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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 Apr 08. 2022

남편이 육아휴직 축하금을 줬다

네 시작은 폭망 했으나 잔고는 두둑하리라

때는 바야흐로 3 . 나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피우는 봄날에 휴직을 하고 생일을 맞은 나는 산으로 들로 놀러 가야 마땅하였으나 현실은 그러하지 못했다.


 국민 1/4 코로나 걸렸다는 확진자가 절정으로 치닫았던  . 우리 가족도  마의 구간을 피하지 못했다. 그렇다. 나는  좋은 봄날에 휴직 파티는커녕, 생일 축하는커녕. 망할 놈의 코로나에 걸려 집구석에서 골골대며 현관문 밖도 나가지 못하는 비운의 생일자였다. 어디 나뿐이랴. 나와 남편과 그리고 6  아이까지 확진되어 함께 격리라니.편의점 1+2 아니고 대환장의 파티겠군. 하하. 너무 행복한 나머지 헛웃음만 나왔다.  


자가격리 4일 차에 접어들고 정신이 피폐해질 것 같던 그쯤. 나는 이미 넷플릭스의 대부분의 드라마를 섭렵한 상태였다. 스물셋스물다섯은 왜 이리 재밌는지. 남주인공 얼굴만 봐도 배가 불러오는군. 브리저튼 2는 왜 1편보다 재미가 1도 없는지. 남주인공이 1편에 비해 약하군 약해. 파친코는 정말 대작인 느낌이 온다 와. 하며 내 멋대로 드라마 평론가로 빙의하며 지냈다.


이에 질세라 우리 아들도 힘을 내어 드디어 완주했다. 닌텐도 게임 <별의 커비>를 완주했다. <별의 커비 스타얼라이즈> 왕판을 두 번이나 깨고 3월 신작인 <디스커버리>에 입문한 6세는 우리 아들밖에 없을 것이다. 하하. 누가 왕년에 겜돌 겜순이 었던 엄마 아빠 아들 아닐까 봐 게임을 잘해도 심하게 잘하네 우리 아들. 새삼 유전자의 힘이 대단하다는 걸 느끼며 지냈다.    


드디어 3월 30일. 나의 생일날 아침해가 밝았다, 해가 밝아 오더니 금세 점심이 되고 별일 없이 저녁이 되었다. 허무해도 이렇게 허무하기 있기냐. 하며 생일날을 보냈다.


저녁노을이 스멀스멀 할쯤 되니, 방구석 PC방에서 하루 종일 온라인으로 장사를 하던 남편도 스멀스멀 기어 나와 먹을 것을 찾았다. 갑자기 뭐가 그리 민망한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당신 생일인데 뭘 먹지?


옳커니, 저 말인즉슨 따로 준비한 메뉴도, 하다못해 배송으로 시킨 생일 선물이 없다는 표정임에 내 손모가지를 걸고 싶었다. 아무렴. 생일이 별거냐. 우리 가족 모두 확진인데 어딜 나갈 수도 없을 텐데 하며 세상 쿨하게 대답했다.


-글쎄, 우리 오늘 뭐 시켜 먹을까?


그래. 내 예상대로 넌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구나. 하지만 마음이 바다와 같이 드넓은 나는 그런 널 이해한단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지만. 쿨하다고 하기엔 이미 내 미간은 경직되어 있었고 ‘네놈 왠지 묘하게 괘씸하다’는 아우라를 정수리에서 내뿜고 있었다.


-아 맞다. 계좌는 확인해봤어? (긁적긁적)

생일 선물 사고 싶었는데, 뭐가 필요할지 몰라서 돈으로 보냈어. 당신 휴직했는데.. 당신 말대로 하고 싶은 거 하고, 사고 싶은 거 사라고.


-돈을 보냈다고?




남편은 진작부터 내가 휴직할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마음에 뭘 품고 있으면 하루 이상 숨길 수가 없고 티를 내며 다니는 내 성격 때문이리라.  


(작년 초쯤) 이건 내 느낌인데 언젠간 휴직할 것 같은 기부니 들어

(작년 여름쯤) 촉이 온다 와. 나 휴직할 거 같아.

(작년 가을쯤) 나도 잘 모르겠는데 당신이 보기에 내가 휴직 할거 같아? 안 할 거 같아?

(올해 초) 여보. 나 정했어. 휴직할게!  


이쯤 되니 남편은 아마 <아, 제발 그만 좀 말하고 그냥 휴지인지 휴직인지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후로 나는 틈만나면

 <당신 나 휴직하면 돈 안 벌고 쉰다고 눈치 주는.. 뭐 그런 째째한 남자 아니지?> 부터해서

 <뼈 갈아서 돈 벌어서 뭐하냐. 인생 뭐 있냐. 돈 쓰면서 지낼 거다. 휴직한다고 애만 보고 그런 거 없다> 등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병을 얻어 나를 위한 플렉스 계획을 랩처럼 불러 댔었다.  


