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실 간 게 죄는 아니잖아
알잖아 내가 한 번 미치면
어디까지 가는지
마지막 게임이니만큼
후회 없는 실수를 저질러
- 아이유 Coin 중에서-
'찰싹'
난 아빠에게 처음 맞았던 날을 정확히 기억한다. 초등학생인 내 얼굴보다 더 큰 아빠의 손바닥이 내 머리를 강하게 타격했다. 순간 골이 울리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픈 것보다 어린 내 눈에 비친 아빠의 화난 눈빛. 그리고 표정이 너무 무서웠다..
- 아빠가 다 알고 있는데 자꾸 거짓말할래?
갔어 안 갔어?
- (울먹이며) 갔어요. 죄송해요.
바른대로 불지 않으면 다른 쪽 볼도 벌겋게 되도록 맞을 것 같아 고집부릴 새도 없이 순순히 이실직고했다.
90년대만 해도 오락실은 '나쁜 곳'으로 금기 시 여기는 장소였다. 뭐랄까? 오락실은 흥미진진하면서 약간 무서운 분위기를 풍겼다. 벽과 바닥은 무채색 시멘트였고 인테리어라고 할 것도 없이 게임기만 주욱 나열돼 있었다. 현란한 게임 BGM 소리와 버튼 누르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PC방일 뿐인건데 초등학교 저학년이 오락실을 들락날락하기엔 꽤 용기가 필요했다. 오락실에 들어가는 걸 반 친구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다음날 칠판에 '오락실 다녀온 아이'로 이름이 적혀 불명예스러운 망신을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등교를 하고 보니 칠판에 내 이름이 떡하니 적혀 있었다. 누군가 내가 오락실을 간 것을 보고 이름을 적어 놓은 모양이다.
누구야…어떤 놈이 써놓은 거야..’
이를 갈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한 번이 두 번 되고 오락실 가는 횟수가 잦아지자 아빠까지 알게 되었다. 망했다. 앞으로는 오락실 출입은 금지다. 쪽팔리게 내 이름을 칠판에 적은 그놈. 그놈 때문에 아빠한테 맞았다. 누군지 모르지만 내일 학교에 가면 밀정(?)을 꼭 잡고야 말겠다며 잠이 들었다.
내가 어쩌다 오락실을 가게 됐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여자아이가 보통 좋아하는 인형 대신 로봇을 더 좋아했고 주로 남자아이들과 어울려 놀았다. 헤어스타일은 늘 짧은 상고머리를 고수했고 여자 아이 중에서 전교에서 두 번째로 키가 컸다. 아마도 동네 남자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오락실에 입성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고 오락실에서 게임비로 돈을 탕진한 것은 아니다. 당시 용돈이 넉넉하지 않았던 내겐 게임비 100원은 큰돈이었다. 돈이란 엄마가 창문도 없는 지하실에서 남의 집 미싱 일을 하며 힘들게 일해야 얻는 것이었다. 어렸지만 ‘돈의 무게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어쩌다 꽁돈이 생겨도 쉽사리 전자오락기 안에 동전을 넣을 수 없었다. 가끔 기회가 생기면 웬만해선 죽지 않고 오래 할 수 있는 테트리스 같은 게임을 주로 선택했다. 게임 실력이 아주 뛰어나지 않았던 나로선 게임이 너무 허무하게 빨리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다 슈퍼마리오의 치명적인 버그, 거북이 보너스라고 불리는 기술을 알게 된 건 정말 신세계였다. 계단에서 내려오는 거북이 등껍질을 바닥에 닿지 않고 밟으면 무한 1UP 보너스가 생겼다. 오락실에서 회전율이 극악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아쉽게도 오락실 사장님이 시간을 걸어놓고 제한하거나 '거북이 보너스 금지령'을 내려졌지만.
내 돈은 아깝지만 남의 돈이 오락기 안에 꿀렁꿀렁 들어가는 건 볼만했다. 다들 어디서 동전을 그리 쉽게 구해오는 건지 오락기 화면 앞에 동전을 일렬로 세워 다음 판에 넣을 준비를 하는 꼬마 게이머들이 많았다. 지금으로 치면 그야말로 힙쟁이들의 Flex.
갤러그, 너구리, 킹콩, 보글보글… 귀여운 게임 화면을 지나치다 나를 멈추게 만드는 건 단연 '스트리트파이터'나 '킹 오브 파이터(킹오파)'같은 게임이었다. 어린 여자아이가 보기에도 남성미 물씬 풍기는 게임이었다. 스틱이 뜯어질 것 같이 회전하는 ‘형님’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 없었다. 게임을 잘하는 건 왜 다들 형님들 뿐인 건지. 안타깝게도 남자보다 게임을 잘하는 언니는 거의 본 적 없었다.
생각건대 킹오파의 매력은 다른 게임이 100원에 1명만 고를 수 있는데 반해 무려 3명을 골라 게임할 기회를 준 것에 있는 듯하다.
킹오파를 구경하면서부터 였을까? ‘관전'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게임 수백 판을 관전하면서 나이가 곧 게임 실력이 아니란 것도 알게 됐다. 힘센 것과도 무관하다. 신기하게 공부 잘한다고 해서 꼭 게임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게임 머리와 손가락이 타고난 애들이 있다. '오, 얘는 정말 움직임이 다르다?' 싶은 아이가 있다.
안타깝게도 그런 아이는 어김없이 동네 뒷골목으로 조용히 불려 갔다. 죄목은 힘센 형아에게 패배감을 안겨 준 죄.
