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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inJane Nov 09. 2022

푸푸


생각보다 오래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있었는데

일상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자다가 잠깐 깨서 물을 마실 때 3초 정도, 

운전하다 신호 대기에서 10초 정도, 

그리고 문득 5초 정도.

그렇게 마음 안에서 불쾌함으로 맴돌았다.


일단 일을 하기로 수락하고 나면 내 결정을 후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데

이 일도 마찬가지였다.

썩 좋은 페이도 아니었고 시간이 무척 들 일이었지만

내가 제안한 기획을 선뜻 수락해 주어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일이었다.

그 일을 하는 두 달 동안 참 좋다는 말만 계속했다.

보람되었고, 개인적인 창작물들이 막힐 때마다 그 일은 따뜻한 위로였다.

하지만  품속에 넣고 다닌 지 3개월이 되었을 때 담당자가 그 작품들을 수정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써낸 글에 이런저런 단어들이 첨가되어 있고,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고, 포장이 되어있었다.

원본과 담당자가 건넨 파일이 다른 걸 발견했을 때, 

누가 내 몸 안으로 들어가 내 심장을 주먹으로 한대 쾅 치는 기분이 들었다.

그 진동으로 몸도 떨리는 것 같았다.

나는 굉장히 융통성 있는 사람이지만, 또 반면 나는 도덕성이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이다.

나는 줄을 서야 하면 줄을 서야 하고, 이용한 쇼핑카트는 제 자리에 놓아두어야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갈 때 뒷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면 문을 잡고 있는,

나는 가로 세로를 자로 잰 듯 반듯하고 싶은 사람인데

그 담당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나와 반대인 사람이었다.


결국 나는 담당자가 수정하고 덧붙인 창작물들로 더는 작업을 못하겠다고 했고,

하지만  그 이유를 참가자들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이 기획에 참여한 사람들이 나와 담당자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이 들지 않길 바랐고, 

그 마음이 참가자들에게 품었던 내 진심이었다.

나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인수인계를 했고 그 담당자가 그 일을 마무리했는데

그 마무리가 또 한 번 내 심장을 주먹으로 쾅. 쳤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내 기획은 본인 기획으로 바뀌어 있고, 사람들 앞에서 본인의 심경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흘리는데

나는 정말 못 볼걸 본 것 같이 눈을 감아버렸다.

모두가 이 기획에 참여하는 게 제 꿈입니다!

라고 그 담당자는 외쳤고, 참가자들은 환호했고, 나는 똥물을 뒤집어쓴 것 같았다.


_


핼러윈데이, 누군가가 쓴 글처럼 이태원이 히말라야처럼 위험한 곳도 아니고 그냥 이태원일 뿐인데, 그 예쁜 젊은 아이들이 하루 놀러 갔던 곳에서 일어난 참사는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고 그 소중한 목숨이, 꿈이 아까워 마음이 시렸다.

그런데 책임져야 할 위치의 사람들은 사고, 사망 같은 중립적인 단어를 쓰겠다며 단어부터 고르고,

외신 회견장에서 웃으며 농담을 하는 걸 보며, 못된 마음으로 당신들 중 누구라도 제 자식이 거기에 있었다면 버선발로 뛰어오지 않았겠냐고 따져 묻고 싶은 나는,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똥자를 또 뒤집어쓰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담당자와 정치인들이 겹쳐 보였다.

어느 누구도 나서 이건 내 잘못이라 내가 책임지겠다 하는 사람이 없다.

이 일로 다음 걸 도모하려는 사람들뿐이다.


_


똥. 자를 싫어한다.

그래서 굳이 영어로 바꾸어 푸푸라고 말하곤 한다.

글자조차 싫었던 그 똥물을, 내 온몸에 덕지덕지한 그 똥물을 간신히 조금씩 씻어내는 중이다.


남편과 바닷가 산책을 하며 씻어내고, 

원화를 만나 차 한잔하며 씻어내고,

종미에게 전화로 투덜거리며 씻어내고, 

정일이에게 빨리 고성으로 와달라고 칭얼거리며 씻어낸다.


하지만 내년에는 외부 일은 안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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