내가 맥락도 두서도 없이 아이처럼 생각나는대로 내뱉을때마다 남편은 고맙게도.


- 당신이 휴직한다고 해도 살림이나 애만 보라고 할 생각 전혀 없어. 하원 시켜주시는 돌봄 선생님도 그대로 모시자. 당신은 그동안 못한 운동도 하고, 하고 싶은 공부도 하고 온전히 당신을 위한 시간을 가져. 해외여행이나 제주도에서 지내와도 되고. 천천히 계획을 한번 잘 세워봐. 지금은 일단 좀 쉬고.


잊지 말자. 내가 남편과 결혼한 결정적인 이유는 말을 참 비단처럼 곱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진작부터 눈치는 남편이 아닌 내가 먼저 주고 있었는데 남편이 생일 겸 휴직 축하금으로 돈을 보냈다고 한다.  


-돈을 보냈다고?왜이래. 나도 돈 있어. (허세) 얼마나 보냈는데. 나 작년 인센티브 남은 돈. 올해 다 쓸 거라니까? (허세작렬)


-알겠어~ 나중에 더 필요하면 말하고


뭐야. 또 얼마 보냈나. 계좌를 확인했다. 플렉스 랩을 이미 외친 나로서는 꿈쩍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이런 건 또 바로 확인해봐야 제맛이라며, 주거래 은행인 우리은행 계좌의 비밀번호를 꾹꾹 눌러댔다.


30,000,000원 (***)




남편이 내 계좌로 휴직 축하금을 보냈다.



- 뭐야. 삼천만 원?


순간 내 예상보다 큰돈에 놀란 감정이 첫째요,. 네 돈이 내 돈이고 내 돈이 내 돈인데. 장난 지금 나랑하냐. 삼백쯤 보내야 뭐라도 사지. 인간적으로 삼천을 보내기 있기 없기냐.


휴직자의 양심 테스트 하는것도 아니고 대체 이중에서 얼마를 쓰라는거냐며 당황한 감정이 둘째요.


꺼야 꺼야 휴직기간을 누릴꺼야. 노래만 불러제꼈던 나에 비해 남편. 통이 참 큰 사람이네? 하는 마음에 기분 좋은 감정이 세번째로 몰려왔다.


-3천이 뭐야. 3천이. 많이도 보냈네.


-그 돈은 아예 노터치. 없는 돈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신경 안쓸께. 기간은 올해까지 다 쓰는거야. 남으면 나한테 반납하는거야. 알겠지?


-올해 안에? 반납한다고? 나 한다면 하는거 알지.


-알지. 나도 빈말 안하는거 알지


누구에게는 적은 돈일 수 있지만, 어떤 이에게는 큰 돈이기도 한 삼천만원. 이 돈을 남편이 준 이유를 알것도 같았다. 내가 휴직기간에 무슨 일을 선택할 때, 돈의 구애를 받지 말고 자유로운 선택을 했으면 하는 바램일 것이다. 남편의 그 마음이 참으로 고마웠다.



돈을 소유한다는 것은
최고의 기쁨을 가져다준다.
실제 돈을 쓰지 않아도
돈의 효력을 느끼면서
삶을 즐길 수 있다.
돈은 자유 세계의 가치 척도가 된다.
-코스톨라니-



보자 보자 어디보자. 첫 지출은 가족 카톡방에 올라온 언니의 둘째 딸이자 나의 조카의 추레레한 내복 사진을 보고 봄 옷을 선사하기로 했다. 언니는 금방 클 애 옷을 왜 사냐고 난리였다. 스타트 좋았어. 일단 기분 좋게 10만원 지출.

잔액 29,900,000원 남았다.


두번째 지출은 애 낳고 흩어져버린 내 관절을 제자리로 돌리고자 필라테스란걸 하기로 한다. 어디보자. 지역 맘카페를 서칭해보니 1:6 그룹 필라테스 80회 남은 회원권을 양도한다고 한다. 계산해보니 판매자가 오픈 특가로 구매해서 양도 금액이 매우 저렴하다. 특템. 66만원 지출.

잔액 29,240,000원 남았다.


그 다음 타자로 피부과를 알아보고 있다. 과연 내가 레이저로 껍질을 지지고 콜라겐을 듬뿍 넣는다고 해서 연예인처럼 물광 피부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성인 영어회화도 서칭해본다. 애 낳고 알파벳도 낳아버려 기억에 지운 잉글리쉬도 되찾을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뭐든 꽉 채우고 뭐든 해보는거다.


바야흐로 3월 말. 코로나 격리로 망해버린 휴직 첫 주와 생일에 두둑한 돈으로 축하해준 남편 덕분에 통장잔고도 내 마음도 두둑해진다. 왠지 절반도 다 못쓰고 반납할 것 같지만 발뒷꿈치 붕붕 떠보는 기부니라도 내보는거다.


그래. 햇빛 찬란한 휴직기간에 뭐든 해보는거다. 러닝하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시간을 즐겨보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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