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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Feb 02. 2020

귀여운 인간들.

아주 보편적인 행동을 하는 나를 보면 안심하면서도 실망스럽다.





 오늘 화장을 하며 눈썹 칼로 눈썹을 다듬었다. 그러다 못생긴 눈썹을 가지고 있던 누군가가 떠올랐다. 나는 그가 눈썹이 못생겨서 너무 싫었다. 왜 저렇게 하고 다니지? 거울 보면 거슬리지 않나? 라며. 그가 너무 싫고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 눈썹을 다듬으며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날 보며 '어머, 이렇게 성숙한 생각을?' 했다.












 요즘 들어 쓸모없이 나이 들지 않기 위해 어떡해야 할까에 집착하고 있다. 2020년 들어 빼박 삼십 대 중반이 되었다. 물론 얼마 전에 만난 의사 선생님(적어도 80대 정도로 예상한다)은 나에게 "삼십 대는 아주 꽃 같은 시기입니다."라고 하셨지만. 그렇다고 '나 더 이상 20대가 아니야~' 라며 호들갑을 떨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어린 시절 그런 날이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숫자에 가까워질수록 조금씩 두려워지는 건 사실이다.


이를테면 업적을 이뤄야 하는데.

혹은 이쯤 되면 과장 근처에는 가야 하는데.

아니면 내 사업을 시작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시기 아닌가?

라는 생각들 때문. 전부 커리어와 관련된 것이다.(방금 깨달음)


그렇다. 우리 집에서 백수인 내가 커리어에 관련된 고민과 생각을 가장 많이 하는 인간이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내 손해를 최소화하고, 이왕이면 다수가 좋을 방향으로 가지만 소수가 서운해하지 않을 만한 방패를 두면서 소수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손해를 감수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나도 한때 눈썹 때문에 누군가를 싫어했던 것과 같은 이유로 미움받은 적이 있다. 친구는 대놓고 나에게 왜 그렇게 화장을 해?라고 하여 나는 미움받지 않기 위해 화장법을 바꿨다. 그런데 화장법을 바꾸고 보니 그건 나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게 사실이 아닐지라도, 적어도 내 마음에는 든다. 화장법을 바꾼 건 친구의 마음에 들기 위함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나이든다는 것의 정의는 수백만가지로 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는 ‘남의 마음에 들기 위한 노력을 덜 하는 일’




어쩔땐  방식이 타인의 마음에 들지 않을 때를 인생에  번쯤은  거쳐야 하는 관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우리는 누구나 타인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하기 때문. 그래서 필연적으로 인생에 한 번은 내 방식을 희생시키게 된다. 후에 시행착오 끝에 내 방식을 찾게 될지라도.




 나이가 든다는 건.

언젠가 어이없었던 이가 너무나도 공감이 되고 예전에 결코 이해하지 못했던 타인의 행동이, 여전히 이유는 알 수 없어도 너무나도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하지만 정말 내가 나이 들었음을 깨닫는 때는 따로 있다. 야채호빵 대신 팥 호빵을 찾을때다. 내 입맛이 으르신 입맛으로 변했음을 깨달았을 . 바로 그때다. 친구들을 보면 나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정말이지 귀여운 인간들이다. 너무 귀엽지 않아? 시기는 달라도 결국은 정해진 수순을 따라가는 것을 보면.


그리고 나도 그 점들 중에 하나라는 것을 보면, 그 사실이 안심되지만 허무하다.

나라는 인간이 그렇게 특별하진 않다고, 그저 그런 취향을 가진 사람임을 증명해주기 때문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알게 되는 사실은 늘어나지만 알 수 없는 마음은 많아지는 아이러니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선택하는 것이 쉬워질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을 때의 불안함.


관계라는 것의 불안정함을 알게 되는 두려움.


확고하다고 생각했던 신념이 언제든 부서지기 쉬운 모래성일수도 있다는 가능성.


실제로 결혼하기 전에는 부부를 보면 웬만한 것으로는 두 사람을 떼어놓기 힘든 아주 강력한 관계일 거라고 믿었지만, 지금(결혼 후)은 좀 생각이 바뀌었다.


남편과의 관계가 좋건 나쁘건 상관없이 부부관계란 얼마나 실낱같은 끈으로 이어져 있는가 자주 생각하게 된다. 글씨 몇자와 성가신 행정절차만으로도 결혼을 끝낼 수 있다. 단순히 끝의 과정이 아니라 결혼이라는것 자체가 그런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랫동안 쌓아올린 믿음은 단 몇분만에 무너질수도 사라질수도 있는게 결혼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결혼은 정말 얄팍한 관계에 대한 약속이다.




 나이라는 케케묵은 소재로 글을 쓰게 될 줄 몰랐다. 하지만 나도 귀여운 인간군상 중 하나이므로 이때쯤 나이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30대가 꽃 같아 보이는 시기에 한 번 더 나이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보통의 인간으로서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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