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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Aug 06. 2019

거짓말 연습은 그만 하기로 해.

너와 나의 연결 고리.

미드 <굿 와이프>에서 주인공인 얼리샤를 같은 변호사로서 좋아하는 경쟁자가 말한다.


경쟁자: 길을 가다가 두 사람이 어깨를 부딪쳐요. 한 명은 바로 사과를 하고 다른 한 명은 노려보며 기분 나쁜 티를 내죠. 당신은 사과를 하는 사람이에요.

얼리샤: (코웃음을 치며) 아니에요.

경쟁자: 맞아요.

얼리샤: 아니라니까요.


후에 남자는 얼리샤가 자주 가는 바에서 얼리샤를 툭 치고는 얼리샤의 습관적으로 튀어나온 사과를 받으며 회심의 미소를 날린다.





당신은? 사과를 하는 사람인가, 노려보는 사람인가.











 남편은 길에 엄지 손가락 만한 쓰레기도 못 버리는 사람이다.

한 번은 내가 버린 쓰레기를 다시 주워오는 그가 왠지 야속해서 못 보는 새에 몰래 쓰레기를 버린 적도 있다.-나는 큰 쓰레기는 죄책감으로 못 버리지만 작은 쓰레기는 가끔씩 버리는 선택적 양심가다.-남편은 (내가 아는 한) 여태 모범생다운 삶을 살아왔다. 변변한 거짓말 하나 잘하지 못한다. 그리고 큰 변수가 없다면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스물아홉 즈음 남편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아마 우리가 결혼을 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나는 남편 같은 사람을 보고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 두 번 만날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우리는 소개팅으로 만났다.- 하지만 나는 그를 서른하나 일 때 만났다. 그즈음엔 '매너는 성격이다'라는 슬로건을 친구들에게 침 튀기며 설파하고 매너가 남자를 만든다는 영화 대사를 내 대사처럼 읊고 다니고 있었다.


이 같은 변화는 계속되는 직장생활에서 만난 무수한 비 매너남들 혹은 매너 총량이 너무 적어 초반에만 친절하고 점점 뻔뻔해지는 거래처 직원 등이 영향을 미쳤다. 내가 속한 도시에서 매너 있는 미혼 남자를 찾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미션이었구나 생각하고 비혼을 선언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을 만났다. 평생을 남한테 싫은 소리 안(못)하고 살며 배려가 디폴트인 남자. 편의상 김서방이라고 부르겠다. 여하튼 김서방과 만나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유머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상대방을 까내리지 않는 유머'는 너무나 세상을 아름답게 해 준다는 것. 그리고 절대 남을 깎아내리지 않는 김서방의 유머는 나를 무장해제시켰다. 마음속 번뇌가 사라지고 구름을 산책하는 듯한 고요함을 가져다주었다.


사귀기 시작한 초반에는 김서방이 아직 나보다 어리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나 보다 두 살이 어리니까, 이 년 후쯤엔 세상에 더 찌들어 점점 선택적 양심가가 되지 않을까?-내가 몇 년 새에 변한 것처럼-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는 그대로였다. 내게 제일 충격적이었던 건 운전습관이다. "사람이 저럴 수는 없어. 아마 어마어마한 시꺼먼 속내를 감추고 있을 거야. 아니 어떻게 운전하면서 욕을 한 번도 안 할 수가 있냐고?" 김서방은 끼어드는 차는 무조건 기다려주고 양보한다.(왜?!) 화가 나서 놀래도 한다는 말이 기껏 '저 아저씨 되게 급한가 보다~'였다. 옆에서 나는 왜 클락션을 누르지 않았냐, 저런 것들은 양심이 없기 때문에 꼭 클락션을 울려서 '너 지금 나빴어.'를 알려줘야 한다고 목에 핏줄을 세우며 발을 동동 굴리며 화를 낸다. 그러면 김서방은 나를 보며 빵 터지게 웃고는 귀엽다는 듯이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남편 자랑하냐. 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모든 것에는 일장일단이 있다. 이런 김서방에게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김서방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것은 나를 종종 괴롭게 했다. 김서방의 회사는 주 5일이다. 주말, 데이트를 하는 중에 상사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자신이 있는 곳의 소재를 정확히 밝히고 '누구를 만나고 있긴 한데 딱히 바쁜 일이 있는 건 아니'라고 하더니 결국 회사에 갔다. 데이트 중에 바람을 맞았다. 김서방에게 물어보니 종종 있는 일이라고 했다. 추가 수당을 받기 때문에 크게 불만은 없지만 자기도 가고 싶지는 않단다. 나는 김서방을 데리고 교육에 들어갔다. 상사가 와줄 수 있냐 물었을 때 어떤 대사를 칠 것인지, 포기하지 않고 물고 늘어지면 어떻게 할 것인지, 우리는 모의 통화까지 했다. 김서방은 연습을 다 해놓고 못하겠다고 했다. 나는 김서방을 설득했다. "매번 그럴 필요는 없다. 그냥 딱 한 번만 거절해보자. 그다음에 전화 오는 건 가도 돼."라고. 결과는 내 예상대로였다. 그 한 번의 거절 후 상사는 두 번 다시 주말 출근을 요청하지 않았다. 단순히 이런 것뿐만이 아니다. 하도 감이 안 와서 '가서 느낌만 보자'라고 참석한 웨딩박람회에서 만난 매니저라는 사람에게서 끈질기게 오는 전화를 대신 받아 끊기. 선한 인상의 김서방에게 예의 없이 구는 점포 직원 옆에서 팔짱기고 서있기. 등 숱한 종류의 인간 방패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으니, 시어머니와의 전화 통화. 김서방은 이미 나와 오후에 00을 하기로 약속이 돼 있었다. 시간 약속만 하지 않았을 뿐. 그러나 시어머니가 "그때 뭐하니?"라고 묻는 순간 김서방에게 그 시간은 '자유로운 시간'이 돼버렸다. "어, 잘 모르겠는데 이따가 전화 줄게." 눈치 빠른 시어머니는, 심지어 눈치가 빠르지 않더라도!! "아내한테 물어보고 허락 맡고 알려줄게 엄마."라고 들리지 않을까. 어머니의 심부름이나 막간을 통한 만남보다 우리의 약속을 더 중요시 여기면 안 되냐고 3546724번 정도 말했지만 거짓말을 못하는 김서방에게 소귀에 경읽기였다.



앞서 이야기했던 미드 이야기를 기억하는가.

여기서 사과를 하는 사람은 의외로 김서방이 아닌 '나'다. (김서방은 부딪치기도 전에 몸을 한껏 접어 피했을 것) 김서방 같은 사람을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 건 내가 얼리샤 같은 사람이라서가 아닐까. 물론 스물아홉에는 노려보는 사람에 가까웠다. 아니, 노려보는 사람이 되고자 부단히 노력하며 살았다. 그러다 인생을 조금 더 살다 보니 사과하는 사람으로 있는 게 나에게 맞다는 걸 깨달았다. 굳이 그 부분을 바꾸지는 말자고 마음먹었다. 그러니 '내가 원하는 대로'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김서방을 그만 원망해야 한다. 왜냐하면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게 본인에게 맞을 테니까. 그리고 내가 사랑에 빠진 사람은 거짓말을 못하는 김서방이니까.




그런 그가 꾸준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있었으니,

















여보, 내 글에 모르는 사람인 척 댓글은 그만 달아요. 라이킷으로 충분해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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