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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그 자체였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일생

by 김재완

교황청 현지 시각 2025년 4월 21일, 궁무처장 케빈 페럴 추기경은 역대 가장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을 공식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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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페럴 추기경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늘(21일) 아침 7시 35분에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삶의 전체를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데 헌신했으며, 가장 가난한 이들과 가장 소외된 자들을 지지했습니다.”

전날 부활절 대축일에서도 가자지구의 상황을 염려하고, 가장 괴로운 상황에 놓인 인간들을 걱정하였기에 교황의 선종은 너무나도 황망하다.

남의 눈치 안 보기로 유명하고 프란치스코 교황과 집권 1기에 대립각을 세웠던 트럼프도 미전역에 조기 게양을 지시했고, 장례식에 참석하겠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으며,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도 한뜻으로 조의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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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선종 발표 후,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자들>


특히 교황의 고국인 아르헨티나는 “우리는 고아가 됐다”며 7일간의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브라질과 스페인도 애도 기간을 정해 그를 추모하기로 했다.

최초의 라틴아메리카 출신이자, 최초의 예수회 출신이며 무려 1282년 만에 비유럽에서 탄생한 교황 프란치스코는 14억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종교가 없는 필자에게도 큰 울림을 준 시대의 어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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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과 한국의 유흥식 추기경 출처-<연합뉴스>


<7가지 키워드로 알아보는 교황의 삶>

프란치스코 교황은 1936년 12월 1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Jorge Mario Bergoglio)’.

이후 그는 어떤 인생을 살아왔길래 지구촌 시민들이 그의 죽음을 유독 안타까워할까? 다른 종교인들과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7가지 키워드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을 알아보자.

1. 축구

그는 중학교 시절부터 아버지가 회계 업무를 하던 양말공장에서 허드렛일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진학 후에도 학업과 일을 병행하였다. 시간이 남을 때는 여느 아르헨티나 소년들처럼 좁은 골목에서 누더기로 만든 공으로 축구를 즐겼다.

"축구 실력이요? 저는 양발이 모두 왼발이었습니다. 하하하. 저는 메시처럼 왼발잡이가 아닌데 양발 모두 형편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골키퍼를 주로 맡았어요. 골키퍼를 하며 어디에서 날아올지 모르는 위험에 대응하는 법을 배웠어요.“

그는 고향의 축구팀인 산 로렌스의 열혈 광팬이었다. 그의 회원번호는 88235인데, 산 로렌스의 한 팬이 흥미로운 사실을 X에 올렸다.

"교황은 88세로, (부에노스아이레스 시간으로) 오전 2시 35분에 선종했다. 그런데 그의 회원 번호는 88235이다.”

선종하신 시각이 그가 애정하던 축구팀의 회원번호와 같다.

88(세)2(시)35(분).

교황청에서 발표한 선종 시각은 오전 7시 35분이지만, 아르헨티나 시각으론 2시 35분이니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아니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못 말리는 교황 사랑과 축구 사랑이 뜨겁게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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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초심

화학 기술자로 일하던 그는 1958년 21세 나이로 예수회에 입회했다. 1992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보좌 주교로, 1998년에는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2001년에는 마침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

그런데 그는 세월이 지나고 직위가 올라가도 평신부가 하는 일을 꾸준히 같이 하였다..

“저기... 추기경님.... 이제 혼자의 몸이 아니시고 추기경의 직위에 맞게 더 큰 일을 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빈민촌 사목 활동은 다른 신도들에게 맡기시고. 그 지역은 아시다시피 우범지대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보내시는 것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거리로 나가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고, 어려운 곳을 외면하는 성직자가 무슨 성직자입니까? 나는 이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고 여러분들도 마찬가지 아니오?”

“그럼, 제발 혼자 나가지 마시고....”

“저기... 대주교님. 추기경님 이미 나가셨습니다.”

“어허! 환갑이 넘은 양반이 왜 이리 빨라! 뭣들 하나. 어서 따라나서지 않고.”


3. 청빈과 이름값

2013년 2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고령을 이유로 사임한 그해, 그는 교황을 선출하는 독특한 선거 방식인 콘클라베에서 새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의 나이 77세의 일이었다.

“성하님! 교황명은 정하셨는지요?”

“난 빈자의 성인이라 불렸던 프란치스코로 정했소이다.”

성직자로 살아온 대부분의 시간을 아르헨티나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살아온 그에게 더 없어 잘 어울리는 교황명이 아닐 수 없다.

대주교 시절에도 주교관이 아닌 허름한 집에서 살며,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위해 아르헨티나 정부를 비판한 그의 삶은 교황이 되고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교황님! 빨간 구두와 금으로 된 십자가 목걸이, 레이스가 달린 사제복은 취임식의 전통입니다.”

“나는 그 전통을 따르지 않겠습니다. 내가 살아오던 방식대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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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교황 취임식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출처-<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은 결국 자기 고집대로 검정 구두에 철제 십자가 목걸이를 목에 걸고, 장식이 일절 없는 옷을 입었다. 이후로도 그의 행보는 꾸준했다. 수수한 옷차림이었으나 그는 임기 동안 누구보다 환하게 어두운 곳을 밝혔다.

“교황님, 이러시면 정말 곤란합니다. 경호팀 사람들도 생각 좀 해주십시오. 펜트 하우스 대신 손님들이 묵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주무시는 건 어찌해 보겠는데, 소형차라니요! 방탄차가 정 싫으시면 중형차라도 타서야. 교황의 품위와 그 체통 이런 것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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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한국 방문 당시 한국 소형차에 탑승한 모습>


“성직자의 품위는 청빈한 삶으로 올라가고, 힘든 이들에게 다가감으로 완성되는 것이오.”

