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스톤은 왜 미용실 프랜차이즈에 주목했는가
최근 투자 업계에 던져진 하나의 소식은 낯설지만 흥미로운 질문을 담고 있었다.
세계 최대 사모펀드 블랙스톤이 대한민국 최대 미용 기업인 준오헤어의 인수를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시장이 주목한 것은 8,000억 원이라는 압도적인 매각 규모였다. 하나의 미용실 브랜드가 어떻게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이 낯선 딜의 이면에는 ‘사람의 손기술’이라는 아날로그 영역을 어떻게 현대적인 ‘플랫폼 비즈니스’로 진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숨어있다.
준오헤어의 성공 서사를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열쇠는 이들이 구축한 독특한 비즈니스 구조에 있다. 준오헤어는 단일 회사가 아닌 5개의 개별 법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법인은 창업자 강윤선 대표와 특수관계인이 지분을 나누어 가진 형태로 운영된다. 이 구조의 핵심은 단순한 프랜차이즈가 아닌, ‘공동 투자’ 모델에 있다.
돈만 있다고 가맹점을 열 수 있는 일반적인 프랜차이즈와 달리, 준오헤어의 원장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 10년 이상을 근무하며 자신의 실력과 인성, 그리고 조직에 대한 로열티를 증명해야만 한다. 이 혹독한 검증을 통과한 인재만이 본사와 함께 새로운 매장을 열 수 있는 ‘파트너’가 될 자격을 얻는다. 이는 단순한 고용 관계를 넘어, 개인의 성장이 곧 회사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이러한 모델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창업자 강윤선 대표의 경영 철학이 자리 잡고 있다. 1993년, 남편 몰래 집을 팔아 마련한 2억 원으로 당시 직원 16명 전원을 영국 비달사순 아카데미 유학에 보낸 일화는 유명하다. 사람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결국 최고의 자산이 된다는 믿음. 그 믿음이 지금의 준오헤어를 만든 근간이다. 별도 법인으로 운영되는 ‘준오아카데미’는 이 철학의 상징과도 같다.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통해 어느 지점을 방문하더라도 고객이 ‘평균 이상의 만족’을 경험할 것이라는 신뢰를 구축했고, 이는 미용이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손기술의 영역을 성공적으로 시스템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언론이 언급한 ‘매출 3,000억’이라는 숫자는 사실 본사의 재무제표가 아닌, 전국 180여 개 매장에서 발생하는 소비자 결제 총액을 추산한 금액이다. 5개 법인의 실제 합산 매출은 약 730억 원 수준. 하지만 블랙스톤이 주목한 것은 이 숫자의 이면에 있는 수익 구조와 플랫폼으로서의 잠재력이었다.
합산 매출 중 약 420억 원은 원가 부담이 거의 없는 프랜차이즈 수수료에서 나온다. 이는 매우 높은 영업이익률로 이어지며, 실제 5개 법인의 EBITDA(상각 전 영업이익)는 약 366억 원에 달한다. 하지만 8,000억 원이라는 가치는 단순히 높은 수익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블랙스톤이 본 준오헤어의 진짜 가치는 180개의 매장이 아니라, 그 안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수많은 ‘디자이너’ 그 자체에 있다. 각 매장에 10명의 디자이너가 있다면, 이는 180개의 가맹점이 아니라 1,800명의 독립적인 사업가가 존재하는 플랫폼과 같다. 디자이너들은 고정급이 아닌 성과 기반의 보수를 받고, 심지어 자신이 사용하는 의자(자리)에 대한 사용료와 비품까지 직접 부담한다. 이들은 단순한 직원이 아니라, 준오헤어라는 거대한 플랫폼 안에서 각자의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파트너에 가깝다.
본사는 이들에게 매장 위치 선정부터 고객 확보, 그리고 가장 어려운 직원(인턴) 채용 및 교육 문제까지 원스톱으로 해결해 준다. 독립해서는 결코 누릴 수 없는 안정성과 편의성을 제공함으로써, 최고의 인재들이 플랫폼을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가치를 창출하게 만드는 선순환 구조를 완성한 것이다.
8,000억이라는 가치에는 준오헤어가 보유한 2,000억 원(장부가 기준) 규모의 우량한 부동산 자산 가치도 물론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 딜의 본질은 과거의 자산이 아닌, 미래의 성장 가능성에 대한 베팅이다.
그 중심에는 ‘K-뷰티’라는 거대한 흐름이 있다. K-뷰티는 단순히 화장품에 국한되지 않으며, 미용과 스타일링을 포함한 전체 시장을 아우른다. 이미 동남아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준오헤어는, 모발 특성이 유사한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확장의 높은 잠재력을 증명했다. 블랙스톤과 같은 글로벌 자본은 준오헤어를 대한민국 1위 미용실이 아닌, 아시아 시장을 선도할 ‘K-헤어 플랫폼’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준오헤어의 매각 스토리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사람의 손끝에서 나오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가치를 어떻게 시스템으로 만들고, 그 시스템을 어떻게 플랫폼으로 진화시키며, 그 플랫폼을 어떻게 글로벌 트렌드에 올라타게 할 것인가. 8,000억 원의 가치는 그 질문에 대한 준오헤어의 성공적인 대답이다.
준오헤어의 사례는 2025년 현재의 기업 M&A 시장이 무엇을 가치있게 여기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과도 같다. 시장의 가치 판단 기준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해왔고, 지금 우리는 또 한 번의 거대한 전환을 목격하고 있다
과거, 특히 2010년대 후반부터 팬데믹 시기까지 시장은 ‘꿈’과 ‘가능성’에 열광했다.
플랫폼의 사용자 수, 시장 점유율, 그리고 폭발적인 매출 성장률이 기업 가치의 핵심 척도였다. 당장의 이익보다는 미래의 시장 지배력이라는 원대한 청사진에 기꺼이 높은 가치를 부여했다. 당시 수많은 유니콘 기업들이 막대한 적자에도 불구하고 조 단위의 가치를 인정받았던 것은, 바로 이 ‘가능성’에 대한 투자가 시대정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리 인상기를 거치고 AI 혁명이 본격화된 2025년 현재, 시장의 언어는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 시장은 ‘증명된 현금’과 ‘실용적인 AI’라는 두 가지 키워드에 응답한다. 과거처럼 막연한 가능성만으로는 더 이상 높은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 투자자들은 탄탄한 비즈니스 모델에서 나오는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기본값’으로 요구하며, 그 위에 AI와 같은 신기술이 어떻게 ‘실질적인’ 성장과 효율을 만들어내는지를 냉철하게 평가한다.
결론적으로 2025년의 M&A 시장은 꿈만 꾸는 기업이 아닌, 현실에 단단히 발을 딛고 미래를 증명하는 기업을 원한다. 준오헤어 딜 역시 마찬가지. 40년간 축적된 인재와 브랜드라는 대체 불가능한 자산에서 나오는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기반으로, K-뷰티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글로벌 성장’이라는 미래 가치를 동시에 보여주었기에 8,000억 원이라는 가치가 가능했던 것. 이제 시장은 더 이상 허황된 꿈에 투자하지 않는다. 잘 벼려진 현실 위에 그려진, 손에 잡히는 미래에 투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