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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명 Apr 25. 2022

채움은 비워냄으로부터

여백을 전달하는 카페, 텅


채움과 비움, 두 단어 중 삶은 어느 쪽에 가까울까?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선택은 무언가를 '채우는' 쪽에 가깝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살기 위해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식사를 하지 않고 살 수 없듯 인간의 기본적인 생리는 채움의 연속이다. 일상에서는 주어진 일과 약속으로 하루의 시간을 채우고,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해 미래를 계획한다. 즉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결정들인 것이다.



그러나 지나친 채움은 번잡함을 수반한다. 사람이 밀집된 장소에서 소음과 불편함이 발생하듯 복잡하게 얽힌 욕심과 생각들을 해소하지 못하면 스트레스를 얻고 여유를 잃는다.


중요한 것은 균형, 혼란할 때 우리는 비워냄을 필요로 한다. 과도하게 집중된 에너지를 분산하고 여유와 평안을 추구하려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잘 비워내고 있는가?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하고 동시에 내보내려 하지는 않는가?



비워냄은 곧 용기


비워냄은 곧 여유라는 말에 대부분은 동의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필자는 비워냄에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남들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 과시하거나 소유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공간 역시 마찬가지이다. 과한 채움보다 여백을 남기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여유와 휴식을 제공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이야기에서 다룰 공간이 그러하다. 안국역 인근에 위치한 카페 텅, 비어있는 삶의 가치를 전달하는 곳이다.



다정한 공터


카페 텅은 다정한 공터가 되고자 한다. 서울에서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열린 공터가 되고자 하는 마음인 것이다. 그렇다면 다정함은 어디서 오는가? 공간 안에 담긴 콘텐츠로부터 전해진다. 여유로운 공간에서 편히 대화를 나누고, 멋진 경치를 감상하며, 부드러운 라디오 음성과 전시물로 우리의 교양을 채운다.



평등한 시선


건물의 한 층을 온전히 사용한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로비에 스탠딩 좌석을 배치하여 공간을 활용할 수 있게 했다. 메인 룸은 좌, 우로 양분했다. 바가 있는 오른쪽 공간에서 남산과 창덕궁을 바라볼 수 있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어느 좌석에 앉아도 경치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보통 2인이 착석을 하는 경우 누군가는 창문을 바라보게 되지만 누군가는 벽면만을 마주해야 한다. 텅은 이러한 시선의 비대칭성을 해소했다. 누구나 평등하고 자유롭게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커피와 차, 에이드, 밀크티뿐만 아니라 와인도 즐길 수 있는 장소이다. 보통은 주중엔 카페 야간엔 바로 운영하는 곳이 많으나 텅은 상시 와인을 즐길 수 있어 애주가들에게 메리트를 제공한다. 넓은 창으로 도시를 바라보며 낮술 한잔하기에 안성맞춤인 조건이다.





온도감


앞서 보았던 오른쪽 공간은 우드톤으로 따스한 색감을 전달했다면 왼쪽 공간은 어둡고 차분한 무채색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개인적으로 어둡고 잘 정돈된 인테리어를 선호하기에 매우 만족스러운 공간이었다. 창가 좌석에는 은은한 오렌지색 조명과 콘센트를 배치하여 원활한 작업과 독서를 돕는다.






세상의 모든 음악


전시와 음성이라는 콘텐츠를 함께 제공한다. 세상의 모든 음악이라는 이름의 사진전을 진행 중이며 깊은 시선이 담긴 포스터를 구매할 수 있다. 이에 더하여 돋보였던 요소는 바로 음성인데, 재생 중인 라디오 프로그램의 이름 역시 세상의 모든 음악이었다. 공간, 사진, 음악의 결 모두 차분함과 여유라는 단어로 통일된다. 번잡했던 정신과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돕는 피아노 연주곡과 사진들로 공간과 우리의 마음을 채운다. 전시 프로그램은 한 달 주기로 전시물을 바꾸어가며 진행된다.



무언가를 강조하거나 특별히 드러내지 않아도 여유와 몰입을 이끌어낼 수 있음을 배운다. 빈 공간의 여백만큼 각자의 감상이 더해지고, 다양한 생각의 가능성으로 공간과 관계할 수 있다.


의도된 여백으로 사람과 콘텐츠를 수용하며 다시 내보내는 순환을 이루어내는 곳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몸과 마음에 빈 공간이 있기에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고, 소화하고, 배출한다. 우리는 '그 자체로 여백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채우기 위한 삶이 아닌 비어 있는 삶으로 나를 인식해 보자. 나에게 맞는 것이 무엇인지, 덜어낼 것은 무엇인지, 어떤 좋음을 취할 것인지에 대한 답은 보다 선명해질 것이다.



시간: 10:00 - 00:00

연락처: 02-766-1933

가격: 아메리카노 5,500원부터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82 7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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