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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발자 꿀 Jul 23. 2024

스웨덴 개발자 연봉에 대하여

캐치TV 인터뷰


유튜브 채널 캐치TV에서 한 인터뷰(링크)가 올라간 후 나의 연봉에 대한 댓글이 많이 달린 것을 보았다. 해외에서 사는 것을 생각하면 생각보다 짜다, 같은 경력일 때 우리나라에서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사실 실제 연봉은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보다 조금 더 높다. 여기에 환율의 변동으로 인해 시기에 따라 원으로 환산한 연봉이 더 높아지는 시기가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갑자기 천만 원이 이천 만원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또한 연봉 이외에 받는 주식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이것은 계약 연봉이 아니거니와 처한 상황, 시기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나는 스웨덴에 올 때 돈을 많이 벌지 못할 각오를 하고 왔다. 그리고 해외에서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와 같은 각오가 되어있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해외에서 산다는 것은 다른 삶을 사는 것이지, 꼭 모든 면에서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나의 책 <매일을 나아가는 법>에서 언급한 대로, 이직을 준비하면서 "비슷한 나이에 해외에 나갔다가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되어 후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인터넷에서 많이 읽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가 벌써 6년도 넘었지만 아직도 현실은 그때 들었던 이야기와 비슷한 것 같다. 심지어 나보다 먼저 유럽에서 일하고 계신 분들과 온라인으로 대화를 나눌 때, 한국의 개발자 연봉을 맞춰줄 수 있는 유럽의 회사는 거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 또한 똑똑히 기억한다. 또 하나 기억나는 것은 외국에서 일을 하며 한국에서 사는 동년배들에 비해 돈도 많이 못 모으고 나중에 후회한다는 이야기였다.


왜 유럽의 회사에서 한국 개발자의 연봉을 맞춰줄 수 없을까. 여태 스웨덴에 살면서 느낀 것은 유럽의 노동자들은 직업을 막론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돈을 못 받는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생각보다 조금 받는다고 말하는 나의 연봉이, 이 나라에서는 그래도 IT직군 버프와 회사 규모 덕분에 높은 축이다.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면 잘 사는 나라, 혹은 물가가 비싼 나라는 모든 사람들이 고연봉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생각보다 '살기 좋은 나라'와 '개인이 돈을 많이 버는 것' 사이에는 쉽게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관계가 존재한다. 물론 물가가 비싸면 최저 임금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같은 일을 하더라도 훨씬 더 많이 돈을 버는 것은 아니더라. 나의 생각에 이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은 미국이나 우리나라 같은 자본주의와 조금 다른 듯하다. 일단 유명한 대로 다 같이 세금을 많이 걷어서 다 같이 살아남는 주의이기도 하고.

내가 직접 스웨덴에 살아보니 '살기 좋은 나라'는 돈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 나라가 여태까지 축적해 온 역사, 땅의 면적 대비 인구수, 날씨, 자연환경,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 등 무수한 것들이 영향을 미친다. 단적인 예로 스웨덴은 우리나라처럼 긴 역사는 없어도 2차 세계 대전에서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받지 않으면서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또한 적은 인구수는 사람들끼리 부대끼며 경쟁하지 않아도 되고, 사람들을 피해 숨어들 수 있는 숲 속과 강가가 주변에 많다. 이런 작은 것들이 하나씩 모여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든다. 그리고 이런 삶을 지켜볼 수 있는 경험은 만약 돈만을 쫓았다면 절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처음에 지금 회사와 계약을 할 때 물가와 한국에서 받던 연봉을 고려하여 손해를 보지 않는 수준에서 사인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매해 연봉 인상률은 생각보다 낮았다. 이것이 연봉을 맞출 수 없는 두 번째 이유다. IT회사들이 인재에 돈을 퐁퐁 쓰던 시기조차 연봉 인상률은 한국보다 훨씬 낮았다. 지금은 정말 x10 high performer가 아닌 이상 평균 이상의 인상을 기대하기 힘든 분위기다.