교황은 교황청에 마련된 화려한 숙소를 굳이 마다하고 교황청을 방문하는 손님들이 묻는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4. 내부 고발자

교황은 취임한 해인 2013년, 마피아의 돈세탁 창구이자 검은돈이 흘러들어 간다는 음모론의 온상인 ‘바티칸 은행’을 개혁했다.

"바티칸 은행장을 외부 금융인으로 임명하고 장부에 적혀있지 않은 계좌 4,000여 개는 전부 없애버리세요. 위계질서를 좋아하진 않지만, 내가 교황 아니오? 사제가 무슨 돈이 그리 필요합니까? 혹여 내가 오해했더라도 교회가 사람들에게 오해받아서 좋을 건 없지요."

2014년에는 교황청 산하에 아동보호위원회를 설치하며, 내부에서 쉬쉬하던 그 일을 정면으로 쏘아붙였다.

"성직자의 성범죄는 사탄 숭배만큼이나 추악한 일입니다. 아동 대상 성범죄를 은폐한 주교를 당장 해임 하세요."

2017년 2월 아침 예배에서도 교황청을 발칵 뒤집어 놓은 뼈 때리는 말을 했다.

"위선적인 가톨릭 신자보다 무신론자가 더 낫습니다."

"네????"

예배에 참석한 모든 이가 자리에 얼어붙었고, 귀를 의심했으며 후폭풍 또한 만만치 않았다.

"교황 성하! 제발 그런 말씀하실 거면 미리 저희에게 귀띔이라도..."

"미리 말하면 하지 말라 할 것이 뻔하니 그냥 말한 것이오. 그리고 내가 틀린 말 했소?"


5. 포용

많은 사람들이 종교인이라면 부족한 타인을 용서할 줄 알며, 나와 다른 타인을 포용할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생각보다 그런 종교인은 많지 않다. 이 사실은 그간의 역사가 말해주는 바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만은 우리가 바라던 성직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9·11 테러 이후 처음으로 이슬람 수니파 최고 지도자 셰이크 아흐메크 알타예브와 만났으며, 역대 교황 최초로 여성과 이슬람교도에게 세족식을 거행했다.

"교황 성하! 감사합니다."

“그런 말 마시오. 원래 종교란 이런 것이어야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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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에는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이라크를 방문하여 무장 테러 희생자들을 위로하기도 하며 진정한 종교인의 모습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데, 국경이나 종교가 걸림돌이 되어서야 쓰겠소?"

세상에 엄연히 존재하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들이나 교회가 완강히 부정했던 이들에 대해서도 그다운 발언을 남긴다.

“만약 동성애자가 선한 의지를 갖고 신을 찾는다면, 내가 과연 그를 심판할 수 있겠는가?”

2016년,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특별미사에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온 난민 6,000여 명을 향해 뜨거운 환영의 말을 남기셨다.

"예수님도 난민이었습니다.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6. 재산

그의 재산은 얼마나 될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추기경이던 시절까진 월급을 수령했다. 추기경의 월급은 700만 원대였다. 그러나 교황으로 취임하며 그는 무보수로 봉사했다.

셀레브리티 넷워스(유명인 순자산)에 따르면, 그가 선종할 때 수중에 있는 돈은 단돈 100달러였다고 한다. 오타 아니고 진짜 100달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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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뉴스1> 링크


아무리 평생 가난한 성직자로서 청빈한 삶을 이어가겠다고 '가난 서약'을 했다지만, 이런 약속을 정말로 지키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와 같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맹세하는 의사 직군을 비롯하여 여러 직업군이 서약을 하지만, 이를 실제 지키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종교인이라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7. 유언

교황은 로마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 지하에 특별한 장식 없이 간소하게 묻어달라는 부탁과 함께 장례식 비용은 미리 마련해 두었다는 유언을 남겼다.

마치 시골 외할머니가 임종 전 쌈짓돈마저 내놓으시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의 마지막은 이런 모습은 아니었을까?

"모두 나 때문에 참으로 고생이 많았어요. 빈자와 약자를 위해 살다 보니 정작 가까이서 나를 도와준 여러분께 까다롭게 군 건 아닌지 마음이 쓰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그대들의 일이니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그리고 저기 맨 아래쪽 서랍에 돈이 좀 있는데, 내 장례식 비용이니 잘 부탁합니다.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절대로 화려한 장례식은 안 됩니다. 교황으로서 마지막 청입니다."

교황의 삶을 돌아보다 보니, 종교인은 아니지만 자연스레 우리 사회의 진짜 어른이라 불리는 김장하 선생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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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훗날 헌법재판관이 되는 청년 문형배의 학비를 무상으로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돈이 필요한 세상의 모든 곳에 아낌없이 뿌린 '어른 김장하' 선생은 돈과 똥의 공통점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돈과 똥은 쌓아두기만 하면 악취가 나지만, 밭에 골고루 뿌리면 새 생명을 키울 수 있습니다."

권력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손안에 쥔 권력을 필요한 곳에 사용하면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사후에도 애도가 이어지고 삶 자체에 아름다운 향기가 흐른다. 허나, 운 좋게 얻은 권력을 오남용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를 뿐 아니라, 만만대가 흐르도록 역사에 악취를 풍기게 된다.

글을 마치며,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이자 종교인이었던 프란치스코 교황께 그 삶에 대한 고마움을 표한다. 이제 영원한 안식을 취하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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