2002년 월드컵 당시 나는 고3이었다. 수능 공부 부담감으로 월드컵의 열기를 뒤로하고 공부해야 하는 저주받은 세대라고도 한다. 하지만 나는 소위 명문대에 전기 수시로 입학을 확정 지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남는 게 시간이었다.
나는 월드컵을 아주 뜨겁게 즐겼다. 당시 나는 수업이 종료되면 손수 바느질로 만든 태극기 옷을 걸치고 광화문과 신촌 거리 한복판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는 흥 많은 여학생이었다. 4강 신화를 직관한 뒤 수능까지 잘 치렀고 헛헛함 때문이었을까? 월드컵- 수능을 마치고 겨울부터는 본격적으로 빠져들었다. 무엇에? 게임이란 마약에.
당시 넥슨의 '크레이지아케이드(크아)'를 정말 미치도록 많이 했다. 수능이 끝나고 대학생이 된 후에도 새벽까지 눈이 벌게질 정도로 게임을 하고 있으니 부모님 보시기엔 문제아도 이런 문제아가 없다. 그간 좀 별나긴 했어도 딱히 사고 치지 않았고 사춘기 반항 한번 없이 커온 둘째 딸이 대학에 들어가서 '도대체 왜 저러고 있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하셨다. 언성도 많이 높아지셨다. 다행히 초등학교 때처럼 따귀는 맞지 않았지만.
어릴 때 금녀의 공간이었던 오락실, 동전이 아까워서 못 넣고 구경만 했던 게임에 복수라도 하는 기세로 원 없이 했다. 난 한번 미치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게임, 도박 같은 중독에 잘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칫하다간 가족관계도 망치고 건강에도 이롭지 않다는 것도. 물론 깨달음을 얻게 된 만큼 잃은 것도 있다. 대학교 1학년 때 드롭을 당해 3.4학년 때 학점을 메꾸느라 고생 좀 해야 했다.
남편과 결혼하게 된 것도 9할 이상 게임
남편도 겜돌이다. 내가 초등학교 때, 갓 스무 살 때 게임을 했던 건 남편의 구력(?)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다. 남편은 초등학교 때 IQ가 높았고 수학을 꽤나 잘해서 주목을 받았다. 그래서 부모님이 공부 쪽으로 기대를 좀 하셨다. 안타깝게도 부모님의 기대와는 달리 남편은 고3 수능 전날까지 PC방을 출입했다고 한다. 그 가슴속엔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수능 따위가 막을 수 없는 무한 겜돌이 열정이 남아 있었다. 부모님이 답답한 마음에 점집을 찾아다니셨다고 하셨을 정도니까.
남편은 내가 관전을 통해 눈여겨봤던 '움직임이 남다른 아이'였다. 내가 종종 목격했던 '형아에게 패배감을 안겨준 죄'로 끌려가기 딱 좋은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추천해 준 리그 오브 레전드(LOL)를 분명 친구들과 게임을 같이 시작했는데 일주일도 안돼서 혼자 어너덜 레벨을 취득해 고수들하고 게임을 하고 있었다. 게임으로 용돈벌이도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와 남편은 만나면 카페보단 PC방에서 같이 게임하는 친구로 지내왔다. 그렇게 10년 넘게 '남사친'으로 지내다가 연애라는 걸 하게 됐다. 결혼한다면 룸메이트와 사는 것인데 지구 상에 내 룸메이트는 남편만 한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결혼하자고 했다. 평생 룸메이트로 살자고 했고 남편은 흔쾌히 승낙했다.
결혼 전에 서로의 자산을 열어보았는데 게임으로 용돈을 벌기 시작해 모아놓은 돈이 '몇 억 원' 수준인 걸 알았다. 그야말로 덕업 일치 산 증인이 아니신가?
갑자기 남편이 달리 보이기도 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게임만 하는 찐따인 줄 알았더니. 안경 벗고 보니 미남을 보는 기분? 아무튼 남편이 게임 투잡으로 열심히 벌어 놓은 돈 덕분에 살림에 보탬이 많이 되고 있다.
남편과 나는 LOL(리그 오브 레전드) 게임으로 유명한 SKT 페이커 선수의 초창기 팬이다. 우리는 퇴근 후 롤 챔피언스를 보곤한다
- 생각해 보면 당신과 내가 결혼하게 된 건 9할 이상이 게임 때문인 거 알지? 난 희한하게 겜돌이에 대한 로망이 있어
내 질문에 남편은 머쓱한 웃음을 지으면서 맥주 한 모금을 마셨다. 본인도 동의한다는 뜻이다.
'게임'에 대한 추억과 공감대가 있는 평생의 룸메이트를 만났다. 칠판에 내 이름을 적어 놓은 그와 같은 친구는 이해하지 못할 게임의 매력을 아는 사람이다
요즘 주식 투자자라면 알아야 할 핫한 키워드인 ‘메타버스’ 를 이끌고 있는 주역이 바로 ‘게임’ 이다. 1020 MZ세대가 로블록스라는 글로벌 게임 세상에서 만나고, 네이버 [제페토]에서명품으로 캐릭터를 치장하는 시대이다. 나와 남편이 요즘 시대 태어났다면 볼만했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우리 둘의 피를 물려 받은 5세 아들이 앞으로 어떻게 커 나갈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나저나 누가 칠판에 내 이름을 적어 놓았을까?
정말 내 스타일이 아니야.'
강자에게 더 세게 I love gamble
과감할수록 신세계 on my table
I'm sorry 세상이 원래 불공평해
So 더럽게 재미있지
- 아이유 Coin 중에서-
@ 사진출처: <봉주르 코레> 박로랑 사진집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