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기에만 할 수 있는 것들
작년에 둘째가 태어나고 아내가 어느 정도 몸을 회복한 뒤에 드디어 같이 운동을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집 앞에 수영장이 있어서 같이 수영강습을 등록했는데, 아이들을 번갈아가면서 돌봐야 하기 때문에 같은 시간에 하진 못했다.
나는 새벽에, 아내는 저녁에 수영강습을 듣다가 어느 날 문득 딸들과 아내를 마중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로 계획적인 인간이지만 때때로 즉흥적으로 살아가는 나는, 둘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첫째와 손을 잡고 아내가 운동 끝날 시간에 맞춰 길을 나섰다.
3분 정도 걸었을 때 첫째가 안아달라고 하는 바람에 한 팔로는 첫째는 번쩍 안고 한 손으로는 유모차를 밀면서 걸어가게 되었는데, 땀은 조금 났지만 아내를 놀라게 해줄 생각을 하니 설레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런데 우리의 계획이 무색하게 50m 넘게 떨어진 곳에서 우리 3인방의 모습을 한눈에 알아차린 아내가 손을 흔들었다. 분명 깜깜한 저녁시간이었는데, 엄마가 되며 위대해진 아내는 눈도 좋아졌나 보다.
다행히 엄마를 놀라게 해 줄 생각에 들떠있던 첫째는 엄마를 발견하지 못했고, 나는 급하게 몸동작으로 아내에게 숨어있으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육아를 시작하면서 곤히 잠든 딸들이 깰까 봐 몸동작으로 사인을 꽤나 많이 주고받은 이유 때문이었을까? 아내는 내 사인을 한 번에 알아듣고 길 옆 나무 뒤에 숨었고, 나는 그때부터 첫째는 내려놓은 뒤 "이제 조금만 걸어가면 엄마 놀라게 해줄 수 있어!" 라며 손을 잡고 걸어갔다.
갑자기 튀어나온 엄마의 모습에 첫째는 깜짝 놀랐고 그렇게 4인 가족은 깔깔거리면서 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참 별거 없는 일상인데도 이렇게 다시 떠올려보면 행복하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평범하고 흔한 일상도 금세 과거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우리는 이제 번갈아가면서 수영을 다니지 않는다. 두 살이 된 둘째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 우리는 함께 일하고 함께 운동한다.
처음으로 같이 수영장에 간 날, 수모를 쓴 아내의 모습이 내가 생각했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놀랐다. 나는 수모를 쓰면 굉장히 못생겨지는데 아내는 꽤 잘 어울렸다.
번갈아가면서 따로 운동하는 것보다 같이 하는 게 더 즐겁지만, 지나고 보니 그 시절에만 할 수 있는 게 있었다. 아이들은 정말 무서운 속도로 자란다. 그래서 별거 없는 일상이라도 눈과 마음에 많이 담으려 노력하고, 사진과 영상으로도 담아두고 있다.
오늘따라 지금 남기고 있는 육아일기 같은 영상이 더 소중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