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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스 Dec 25. 2024

신경치료는 여러 번 와야 해요

음악은 인간에게 허락된 유일한 마약

  최근 로제의 노래 ‘아파트'가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데 이 노래를 한 시간 동안 아주 큰 소리로 들어본 적이 있는가? 특히 좁고 긴 동굴의 끝을 손끝 감각만으로 찾아가며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서 말이다.


  영구치 신경치료 과정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치아 내부에는 신경이 있는데, 신경이 죽으면 그 공간은 좁고 깊은 세균 왕국이 된다. 이곳에서 세균들이 뿌리 끝으로 빠져나가 염증이 커지기 때문에, 신경을 제거하고 소독한 뒤, 세균이 살지 못하도록 주황색 재료(일반적으로)를 채워 막아두는 것이 신경치료다. 보호자분들께서 여러 번 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많이 호소하시는데, 여러 번 와야 하는 건 과정의 복잡성도 있지만, 이 감염이 심한 치아는 여러 번 반복해서 소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우식(충치)이 심하면 그 근관을 찾는 게 오래 걸리는데 한 번에 하기 힘드므로 여러 번에 나눠서 해야 한다. 


  치아 뿌리 쪽의 신경은 좁고 깊게 이어져 있어서, 치과의사는 그 통로를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손끝 감각만으로 찾아내야 한다. 마치 어두운 동굴을 손가락 끝 감각에 의지해 헤쳐 나가는 느낌이다.


  이런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과정에서 환자가 조용히 있어 주면 참 좋겠지만, 입을 벌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무서워하는 아이들에겐 각자만의 방식이 있다. 그중 가장 흔히 이용되는 방법이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꼭 한 곡만을 반복해서 틀어달라고 한다.


  예전에 한 시간 동안 ‘Toca Toca’(꼭 들으면서 글을 읽어주길 바란다)를 반복재생하며 신경치료를 했던 적이 있는데, 그 노래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잘 때까지 맴돌았다. 이번엔 영구 어금니 머리가 거의 날아간 아이의 신경치료를 하며, 로제의 '아파트'를 한 시간 동안 몇 번째 반복해서 듣고 있다. 흥겨운 멜로디가 뇌의 반쪽을 마비시키는 것 같다. 


  특히 근관이 막히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동굴에서 앞이 막혀 길을 찾을 수 없는, 온몸의 혈관이 막힌 듯한, 정말이지 온 마음이 답답해지는데, 그 와중에 듣는 노래는 트라우마를 자아낸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친구는 신경치료 도중 아이브의 'Love Dive'를 반복 재생 당했는데, 하이라이트의 "우우우우" 부분이 이제는 물귀신 소리처럼 들린다고 하소연했다.


  오늘 밤에도 다시 '아파트' 노래를 뚫고 근관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마음이 답답하다. 안 들을 방법은 없을까 싶다가도, 다시 생각해 보면 아이도 이 반복되는 노래를 들으며 뇌를 마비시켜 통증을 견디는 건 아닐까 싶다. 누군가 그랬다. 음악은 인간에게 허락된 유일한 마약이라고. 여러분도 아주 힘든 일을 해야 할 때 같은 곡을 한 시간 동안 반복 재생해 보라. 의외로 진통제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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