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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명 May 25. 2022

세상을 조감하는 눈

apma 안드레아 거스키 사진전


수많은 상품들이 진열된 대형마트의 모습이 액자에 걸렸다. 자칫 특별함 없어 보이는 이 사진은 미술관 벽면에 걸려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당기는 작품이다. 어떤 표현과 내용이 숨어있는 것일까?


사진을 자세히 뜯어보면 수직과 수평이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특히 이토록 넓은 공간을 한 번에 촬영하여 담으려면 이미지의 끝부분에 왜곡이 나타나야 한다. 하지만 본 작품은 모서리의 끝에 가서도 반듯함을 철저히 맞추어 낸다. 한 장의 사진이 아닌 수많은 사진들을 촬영하고 전체 모습으로 조합했기 때문에 가능한 표현이다. 대상을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담아내는 사진가 안드레아 거스키의 시선이다.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서 사진전을 감상한다는 것은 세계관을 확장시키는 매우 좋은 기회가 된다. 사진가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시각적 자극을 얻고 세상을 바라보는 낯선 관점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청명한 하늘이 마음을 맑게 만드는 주말 오후, 용산 아모레퍼시픽 사옥에 있는 미술관을 찾았다. 좋은 날씨는 전시회로 향하는 발걸음을 한결 가볍게 만든다.



영국 건축가 데이비드 차퍼필드가 디자인한 아모레 사옥의 내부는 외관만큼이나 압도적이다. 로비의 중앙을 과감하게 비워두고 천장을 높여 사람을 압도하는 공간감을 구현해냈다. 머리 위에서 자연광을 투과시키는 격자무늬 천장은 거대한 기하학 구조를 가지며 묘한 중력감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미술관에 입장하기 전부터 건축적 예술성을 뽐내며 개성을 전파하고 있는 것이다.





로비의 왼편으로 미술관 입구가 있다. 양쪽 벽면이 통창으로 된 덕에 바람은 느껴지지 않지만 자연과 맞닿은 공간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실내와 실외의 경계를 흐리는 채광과 공간감이 본 사진전을 감상하는 첫 시작점인 것이다.





안드레아 거스키는 유형학적 사진의 대가이다. 유형학적 사진의 특성을 간단히 말하자면 대상의 모습을 왜곡 없이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같은 종류나 형태를 가진 것들을 촬영해 모아 만드는 표현 방식이다. 작가는 대형 인화 방식을 고집하며 폭이 무려 5m에 달하는 작품들도 있다. 현대 문명과 자연을 기록하는 그의 방대한 세계관은 실제 사진의 물리적 크기에도 그만큼의 볼륨을 주입시킨다.



눈에 띄는 것 없이 차분하고 평화로운 산의 모습이다. 하지만 어딘가 특별하고 낯선 부분은 다음과 같은 요소들에 있다. 저렇게 높은 돌산을 올려다보는 위치에서 찍는다면 산의 언덕이 보다 쏟아질 듯 표현되고 돌의 꼭짓점은 드높게 솟아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공중을 비행하며 찍은 듯 험준한 산세는 마치 평지와 같이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이 가능한 이유는 산의 모습을 퍼즐 조각처럼 나누어 먼 거리에서 찍은 후, 하나하나 이어 붙이며 합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품 속 풍경과 대상은 왜곡 없이 평평한 세계가 된다. 한 장의 거대한 화폭 안에 자그마한 세상의 조각들이 섬세히 연결되어 구축된 것이다.



