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주방을 만들다가 느끼게 된 잡다한 것들 - 02
작년 말 7명의 사망자를 낸 종로 고시원 화재 참사가 있었다. 전기난로를 사용한 방에서 불길이 번져 큰 사고로 이어졌다는데, 결국 관리 소홀로 고시원 원장이 입건되었다. 내가 고시원에서 살아봤기 때문에, 그리고 또 화재를 겪어봤기 때문에 뉴스를 접했을 때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부모님 집을 떠나 나와서 살게 된 첫 거주지가 고시원이었다. 집에서 다니기에 학교가 너무 멀어 학업에 집중하고자, 화장실과 샤워실을 공용으로 사용하는, 옆방 아니 옆옆옆방의 조그만 소리조차 모두 들리는 2평도 안 되는 곳에서 수능 시험을 치룰 때까지 2년을 살았다. 그 당시에는 그 환경이 ‘열악’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일용직 노동자, 장기 고시생들 흔히 말해 ‘돈 없어서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지만, 거주자 모두가 깨끗하고 조용히 잘 지냈고 인심이 후한 사장님 부부가 굉장히 운영을 잘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친한 친구들이랑 같이 살았기 때문에, 솔직히 하루하루가 재밌었다.
고시원에서 시작해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나의 떠돌이 생활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고시원(2평, 서울 창동, 고등학교), 기숙사(8평, 서울 수유, 대학교), BOQ (9평, 강원도 고성, 군대), 원룸(6평, 서울 연신내, 회사원), 원룸(9평, 전남 나주, 회사원), 셰어하우스(50평, 서울 삼청동, 회사원), 오피스텔 (6.5평, 서울 신도림, 회사원), 셰어하우스(50평, 서울 군자동, 회사원), 오피스텔 (11평, 서울 문정동, 회사원). 팔자가 그러한지 대학 이후 자주 근무지가 변경되는 바람에 이사를 꽤 많이 다녔다. 2번의 셰어하우스 경험이 있지만, 그것을 포함하더라도 대부분은 원룸이었다. 솔직히 말이 좋아 원룸이지, 부모님들이 말씀하시는 단칸방에서 너네 키웠을 때의 그 단칸방이다.
요즘 말인 원룸으로 이어서 얘기를 하자면, 원룸에서는 뭘 하기가 힘들다. 방이 좁고 환풍이 잘 안되니 일단 요리가 하기 힘들다. 그래서 배달음식을 주로 시켜 먹지만, 나오는 쓰레기가 처치곤란이라 그것도 어느 순간 줄어들게 된다. 마찬가지로 빨래를 하기도, 말리기도 힘들다. 대부분은 방음이 잘 안되니 티비를 크게 틀어 놓기도 힘들고, 애인과 사랑을 나누기도 힘들다. 원룸에 사는 1인 가구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2017년 기준 전국 19,590,000가구 중 28.7%인 5,613,000가구가 1인 가구라고 하니 꽤 많은 것은 사실이다. 물론 모든 1인 가구가 원룸에 사는 것은 아니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람들을 포함하면 많으면 많지 적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나도 몇 번은 주소지를 본가에 두고 살았다.) 위에 열거한 불편을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겪는 다니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와 동시에 불편을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 다른 말로 하면 수요가 형성되고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서비스의 공급이 나타났다. 그러니까 시장이 형성되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처음 시작은 카페인 것 같다. 프랜차이즈 카페 시장의 성장을 원룸 거주인구가 이끌었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아주 경험적인 관점에서, 축구할 때 빼고는 집에서 거의 나가지 않는 히키코모리성 성격의 소유자인 나조차도 원룸이 답답해서 카페에 가곤 했다. 커피를 좋아해서 혹은 커피의 맛에 눈을 뜨는 수요자가 되서라기 보다는, 노트북을 켜면 그 열기 때문에 더워서, 여름이나 겨울에는 하루 종일 에어컨이나 난방을 틀어 놓기 돈이 아까워서, 왠지 이 골방에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폐인이 된 것 같은 자괴감? 비슷한 것에 마치 독서실 나가듯 카페를 갔다. 