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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에서초록씨 Mar 17. 2022

버트씨의 쉬는 시간

친구는 어떻게 사귀는 거더라

지난 화요일, 오후 들어서면서 비가 내렸다. 일곱 살 찰스씨를 데리러 가는 길에 하교하는 열 살 버트씨를 길에서 마주쳤다. 한 손으로 우산을, 다른 한 손에는 실내화 주머니를 들고 무겁고 거대한 가방을 짊어지고 채 걸어오고 있었다. 마주치자마자 가방을 나에게 넘긴다.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집에 도착하여 샤워를 도와주고 있는데 이야기를 꺼낸다. 수업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더 힘들다고, 홀로 멍하니 앉아 있는 게 제일 괴롭다고 말이다. 눈가가 촉촉하다. 자신에게 친구는 하나도 없고 말은 거는 아이도 한 명뿐이라고 했다. 달리기가 빠른 아이가 자신의 반에는 없는 것 같다고, 그래서 친구가 되고 싶은 녀석은 없다고 덧붙였다. 이해하지 못한 나는 되물었다. 달리기하고 친구는 무슨 관계가 있는 거냐 하였더니 자신은 달리기가 빠르지 않은 아이와는 친구가 되고 싶지 않다는 답을 한다. 친구의 조건이 달리기라니! 신선하다. 그러나 역시 이해하기는 힘들다. 사람마다 친구를 맺는 이유는 다양한데 아마도 그 기준을 달리기에 두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 말했더니 표정이 심각하다. 재미있는 사람, 말을 잘하는 사람, 잘 생기거나 예쁜 사람,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 공부를 잘하는 사람, 잘 웃는 사람,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더니 자신은 달리기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며 단호하게 답변한다. 역시 단호박이다. 그러고는 친구의 이름을 이야기하며 그 애는 쉬는 시간마다 많은 친구들이 말을 건다고,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럴 것이다. 그 애는 달리기가 빠르지 않을 테니 우리 버트씨는 그 현상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타인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 한다는 당연하고도 원초적인 욕구와 감정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아직은 친구가 없어서, 네게 말을 거는 친구들이 별로 없어서 속상하구나, 하였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는 친구를 어떻게 사귀었어요?"


훅 들어오는 질문에 멈칫했다. 이전 화제와는 다른 파트다. 그때부터 머릿속에서 물음표가 떠다니기 시작했다. 친구를 어떻게 사귀었더라, 친구는 어떻게 사귀는 거였더라... 


내가 먼저 말을 걸었던가, 그가 말을 걸어왔던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러나 깨닫는다. 분명한 한 가지, 누군가는 말을 건네야 관계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말이든 글이든 언어를 사용해 소통을 시작하면 굵은 점처럼 존재하던 사람들 사이에 선이 생긴다. 그 위로 의미 있는 대화와 만남이 거듭되면 선은 선명해지고 그렇게 친구라 이름할 만한 관계가 된다. 그러나 버트씨 유형의 사람들은 말은 건네는 데에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하다. 성장에 필요한 또 한 가지를 발견하고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다 빨간머리 앤이 떠올랐다. 인사를 건네는 일이, 입을 여는 일이 크게 어렵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버트씨가 빨간머리 앤을 만날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하니 이것은 사람이 손을 댈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약 스무 명의 전학생 유입으로 인해 버트씨 학년은 한 학급이 증설되고 반 편성을 다시 했다. 오늘은 새로운 교실로 들어서는 두 번째 날이다. 새로운 선생님과 급우들... 그곳에 우리 버트씨의 빨간머리 앤이 있을지는 전혀 알 수 없다. 나는 버트씨의 쉬는 시간이 더는 외롭고 쓸쓸하지 않도록, 버트씨의 쉬는 시간이 즐거운 웃음과 사랑스러운 장난으로 채워지는 날이 오기를 간절하게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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