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일요일들> 7주 차.
아주 오랜만에 늦잠을 자고 일어난 토요일 오전, 공복 유산소를 해야지 싶어 부랴부랴 나갔다. 바이크 쇼츠 + 드라이 핏 셔츠 + 햇빛을 막아줄 모자 그리고 선글라스 + 두꺼운 운동 양말 + 운동화 = 완벽한 프로 운동인의 모습..으로 따릉이를 신나게 타는 것이 나의 공복 유산소. 내 모습이 너무 프로 운동인 같은데 너무 따릉이라 웃음이 조금 나왔으나 자전거를 타며 바람을 맞으니 그런 웃음도 바람에 다 흩날려 날아가고 진짜 행복한 웃음만 얼굴에 남는다.
따릉이를 타고 반환점을 돌아 늦은 아점을 먹었다. 벌컥벌컥 얼음 가득 넣은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인스타그램을 보는데, 국립극장에서 하는 <아트 인 북스>의 한 셀러분의 드로잉을 본 것이 여행의 시작이 되고 말았다. 내 옷차림이 그곳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조금 고민했으나, 시간이 많지 않았다. 오늘 그분의 그림을 갖지 않으면 잠들 수 없을 것 같은 두근거림! 그렇게 버스를 갈아타고 도착한 국립 극장. 연극이나 무용을 보러 온 게 아니라 첫 방문이 북페어라는 게 또 좀 웃겼다. 같이 글쓰기 수업을 들었던 C님과 인스타그램 친구인 D님께 아주 재빠르게 음료를 전달하고, 나를 이곳으로 이끈 분의 부스를 찾아갔다. 그래 저 드로잉 때문이었다. 작가분의 이력도 궁금했고, 여행기도 궁금했다. 그렇게 책 한 권과 책갈피를 샀다. 그제야 페어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독립출판 북페어에만 있는 이 공기. 자신이 공들여 만든 이런저런 것들을 내보이는 자의 수줍음, 유쾌함, 반듯함, 꾸준함, 기타 등등. 이런저런 아름다운 단어들이 모여 만드는 이 분위기!
옷차림이 부끄러워 빨리 갈까 싶었는데, 이 분위기 속에 조금 더 머물고 싶었다. 마침 빈백이랑 파라솔들이 있는 쉼터도 준비되어 있었고. 파라솔이 만든 그늘에 빈 백하나 놓고 발라당 누워버렸는데, 이것이 또 그렇게 행복했다. 자꾸 새어 나오는 웃음은 어찌할 줄 모르겠고. 구매한 책을 읽다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책을 읽었다가 나 왜 이렇게 행복하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다가, 하늘을 바라보다 건물 꼭대기에 올라있는 까치를 보다가, 핸드폰으로 몇 장의 사진을 찍다가, 바람이 내 곁을 지나가고 있구나를 알아챈다. 솔솔 부는 바람. 선풍기 자연풍이 따라올 수 없는 남산 자락에서 부는 바람. 자전거를 타면 내 뺨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과 닮은 자연스러운 바람. 평화는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속에 있는 걸까? 왜 평화롭다고 느끼면 자꾸 잠이 오는 걸까?
한 시간 정도 그곳에 누워있다가 페어를 빠져나왔다. 한 시간 정도 뒤에 페어는 막을 내릴 것이고, 페어를 빠져나오는 내 등 뒤에 페어가 끝난 후에도 여전히 반짝일 사람들이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면 괜히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버스를 타고 순천향대학교에 내려 다시 자전거를 탔다. 한남대교를 건너 동호대교를 찍고 집으로 달리는 자전거. 공복 유산소로 자전거를 탈 때와 다른 바람이 내 뺨을 스치고 있었다. 아마 내 마음에 부는 또 다른 바람 때문이겠지?
진짜 에피다우로스는 우리 마음속에 있어요. 우리 마음이 평화를 느끼는 그때 우리는 에피다우로스에 있는 거예요. (...)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게 말을 걸어보는 것, 인간이 오로지 딱 한 사람 자기 자신에게 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이에요. 그렇게 해서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가치 있는 생각들로 불타오르는 곳이 있다면 바로 거기, 거기가 에피다우로스예요. -55~5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