병풍처럼 보이는 건축물 역시 작가가 위치를 수시로 옮겨가며 모든 층의 위치를 개별적으로 담아낸 후 합성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층별로 높이가 다르기 때문에 눈높이 보다 위에 있는 층은 보다 작아지고 직사각형 창틀의 형태를 잃기 마련이다. 그것을 극복하려면 결국 같은 눈높이에서 찍어내야 한다. 작가의 성실한 높이 조절과 섬세한 보정 실력의 조화가 궁극의 합의점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빼곡한 바코드처럼 생긴 가로 줄들은 아스파라거스 밭을 찍어낸 사진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은 것이 마치 회화 작품의 결을 보는 듯하다. 이처럼 안드레아 거스키는 세상을 조감하는 시점을 전달한다. 인간 삶의 형태를 단면으로 제시하는 사진 한 장은 곧 거대한 세계처럼 보이기도 하니, 일종의 시각적 역설을 만들어 내기도 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주황색 유니폼을 맞춰 입고 수작업을 하는 공장의 풍경, 북한의 무용수들이 철저한 집단적 훈련과 연습 체계를 따른 결과로써 공연을 해내는 모습, 아마존의 물품창고가 은유하는 자본 사회의 규모와 편린 등 한 장의 사진으로 현대 사회의 면모를 가감 없이 조명하되 그 표현의 결은 매우 담백하고 회화적이다. 특정 이념을 적극적으로 설파하지 않고 자극적인 장면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전달에 있어 불필요한 힘은 빼고 오로지 핵심과 본질만을 남기는 도인의 예술인 것이다.




본 사진전이 주는 또 하나의 유희점은 바로 공간을 걷는 과정에 있다. 회색의 색감이 지배적인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의 내부는 오로지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설계된 공간이다. 천장과 벽면 바닥 모두 풍부한 여백을 확보하고 거대한 설치 미술이 들어올 수 있게끔 공간을 마련했다. 그러한 여백 속에 걸린 작품은 순수한 벽면과 선명히 대비되며 감상자의 시선을 단번에 이끌 수 있다.


굵고 높은기둥은 마치 신전의 것을 연상케 한다. 고대와 현대의 미(美)가 공존하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의 건축 심상이 긍정적으로 다가온다. 흔히 겪을 없는 거대한 공간을 누비는 사람들은 작은 실루엣처럼 보이며 작품 앞에 그들의 모습 역시 별개의 작품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요소들 모두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F1 경기를 준비하는 분주한 팀워크, 인간 기술의 진보성과 압도적 물성을 자랑하는 크루즈 등 자연과 문명 모두를 대상으로 삼으며 자신만의 기법을 능숙히 녹여내는 안드레아 거스키 사진작가의 실력은 가히 경이로울 수준이다. 일관된 하나의 표현법을 통해 자신의 모든 철학과 진심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달인이라 함은 이러한 노하우와 경지를 두고 말하는 단어일 것이다.



단순히 "원거리에서 찍은 사진을 합성했다." 정도의 문장으로 본 전시를 이해하기에는 아쉬움이 크다. 사진 한 장 한 장이 갖는 영향력이 크지만, 피사체의 전체적인 모습이나 패턴 등이 단순히 보이는 면모도 있다. 결국 핵심만 남기는 단순함에 이르는 것인데, 작가는 얼마나 복잡하고 치밀한 사유의 과정과 작업 행위들을 겪으며 자신의 지향점에 닿을 수 있었던 것일까?



작품을 감상하는 네 사람의 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같이 표현되었다. 그들의 뒷모습으로부터 긴밀한 대화와 무관심, 국가 정세와 형국에 관한 무언의 상황들을 짐작해 본다. 아래의 사진은 세계에서 가장 고가로 경매되었던 라인 강 2의 연작인 라인 강 3이다. 푸르렀던 생기를 잃고 파괴되는 상황의 강을 담아냈다. 이 작품 역시 사람들을 모두 지우고 본인만의 시점을 녹여내 마치 고속도로와 같은 평평한 강의 심상을 표현했다. 




철학 & 새로움 & 아름다움의 3박자가 절묘히 맞아떨어지는 안드레아의 세계관에 흠뻑 빠져드는 시간이었다. 원초적 자연 속 인간의 존재감, 일상적 삶, 사회와 자본의 구조 등을 한 프레임 안에 조감해내는 작가의 균형 감각과 탁월한 시선을 공부하여 얻어 가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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