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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잇독 Jul 26. 2020

축의금 5만 원밖에 못 내서 미안해

유튜브 알고리즘이 인도하는 데로 영상을 돌리다 보면 평소에 챙겨보지 못한 예능의 영상을 보게 된다. 밥블레스유도 마찬가지.

항상 찾아보진 않지만 재미있게 보는 프로이다.


연예인 출연자들이 시청자의 사연을 듣고 함께 고민하고 상담을 해주기도 하는 시간이 있다. 오늘 본 영상은 친구 결혼식에 초대받은 취준생의 사연이었다.


https://youtu.be/ZU6E48gZJRM


결혼식에 초대받았는데 빈 손으로 갈 순 없고 축의금을 내야 하는데, 취준생의 입장이라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


출연자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연을 읽어나간다.


결국 고민 끝에 안 쓰던 물건들을 긁어모아서 중고장터에 팔아 겨우 5만 원을 마련한 사연자. 다른 출연자들은 함께 안타까움의 리액션을 한다.


사연은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다.


너무 친한 친구여서 미안한 마음이 너무 크네요
이 헛헛한 마음 채워줄 음식 뭐 없을까요..?ㅠㅠ


사연이 끝나기 무섭게 다른 모든 출연자들이 공감의 리액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출연자들은 입을 모아 한 목소리로 얘기한다.

무슨 음식을 우리에게 물어보냐고, 결혼식 장에 가서 축의금 낸 거 이상으로 음식을 먹고 오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출연자들은 사연의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청년들의 취업 상황이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 지는 오래다.

여유롭지 않은 경제사정 가운데, 경조사 초대를 받아 축의금을 내야 하는 불편한 현실에 대한 고민도 넘쳐난다.


출연자들은 이러한 배경 가운데서 사연을 다르게 해석한다.


축의금 낼 돈이 없는데 초대는 받았고,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중고장터에 물건을 팔아서 참석하는 친구의 결혼식이 불편하다는 사연자의 이야기로 말이다.


취준생의 사연은 돈 때문에 친구나 지인의 경조사에 진심으로 축하해 주지 못하고 돈을 아까워하는 세태에 대한 또 다른 예로 인식되었다. 출연자들의 기존에 경험하고 가지고 있던 생각이 자연스레 편향적으로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이 사연 주인공의 마음은 그러한 것이 아니다.


너무 친한 친구인데 미안한 마음이 크다는 것.

그것이 무얼 의미할까.


너무 친한 친구여서 정말 정말 진심으로 이 친구의 결혼을 축하해주고 싶은데,


내가 가진 게 너무나 부족해서 가능한 모든 걸 긁어모아 중고로 팔았는데도 5만 원 밖에 나오지 않아서,


그 친한 친구에게 축의금을 5만 원 밖에 주지 못하는 것


에 대한 스스로를 향한 아쉬움,

친구에 대한 미안함이 아닐까.


이 사연자는 친구 결혼식장에서 밥을 먹고 먹고 또 먹어서 먹는 걸로 축의금의 본전을 찾고자 하는 이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본인의 식권이 지불되는 것도 미안해 밥도 안 먹고 나올 친구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축의금도 많이 못 주는 미안함 때문이다.


5만 원이 크냐 작냐. 축의금의 적합성 여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취준생이 친구의 결혼식을 축하하는 마음은 5만 원으론 너무 적은 것이다.


아무리 요즘 젊은 세대가 경제적 이유로 인간관계까지도 끊는다고 하지만, 일부의 그런 모습을 전체로 일반화하고 모든 청년들을 동일하게 매도하는 것은, 오히려 나이 든 기성세대가 아닐까.


더 노후화되고 이미 팍팍해져 버린 어른들의 시각으로, 청년들 모두를 인간성은 잃어버린 채 자기의 이익만 추구하는 매정한 세대로 재단해 버리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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