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 덜컥수, 무리수, 자충수 아니고 묘수, 신의 한 수
사회생활 15년 차 워킹맘, IT 중견기업에서 12년을 일했다. 결혼한 지 3개월 만에 아이가 생겨 아이를 낳았다. 회사가 바쁘다고 해서 육아휴직은 2개월을 쓰고 복귀했다. 뼈를 갈고 일해준 덕분에 나는 그 해 최연소 여자 팀장이 되었고 인사고과에서도 늘 최상위 평가를 받았다. 스톡옵션도 두 번 정도 받아 우리 가족의 재정에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 부부는 시드머니를 열심히 모았고 투자 시대를 잘 만난 덕분에, 운 좋게 재테크에도 성공해서 결혼한 지 6년 만에 순자산은 3억에서 20억 이상으로 크게 불어나 있었다. 남편이 청년 시절부터 해온 투잡, 쓰리잡도 작년부터 초 대박이 났다. 잘 될 때는 한달만에 내 연봉에 달하는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남편은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바쁘게 일하는 사람이다.
나 역시도 '경쟁과 열심히 달리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다. 회사에 별로 불만도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운영하는 회사도 아니고 근로계약 관계에 있기 때문에 회사가 제시하는 조건을 보고 내가 승낙하거나 그게 아니면 떠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운이 좋아 좋은 상사와 팀원들을 만나게 된 점은 가장 감사하게 생각한다.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그 안에서 역할, 롤플레잉을 하는 존재들이고 회사 밖에서는 모두 아저씨, 아줌마, 처녀, 총각들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소위 상사라고 갑질을 하거나 상식밖에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좀 우스워보였다. 너무 롤 플레이에 심취하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대리, 과장 때는 꼰대들을 보면 표정 관리가 안됐는데 아이를 낳고 보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격렬하게 살아남아야 하는, 이 시대가 만든 아부지, 어머님이구나 하고 한편 이해하는 쪽으로 아, 안볼란다. 그러려니 하고 눈길을 돌렸다. 다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마음 가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5살이 되던 작년부터 어쩌면 내가 중요한 일을 잊고 살았다는 생각을 아주 강하게 하기 시작했다. 아주 강하게 말이다. 정확히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육아'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멈춰서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다. 보통 워킹맘들은 초등학교 1학년에, 요즘은 2학년 때 육아휴직을 많이 낸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때까지 버틸 힘이 없을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아마 못 참고 퇴사를 할 것 같았다. 당장 멈추지 않으면 발뒤꿈치가 붕붕 뜨기 때문이다.
나는 회사에서는 후배들에게 늘 급한일로 보이는 것에 급급하지 말고 중요한 일을 등한시하지 말라고 했는데 정작 내 일은 눈에 보이는 대로, 닥치는 대로, 의식의 흐름대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회사 일은 중요하고 꼼꼼하게 처리하면서 내 인생에 대한 부분은 의식의 흐름대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잠깐? 멈춰봐. 이건 아니지 않아?’ 하고 톱니바퀴가 더이상 작동을 안하게 된거다.
예전보다 재정적으로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배부른 생각하는거 아닐까 생각도 해봤다. 맞다. 먹고 살만해졌고 아주 영향이 없진 않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왜냐하면 내 스스로 조직생활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나에겐 월요병이 없었다. 일요일이 되면 다음날 회사 가서 처리할 일들을 생각하며 기분 좋게 잠이 들었다. 감기 기운이 있는 듯 몸이 쳐지는 것 같다가도 출근만 하면 살짝 감도는 긴장감이 좋았다. 어쩌면 회사는 나에게 기분 좋은 텐션, 삶의 탄력성을 유지시켜주는 고마운 공동체였다.
남편은 내가 주말에 한없이 늘어져 있다가 회사 전화 받을 때 일처리 하는 모습과 목소리가 멋있다고 했다. 내 스스로도 일하는 엄마로, 내 커리어와 직업에 대해 만족했다
그런데 1년을 휴직하면 내 모든 노하우와 핵심 업무는 직속 후배에게 이관하게 된다. 회사생활은 절반이 ‘사람’을 잘만나는 일이고 나머지 절반이 ‘좋은 업무’를 받는 일인데, 고과와 평가를 잘 받기 좋은 핵심 업무를 내놓는 것이다. 남겨진 팀원들에게 부담을 줄 수 없고 후임 양성도 해야하기 때문에 휴직서를 제출하면서 그 조건을 내걸었다. 그래야 내 업무를 받는 후임이 잠시 대리로 일을 ‘해 주는 것’ 이 아닌 본인의 커리어를 쌓는 ‘기회’ 라고 여기고 기쁘게 나를 환송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회사에도 이익이다.
이 말은 역으로 말하면 복직하고나서 내 업무는 다시 리셋이 된다는거다. 뼈를 갈며 쌓아온 내 커리어와 그와 함께 끌어올린 내 연봉은 아무리 생각해도 놓치기 아까운 금액과 경력이긴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직으로 감수해야 된다는 리스크가 있음에도
지금은 쉬었다 가야할 타이밍이라고 확신이 들었다. 지금 숨 좀 돌리며 느리고 게으르고 명랑하게 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 느낌말이다.
이제 아이가 여섯살이 되었고 나는 서른아홉, 30대의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다. 천천히 내 자신을 꽉 채우면서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기회를 노리던 찰나, 회사가 뒤숭숭한 좋은 타이밍을 만났다. 과감히 육아 휴직서를 냈다.
나에게 주는 안식년. 그리고 아이와 오롯이 보내는 시간. 그렇게 육아휴직을 하게 됐다. 첫날부터 코로나로 격리를 하게 되어 마냥 웃을 순 없지만. 그리고 일 이외에는 모든게 초보인 (특히 가사와 육아) 내가 앞으로 1년동안 얼마나 어설프고 엉망일지. 벌써부터 웃음이 난다. 그래서 기대가 된다.
느리지만 게으르고 명랑한.
손만 대면 고장내고 모든게 어설픈.
회사와는 다른 나.
진짜 내 모습으로 지낼 것 같아서 말이다
3월 28일. 신의 한 수, 육아휴직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