어려움을 겪는 학습자들에게 교육적 처방을 내리는 전문가이다. 

그리고 효율적인 강의 능력과 의사소통능력을 보유해야 하는 고난이도의 직업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유의미한 성장을 일으켜야하는 보이지 않는 치료와 변화의 과정이기에, 수업에서 교수자의 의사소통능력은 너무나 중요하다. 


  학교 수업에 지친 것이 비단 학생들만은 아님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소수의 학습자도 아닌 다수의 학습자들을 대상으로 장기적으로 강의를 하면서 느끼는 피곤함은 생각보다 우리 삶을 피폐하게 한다. 

오죽하면 선생님들이 집에 가서는 말을 잘 안한다고 하실까. 

'말을 하는 것'이 직업인 우리들에게 수업을 통해 '말을 잘 해야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생존 능력이라 할 수 있겠다. 


  수업에 지친 많은 선생님들이 자책하며 힘들어하시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업 전문가인 우리들의 고충을 알지 못하고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질타에도 지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집중하지 않아도 될 부정적인 요소들에 신경쓰다보면, 정작 교수자로서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수자인 선생님들을 존경하고, 믿고 따라야하는 것이란 생각도 든다. 학생들도 선생님들이 제대로 강의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나라도 변화하겠다는 마음과 의욕을 갖고 수업에 임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우리가 교수자로서 집중해야 할 것은 바로 우리 앞에 앉아있는 학생들의 눈빛과,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것, 그리고 함께 조율하며 한 시간의 수업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는 것일 테니 말이다. 

(세상의 모든 선생님들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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