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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Apr 07. 2024

신촌 데이트


정기 검진 때문에 세브란스 병원에 갔다. 


늘 혼자 가던 길이지만 이번에는 봄 나들이 겸 딸과, 남편의 손을 잡고 나섰다.

진료가 끝나고 나와 연세대에 들어가 캠퍼스 구경도 하고 꽃구경도 하는데 새삼 캠퍼스 분위기에 설렘은 보너스. 


신촌역에서부터 연세대 캠퍼스 안 까지 벚꽃은 정말 흐드러지게 피었고 그 속에 젊은 사람들, 우리 같은 가족들이 뒤섞여 행복하고 평안한 봄 한 철을 겪고 있었다.


피터팬이라는 카페 겸 베이커리에서 라테 한 잔을 샀다. 5,000원이나 하는 가격이 살림하는 아줌마에게는 부담이었으나 신촌이고 연세대고 캠퍼스고 봄 나들이고 하는 갖가지 이유를 들어 한 잔 마셨다. 어쩐지 봄을 마시는 기분이었다. (바닐라 라테는 없었다.)


출입구 한편에 놓인 신문보관함이 눈에 띄었다.

대학 시절, 나는 학생 주간 잡지, 대학내일의 리포터였다. 운동화 신고 정말 열심히 뛰어다녔다.

부족한 학벌을 메우기 위해 밤낮없이 살며 글을 썼다.

나의 20대를 가득 채웠던 '대학내일'이 아직도 남아있나 싶어 뒤적이니 

이제는 잡지를 만들지 않는 것인지 한 부도 보이지 않았다.


기자든 작가든 PD든 무엇이든 만들어 내는 삶을 살고 싶었다.

열심히 노력하면 글을 쓰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싶어 부단히 달렸는데

지금 나는 교사가 되었다.

애타게 바랐던 글을 만들어 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어쩌면 더 큰 세상을 조금씩 만들어 내고 있는 중일지도.


신촌역을 지나 홍대를 지나 합정으로 향했다.

데이트할 적엔 그 길이 1시간이면 충분했고, 걸을만했다.

딸과 함께하는 그 길은, 유모차를 끌기에 너무 험했고 (언덕이 많다.) 좁았고, 사람이 넘쳤다.


가는 곳마다 벚꽃은 바람과 햇빛을 받아 살랑였고

내 마음도 일렁였다.

아직은 이런 낭만을 모르는 딸은 그저 티니핑과 쿠로미가 좋아서 그림을 그리느라 여념이 없었고

정말 10년 만에 온 남편은 모든 것이 새로워 보였다.


어제는 봄이었다.

바람이 불었다.

꽃잎이 날렸다.


잊고 있던 스무 살 적의 내가

바람에 실려 날아왔다.


그렇게

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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