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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Aug 27. 2023

저 끝 어둠 속에 있는 것

<인생의 일요일들> 5주 차.

    여행을 떠나는 친구를 배웅하고, 예매해 둔 영화 시간을 기다리며 극장 라운지에 앉아있는 일요일 오후. 영화 상영 시작시간까지는 30분 남짓한 시간이 남아있다.(그렇다, 오늘 일요일의 글쓰기는 30분 안에 쓰인 엉망진창의 글이 될 것이란 말이다) 이 장소의 조도는 무지하게 낮은데, 집중하기에도 잠들기에도 딱 알맞은 조도가 아닐까 싶다(집중과 잠들기의 간격이 좀 있다만). 층고도 매우 낮아서, 벙커 같은 느낌이 물씬 든다. 평소에 이곳은 항상 닫아 놨던 것 같은데, 오늘은 무슨 일인지 열려 있다. 덕분에 들어와 나도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글을 쓰며, 이곳의 사람들을 관찰한다. 연인의 모습도 보이고 홀로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도 보인다. 저 끝 어둠 속에 누군가가 쩍벌로 앉아있는 것 같은데 저게 사람인지, 등신대인지, 포스터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같은 공간에서 각기 다른 모습들로 있는 사람들, 사람은 때때로 싫은데 사람 관찰은 왜 대부분 재미있는 것인지?



    그러고 보니 이번 주 내내 무언가를 관찰하면서 보냈던 것 같다. 날아오는 공, 오랜만에 만난 사람의 변화, 좋아하는 샵에서 파는 다양한 물건들까지. 아, 이번주 내내 가 아니라 어쩌면 일평생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단지 의식적으로 살지 않아서 의식하지 못했을 뿐. 관찰이라는 명사의 뜻대로, 사물이나 현상을 주의하여 자세히 살펴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출근길 어제는 없었는데 오늘은 바닥에 떨어진 푸른 꽃의 모습과  어제보다 조금 자란 나뭇잎의 크기 같은 아주 작은 변화들까지. 항상 그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도 가만히 바라보면 약간의 변화가 있다. 먼지가 쌓여있다거나?



    그런데, 이 것들은 모두 진짜일까? 내가 관찰한 관찰의 결과가 언제나 참일까? 아니면 이미 지나간 시간 속에 남겨진 내 머릿속 상상일까? 상상은 무조건 가짜일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는 것이 의미가 있나? 물음표가 꼬리에 꼬리를 물 때쯤, 지난주의 글을 떠올렸다.



   '진짜든, 가짜든 상관없다. 관찰한 결과가 모두 참인지, 상상인지 조차도.' 내 내면이 보는 것, 내 내면의 믿음이 지닌 것만이 나를 새로운 곳으로, 즐거운 곳으로, 심상치 않은 곳으로 데려다줄 것이란 또 다른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오늘 저 끝에 있는 사람인지, 등신대인지, 포스터인지 모를 것은 그냥 무언가로 남겨두기로 했다. 그 실루엣이 내 상상력을 끌어모아 다른 이야기 속으로 데려가 줄 것만 같아서.






결국 삶도 여행도 우리의 여정을 이끄는 것은 내면이라는 점이에요. 특히 내면 저 아래, 밑바닥에 있는 ‘믿음’이 아주 큰 역할을 해요. -42p


파르테논을 떠올리며 제가 어떤 것을 중요하게 믿고 있는지 계속 생각해보고 있어요. 어떤 믿음이 좋은 일이 일어나게 할지 생각해보고 있어요. -4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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