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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 Aug 06. 2021

착한 사람 병에 걸린 후배에게

모든 사람에게 잘 보일 필요 없어

애매하게 착한 사람이

마음의 병에 걸린다는 말이 있다.

남을 위한 희생을 즐겨하는 사람이

착한 사람 병에 걸리기 쉽다는 것이다.

타인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고,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도와주고

부족한 부분이 보이면 채워주고

남을 위해 정성과 마음으로

잘해주는 것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남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라면,

모두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쉽게 지치고 실망하게 된다.

남을 위한 희생을 함으로써

내가 위안을 얻는 보상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남에게 좋은 사람으로 비치고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당연하다.

또, 내가 노력한큼

마땅히 칭찬과 인정 받아야 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기대 만큼의

보상과 피드백이 없을 때가 훨씬 더 많다.

타인의 반응이 항상 우리의 기대만큼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내가 이 만큼이나 했는데'

'내가 기껏 도와줬더니

상대방이 내 노고를 몰라 준다'는

섭섭함이 미움과 분노로 쉽게 바뀌게 된다.

유명한 성경구절 중에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하겠다'

라는 말이 있다.


​이는 내 의지와 결과물에 상관없이

모든 상황을 신께 맡기고

받아들이겠다는 말이다.

신에 대한 엄청난 경의와 믿음이다​


하물며 신을 대할 때도

뼈를 깎는 고통과

신앙 고백이 필요한데,

수많은 타인을 대상으로

어떻게 실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굳이 모든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남에게 인정 받고자 하는 욕심을

내려 놓자.


기준과 시선을 타인에 맞추다 보면

그의 반응 하나 하나에 눈치를 보게 된다.

타인의 반응에 따라

나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지게 된다.

나의 행복과 불행의 주도권을

타인이 갖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완벽하게 착한 사람은 없다.

그렇게까지 노력해서 착해질 필요도 없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까지 애써서 사랑받을 필요도 없다.

나를 지킬 만큼

그 정도의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내 행동의 동기와

내 마음에 솔직해져 보자.

우리 모두는 그렇게까지 착하지 않다.

타인 또한 너의 노고를 알 만큼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자기를 갈아 넣어

상대방을 위해 무리하게 애쓰지 말자.


그러다 내가 없어질라.

그러다 마음의 병이 깊어질라.


타인 보다 내가 중요하다는 것.


행복과 불행의 주도권은

나한테 있다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이미지 © timmossholder,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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