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변호사의 아이들은 자기 부모들이 법정에서 열띤 논쟁을 벌이는 것을 보고 그릇된 생각을 갖게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부모에 맞서 논쟁하는 상대방을 부모의 개인적인 적대자로 생각하고 고통을 받는다는 거지요. 하지만 첫 번째 휴정 시간에 논쟁을 벌이는 사람과 팔짱을 끼고 다정하게 법정을 나가는 모습을 보고 여간 놀라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부분에서 부부 싸움에 대해 생각했다. 자기들의 부모가 다른 대상이 아닌 서로에게 열띤 논쟁을 벌이는 것을 보면 아이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가치관이 다른 남편하고 살다 보니 본의 아니게 의견 충돌이 많이 일어난다. 특히 "돈"에 대한 가치관이 가장 다르다. 남편을 돈을 엄청 좋아하는 사람이고 매사 모든 걸 돈과 연관 지어 생각한다. 문제는 그런 발언들을 아이들 앞에서도 거침없이 한다는 거다. 아이에게 대놓고 말할 때도 많다.
소아과를 같이 갔는데, 소아과 대기번호가 57번이었다. 그걸 보고 하는 소리가
"와, 여기 의사 돈 엄청 많이 벌겠네. 00아! 의사 돼라! 의사가 답이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러면 나는 매번 "애들 앞에서 그런 소리 좀 하지 마"라며 응수했다. 그런 사소한 시작이 부부 싸움으로 이어지는 일이 잦아졌다.
이런 일들로 인해 갑자기 걱정이 많아졌던 날, 대학교 동창인 남자 사람 친구한테서 잘 지내냐고 연락이 왔다. 마음이 심란하던 차에 나도 모르게 속엣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아이 아빠의 가치관이나 말버릇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 받고 힘들다고. 그랬더니 나보고 걱정하지 말란다. 어차피 아이들은 특히 남자 애들은 엄마 아빠보다 학교 다니면서 친구들한테 많이 배우고, 만화책에서 많이 배운다고 했다. 무협지에서도 배운다고 한다. 듣고 보니 맞는 말 같았다. 나는 저절로 슬램덩크를 떠올렸다. 친구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자기는 학교 다닐 때 엄마가 공부 공부해서 너무 싫었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집에 놀러 오는 친구들마다 그 친구에게 엄마는 "너 공부 잘하니?" 하고 물어서 친구를 데려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자기는 공부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살지 않았다고. 근데 너 공부 되게 잘했잖아. 라고 말하니 그냥 웃었다. 아무튼 아빠의 말을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00는 똘똘해서 크면서 옳은 가치관을 잘 찾을 거라며 나에게 걱정을 내려놓으라고 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우리 집 책장 맨 위 칸에 꽂혀 있는 슬램덩크 시리즈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아들1이랑 빨리 슬램덩크 같이 보고 싶다." 하고.
이 대화를 한 지 1년이 지났는데, 나는 여전히 걱정하며 산다. 사춘기가 되어도 성인이 되어도 걱정은 계속될 것이다. 이런 걱정이 다 쓸데없다는 걸 알지만 끊어내지 못할게 뻔하다. 그래도 전보다는 그 걱정의 길이가 짧아지긴 했다. 걱정을 내려놓고 살 수 없는 한, 아이 앞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고 살아야 하는지는 평생에 걸친 과제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