커피라는 식음료가 내 미식 생활의 일부가 되어 카페를 찾아 나가는 것이 아니라, 원룸이라는 거주공간의 환경이 아주 형편없기 때문에 그보다 효용이 좋은 카페라는 공간을 출입했던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맥락(거주공간의 환경이 아주 형편 없다는)에서 스타트업 서비스를 좀 더 찾아보자면, 다방, 직방, 세탁특공대, 리화이트, 청소연구소, I/O, 요기요, 배달통, 배달의민족, 마타주, 오늘의집 등 1인 가구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가 등장했고, 성장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나의 떠돌이 생활 중에는 ‘셰어하우스’가 두 번 있는데, 이 경험을 통해서 깨달은 게 한 가지 있다. 사실 나는 친구들이나 여자친구가 없어도 혹은 자주 만나지 않아도 그다지 외로움이라는 것을 잘 느끼지 않는, 그러니까 타인과의 교류에 꽤나 무덤덤한 사람인데, 이런 내가 누군가와 같이 살면서 하루에 한두마디 별 의미 없는 대화를 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감화(?)를 체험했다는 것이다. 원룸에서는 말할 사람이 없으니까, 정말 하루 종일 말을 하지 않을 때도 있고, 그 단계를 지나 혼자 말을 하기 시작하는 경우까지 생긴다. 그런데 셰어하우스에서 살다 보니 친하지 않아도 오며 가며 안부도 묻고, 라면 끓이는 냄새라도 나면 같이 먹을까 생각도 하고, 날이 좋으면 같이 산책이라도 하는 게 어떨까 하는, 혼자 원룸에 살았으면 일어날 리 없는 행동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좋다’고 나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카페와 세탁대행과 마찬가지로 바로 이 부분을 스타트업 비즈니스에서 찾아보면, ‘커뮤니티’, ‘모임’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여기서부터는 원룸 거주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그림 그리기 수업을 다녔었다. 노트폴리오라는 곳에서 운영하는 집시라는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 선생님의 프로그램이었다. 가격은 정확이 기억이 안 나는데 일주일에 한 번 갈 때마다 4만원 정도였다. 선생님이 정말 잘 가르쳐 주시기는 했지만, 그 프로그램 최고의 만족은 바로 그림 스킬이 아니라 바로 ‘분위기’였다. 취미라는 것은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라는 뜻인데, 즐기러 온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분위기가 좋을 수밖에 없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서로 그림을 보며 칭찬해주고, 조금 못 그려도 웃어넘기는, 시간이 되면 같이 식사나 커피 한잔하는 그런 분위기. 한마디를 하지 않거나 티비를 보며 혼잣말을 하는 원룸 거주자에게는 너무나 꿀맛 같은 소통이다. 나는 트레바리로 대표되는 일종의 모임 서비스가 각광받는 것을 그런 관점에서 바라본다. 책읽기, 글쓰기, 달리기, 영어회화, 축구, 헬스, 외식 등 분야는 다양하지만, 무언가를 습득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 얻는 감정적 충만함이 서비스의 본질이 아닐까?
공유주방 비즈니스를 하면서도 요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바로 ‘커뮤니티’고 ‘감화’이다. 우리 회사는 가끔 네트워킹 파티(진짜 파티다. 보통 새벽까지 진탕 마신다)를 하는데, 그럴 때 창업을 하시고 나가서 일을 하시는 분들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꼭 한두 분씩 찾아와 주신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해봤다. 외식업이라는 것이 아침부터 저녁 늦게 혹은 새벽까지 굉장히 고된 일인데, 우리가 그들에게는 어쩌면 사적인 영역이고, 커뮤니티고, 감화를 일으키는 대상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포인트. 이번에 사직동에 지점을 오픈하며 예전에 멤버이셨던 분을 오랜만에 만났다. 그분 왈 ‘솔직히 저도 그렇고 음식 하는 사람들 다 고집 세고 성격이 이상한데, 매니저님들이 그거 받아주고 일하는 게 어디예요. 그게 고맙죠. 매니저님들 때문에 위쿡 오는 거죠.’ 재밌다. 투자자들에게 보여주는 IR, 뉴스 등의 언론보도, 심지어 사업설명회에서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core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