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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라보자 Nov 23. 2020

제98차 다이어트를 시작하였습니다

일단 살은 빼고 보자

결혼하는 과정은 보기만 해도 훈훈한 배우들이 등장하는 미니시리즈처럼 달콤했지만, 이혼하는 과정은 얼굴은 아는데 이름을 모르는 배우들이 나오는 아침드라마처럼 살벌했다. ‘씁쓸한’, ‘슬픈’이라는 말로도 부족해 ‘살벌한’이라는 형용사를 붙인 이혼이 나에게 주었던 몇 안 되는 선물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강제 다이어트이다.


대부분의 남자들과 비슷하게 결혼을 결정한 순간부터 살이 찌기 시작했고(웨딩 촬영을 앞두었음에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는), 신혼이 지난 어느 순간부터는 슬림핏 셔츠를 입을 수 없게 되었다. 일반 셔츠는 아재 느낌이 난다고 여겨 입질 않았었는데,  슬림핏 셔츠의 단추가 숨을 쉴 때마다 안에서부터 올라오는 배의 강력한 압력을 견딜 수가 없겠다고 판단되었을 때, 부득이하게 아재 셔츠로 전향할 수밖에 없었다.



 비만도가 정점에 이르게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출장을 마치고 회사로 복귀하기 위해 차에 올라탔는데, 아래에서 가을밤 불꽃놀이 축제에서 들릴법한 사람을 흥분시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부우우우욱’


경쾌한 청각의 즐거움 뒤에는 허벅지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와 촉각의 기쁨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것도 잠시 시각의 민망함이 좌절하게 만들었고, 집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었다.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으면서 정신을 차리고 자아성찰과 비판의 시간을 거쳐 개선했어야 했는데, 그러하질 못했다. 한 사이즈 큰 옷으로 교체하는 임시방편을 택했고, 새로운 옷과 함께 하는 삶에 적응하였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마음이 불편하여 매년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65kg의 건강한 신체 만들기


몇 년째 달성하지 못해 이어지는 나의 신년 목표이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생각만 하고, 말만 하고, 움직이질 않아서, 행동하게끔 하려고 하늘이 도와주신 건지,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바로 가정의 붕괴와 함께 말이다.


역시 스트레스가 다이어트에 최고였다. 간헐적 단식, 해독주스 다이어트, 헬스 다 필요 없다. 스트레스 다이어트는 특별한 관리 없이 날 리즈시절로 돌아가게끔 만들었다. 단, 이때의 스트레스는 일상생활에서 겪는 흔한 스트레스가 아니다. 살아가면서 단 한 번 겪을 만한, 두 번 겪으면 졸도할 수 있는 극도의 스트레스만 해당된다. 어중간한 스트레스는 폭식으로 이어지니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추가로 주의해야 할 점은 스트레스가 사라지면 몸이 원래 상태로 회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신체는 생각보다 신비했다. 마음이 편해지면서 엄청난 회복탄력성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 놈의 육신은 본전 생각이 나는 건지 그 어느 때 보다 부지런히 지방이들을 모아갔고, 다시 나는 별거 전의 상태로 돌아갔다.


오늘도 단추와 단추 사이의 틈으로 배가 힐끔 인사를 했다. 아이컨택트 한 번 하자고. 나만 그 아이를 보면 다행인데, 다른 사람도 그 아이를 볼까 봐 심히 염려가 된다.


그리하여 셀 수도 없을 만큼 반복했던 그 결심을 다시 한번 해보고자 한다. 대신 단순히 살 빼야지 말고 확실한 이유를 찾아서 해봐야겠다.


우선 건강

자기 전에 먹은 야식이 원인인지, 먹다가 목이 막힐까 봐 곁들여 마신 맥주가 원인인지 모르겠지만 역류성 식도염 증상이 점점 빈번해지고 있다.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처럼 위산이 식도를 타고 올라와 단잠을 깨운다.


수면 중 그런 일이 벌어지면 심히 불쾌하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번호를 점지해 주시려 하는데 역류성 식도염 때문에 깰 수 없지 않은가.


이뿐만 아니라 혈압, 당뇨, 지방간 등 예전 건강검진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질병들이 신흥세력처럼 등장해 몸을 좌지우지하려고 한다. 장수할 욕심은 없지만 아픈 건 싫다.


지난가을 요추 1번이 골절되어 병원에 입원을 한 적이 있다. 병원에 온 엄마가 위로의 말씀으로 “ 아들. 넌 아프면 안 돼. 돌봐줄 사람도 없어. ”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뼈 때리는 말이다. 난 비양육자라 혼자 살기에 유사시에 날 간호해줄 사람도 없다. 자다가 큰 일을 치러도 주변에 알려줄 사람이 없다. 그렇다고 집 안에 활동을 감지하는 센서를 설치할 수도 없는 일이다.


코로나19가 활개 치는 현대 문명에 살아가는 일원으로서 더욱 건강 관리에 힘써야 할 듯하다.



위축된 심리

육체의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도 챙겨야 한다. 토실토실한 엉덩이, 볼록볼록 나온 배는 뼈뿐만 아니라 나의 멘탈도 짓누른다. 살이 오른 볼은 가뜩이나 작은 눈을 더욱 미니멀 라이즈 하게 일조하고, 꽉 끼는 옷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데, 괜히 사람들이 볼까 봐 걱정이 된다.




한창 당당하게 살아야 시기에 살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주눅이 드는 것은 옳지 않다. 제98차 살과의 전쟁을 다시 해봐야 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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