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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toyourverse Apr 16. 2019

<러브리스> 실종된 러시아 사회의 보편적 가치

브런치 무비 패스 시사회 4/10

<러브리스>의 원제는 <нелюбовь>로 혐오, 증오라는 뜻을 담고 있다. 혐오와 증오는 사랑하지 않거나 사랑이 없는 것보다 더 비관적인 태도의 단어이다.


감독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는 러시아 중산층 가족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서서히 주변부로 확장시킨다. 중반부터 영화의 마지막에는 러시아 사회와 주변국으로 확대하여 여러 담론을 불러온다.


제냐(마리아나 스피바크)와 보리스(알렉세이 로진)는 부부이지만 이미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잃어버린 상태이다. 제냐와 보리스는 마지못해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각각 정사를 나누는 파트너가 있다. 어린 알로샤(마트베이 노비코프)는 마땅히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인데 어느 부모에게서도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한다.


제냐와 새 파트너 안톤(안드리스 카이스)이 식당에서 데이트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잠시 주요 인물에서 벗어난 장면. 한 여성이 화장실을 다녀오던 중, 처음 보는 남자가 연락처를 물어보지만 별 고민 없이 연락처를 준다. 그리고 태연하게 다시 연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돌아간다. 제냐, 보리스, 그리고 이름 모를 이 여성에게 사랑은 무의미하다. 회사에서 동료와 상사에게 가정에 충실해 보여야 하고, 인스타그램 등의 소셜 미디어에서 행복해 보여야 한다. 마샤(마리나 바실리예바)와 그녀의 어머니는 보리스를 놓고 언쟁하던 중, 마샤가 셀카를 찍자 다시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오직 타인에게 보이는 모습이 중요할 뿐이다.


결국 알로샤는 부모에게서 존재의 이유를 찾지 못하고 사라진다. 알로샤 수색을 위해 경찰에 신고하지만, 사실상 형식적인 것에 그치고 자원봉사단체에게 의지하라는 답변만이 돌아온다. 러시아의 정치(공권력)가 어떠한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고, 시민사회의 발전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반(알렉세이 파테예프)이 지휘하는 자원봉사단체는 조직적이고 헌신적이다. 시민사회의 협력과 연대만이 유일한 희망인 것처럼 묘사된다.


보리스가 운전하는 장면에서 라디오 언론이 나온다. 세기말도 아니고 21세기인 지금, 허무맹랑한 종말론을 얘기하고 있다. 이는 정부에서 언론을 잘 통제하고 있거나, 언론이 제기능을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러시아의 2018년 언론자유지수는 49.96점(최상은 0점 높을수록 부정적이다)으로 세계에서 148위이다. 언론은 이후에도 라디오, TV로 종종 등장해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대신한다.


제냐의 어머니는 외부와 차단된 삶을 살고 있다. 외손주의 실종을 걱정하는 것보다도 자신의 딸과 사위를 비판하는 것에 더 열중할 정도로 독선적이고 강압적인 모습을 보인다. 제냐의 어린 시절이 그만큼 혹독했으리라는 짐작을 할 수 있다. 제냐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어머니의 말을 들을 걸 그랬다고 후회한다. 소련의 붕괴 이후 문화적, 경제적 위기가 찾아오자 다시 스탈린의 시대를 그리워했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2008년에 러시아 정부에서 스탈린의 지지도를 알아보는 설문을 했는데 절반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 스탈린 이후로 최장기 집권하고 있는 푸틴 대통령도 스탈린을 두둔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제냐는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바뀌는 과도기에 놓인 러시아인을 대표하는지도 모른다.


영화의 마지막, 제냐는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벌어지는 전투에 대한 뉴스를 접한다. 제냐가 듣고 있는지 흘겨 듣는지는 알 수 없다. 곧이어 러시아 대표 스포츠 브랜드 트랙탑을 입고, 발코니로 나간다. 어떠한 동요도 없이 러닝 머신에서 달리기 시작한다. 이 장면은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행하는 정책에 대한 비판이고, 동시에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로 인해 그런 정책이 묵인되고 있는 것을 뜻한다.


알로샤가 사망한 것인지, 아니면 끝내 실종된 것인지 단정할 수 없다. 아직 어딘가에서 알로샤는 잘 지내고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도 가질 수 있다. 다만 러시아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사랑, 혹은 사랑을 크게 아우르는 보편적 가치가 어떻게 될 것인가 지켜봐야 할 것이다.



4.18 개봉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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