여러 번 매니저로부터 확인한 내용에 따르면, 회사에서는 사람들 중에 평균보다 낮은 연봉을 받는 사람의 연봉을 평균으로 맞춰주는 것이 더 중요한 문화라고 한다. 약간의 사회주의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래도 전에는 일을 잘하면 평균보다 조금이나마 더 올려줬다. 그러나 요즘에는 몹시 허리를 졸라매는 상황이기 때문에 어지간히 적정 수준의 연봉을 받는 사람이라면 협상이 힘들다. 정말로 비교 불가능하게 열심히 해야 평균 연봉 인상률을 뚫을 수 있다. (모든 유럽이 이렇다거나 스포티파이 전체가 이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보상 체계는 당연히 나라마다 다름)


돈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사람에게는 참기 힘든 구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해 동안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미친 듯이 일한 대가에 금전적 보상이 꼭 필요한 사람이라면 정말 버티기 힘들다. 일단 회사의 운영 방식에 납득하지 못할 테니까.

공평함을 강조하는 분위기라면 그중에는 다수 속에 묻혀가는 사람들이나 열정 없이 일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아진다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좋아서 열심히 하는 일이 괜스레 나의 손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 또한 금전적 보상으로 성과를 인정받던 분위기에서 일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나의 그동안의 노력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 적도 있다.

그러나 여태까지 스웨덴을 탈출하지 않고 한 회사에 계속 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온전히 회사 안에서만 찾던 나라는 사람의 증명을 회사 밖에서 찾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유는 오로지 사람을 쪼지 않는 근무 환경 덕분에 가능했다. 블로그에 여러 번 언급한 대로 스웨덴에 온 뒤로 요가 수련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으며, 예전 같았으면 직업을 위해 사용했을 에너지를 회사와 요가 두 군데에 분산해서 쓰고 있다.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안다. 만약 한국에서 회사를 다녔다면 둘 중에 하나는 진즉에 포기했거나 요가는 일주일에 한두 번 하는 취미로 남았을 것이다.

계속 한국에서 회사를 다녔다면 나는 아마 지금보다 수중에 가진 돈은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한 삶은 지금보다 훨씬 단편적이지 않았을까 상상한다. 나를 소개할 때 요가를 하러 인도에 두 달이나 갔던 이야기 등 회사 밖에서 발견한 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이 모든 것이 그동안 놓친 돈과 바꾼 것이라고 생각하면 사실 그렇게 아깝지 않다. 혹은 내가 이것이 아깝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계속 스웨덴에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사람들 중에는 나중에 받을 연금을 믿고 크게 저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반대로 스웨덴 사람이면서 연금 시스템을 믿지 않아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스웨덴에 살면서 쓸데없이 나가던 지출을 줄이는 방법을 통해 내가 원하는 정도의 저축을 유지하고 있다. 솔직히 내가 한국에 사는 한국 사람보다 한식 요리를 더 많이 할 것 같다. 음식 배달만 놓고 봐도 비싼 배달료 때문에 앱을 열었다가도 끄고 간단하게 해서 먹는다. 옷도 물건도 잘 안 산다.

또 하나 스웨덴에 살면서 많이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돈을 쓰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 살 때는 밖에 나가면 무조건 시간을 보내면서 돈을 쓰는 것이 당연했던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버리려고 많이 노력했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공원에 누워있거나 조용한 곳을 산책하는 등 두 발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심심해서 밖에 나갔다가 괜히 들어간 옷가게에서 무언가를 사고 나오는 대신 집 근처의 물가로 나가 계절이 오는 구경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유튜브 댓글에 물가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솔직히 물가는 스웨덴과 서울이 이제 비슷한 것 같다. 월세나 교통비는 스톡홀름이 더 비싸지만, 그 이외에 음식을 먹고 물건을 살 때 지불하는 돈을 생각하면 서울이 많이 비싸졌다는 것이 내 개인적인 느낌이다. 그래서 안타깝지만 여기가 북유럽이라서 물가가 한국의 두 배니까 월급도 두 배를 받아야 한다는 기대가 이제는 틀린 것이 된다. 애초에 스웨덴은 노르웨이처럼 대놓고 무진장 비싼 나라가 아니거니와, 여기 물가가 조금씩 오를 동안 우리나라 물가는 너무 빨리 올랐다.


내가 다시 강조하고 싶은 말은 해외생활은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 다른 선택이라는 것이다. 어떤 삶을 살고 싶다는 개인의 결정, 새롭게 편입하는 사회에서 좋고 싫은 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합의점을 찾아가면서 사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합의점은 돈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아주 오래전에 내게 '유럽 회사는 한국 개발자 연봉 못 맞춰준다'라고 못 박아서 말해주셨던 분께 개인적으로 감사한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그분의 솔직한 대답으로 인해 외국 생활에서 돈 말고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르니까.



2024/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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