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를 끼치면 반성하는 삶
폐에 대하여 '남에게 끼치는 신세나 괴로움'이라고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정의하고 있다.
버트씨와 찰스씨를 피아노 학원에 데려다주고 스터디 카페에 들어왔다. 책가방을 내려놓고 작은 크로스백을 어깨와 목 위로 벗어내는 순간 와장창창 소란하다. 열린 지퍼로 블루투스 이어폰이 떨어져 순식간에 케이스와 양쪽 이어폰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오늘도 나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말았다.
나는 소란한 편이다. 섬세하지 못하고 행동이 투박하여 무엇이든 잘 흘리고 어디에든 잘 부딪힌다. 그것으로 인해 파생되는 소음들이 적지 않다. 이십 대 중반에 노량진 독서실에 다닌 적이 있는데 다양한 빛깔의 포스트잇이 내 자리에 붙어 있곤 했다. '의자 좀 조심히 빼 주세요.', '필기하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요.', '책장을 조용히 넘기세요.' 등등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는 지적들이 종종 나의 책상에 날아들었다. 기이하게도 그곳 사람들은 정말 유령처럼 존재했다. 걷는 것부터 의자를 빼는 것, 책을 넘기는 것, 필기를 하는 것까지도 음소거 상태를 유지했다. 모양만 있을 뿐 소리는 부재했다. 꽤 노력을 하였는데도 나는 그들처럼 되지 못하였고 결국 소음의 주범으로 독서실 생활을 마쳤다.
원하지 않아도 폐를 끼칠 때가 많다. 폐는 끼치지 말고 살아가자는 것이 나름 삶의 원칙 중 하나였는데 나는 그것을 지키지 못했다. 나의 무엇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이 괴로움을 느낀다는 게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 또한 통제의 범위 안에 있지 아니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하여 생각한다. 폐를 끼치게 되면 적어도 반성은 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반성하고 노력하다 보면 폐를 덜 끼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누군가의 귀에, 또 마음에 폐를 덜 끼칠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