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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명 Jun 09. 2022

현대 세계의 유인원에 대하여

마르코 바르티 개인전: 유인원(APES)


홍대입구역 인근에 위치한 대안공간 루프를 찾았다. 연대와 공유를 목표로 여러 예술 및 전시 프로그램을 개진해오는 곳이다. 예술 기관이 소수에게 독점되거나 남용되는 일 없이 가능한 시민들에게 낮은 장벽으로 열려야 한다는 철학으로 운영되는 공간이다. 현재 진행 중인 마르코 바로티 개인전: 유인원을 소개한다.


위치: 대안공간 루프

시간: 10:00 - 19:00

연락처: 02-3141-1377

전시 기간: 2022년 5월 25일(수) ~ 2022년 6월 26일(일)




마르코 바르티는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미디어 아티스트이다. 데이터 기반의 키네틱 사운드 조각을 제작한다. 시에나 재즈 아카데미(Siena Jazz Academy)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사운드와 시각 예술을 병합했다. 음파를 디자인하고 입체화하며 환경적 맥락에서 사운드가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마르코는 작업을 통해 인간과 기계의 공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기술발전이 지구 생태계에 미치는 이점과 딜레마를 사운드와 데이터를 이용해 작품화한다. 로봇 공학과 음파를 사용한 설치 조각으로 제작되며 우리의 시각과 청각을 직접적으로 자극한다. 이것이 마르코 개인전이 우리에게 주는 신선한 경험이다.



작가는 기술 발전이 지구의 환경 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질문한다. 더 빠른 속도, 더 큰 데이터, 데이터의 무분별한 사용과 공유, 이어지는 더 많은 소비와 지출 등의 과정들이 지구의 생태를 악화시키는 것은 아닌가를 말이다.



본 전시는 여러 연구소와 과학자들 간의 공동 연구로 제작되었다. 페이스북의 좋아요, 구글 서치, 틴더 스와이프, 이메일 등 실시간으로 발생하는 디지털 이벤트들을 실시간 데이터로 혼합시키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수집된 데이터는 작품의 모니터에 표시되고 기둥에 매달린 유인원을 형상화한 장치들의 물리적 움직임으로 구현된다. 원숭이의 밀고 당기는 동작을 구현하는 것이 실시간 디지털 데이터인 것이다.



모니터에는 정보들이 숫자로 보이고, 카운터가 특정 숫자에 도달하면 음파가 생성된다. 음파가 유인원의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우리의 귀로 들어오는 사운드로 방출된다. 특히 해당 소리는 AI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해 유인원의 울음소리를 학습한 것이다.


디지털이라는 나무 기둥이 있다. 나무에 의지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원숭이들은 고통의 소리와 몸짓을 낸다. 열매를 떨어뜨리는 것 같은 움직임을 취하는 것은 곧 디지털 환경과 기술을 해체시키려는 고통스러운 탈주의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유인원은 곧 우리이다. 디지털 환경과 멀어질 수 없이 귀속되며 항시 고통에 노출되고 있음을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다.



이외에도 인터뷰 영상을 보면 특정 기술을 도입할 때 장기적 측면에서 기술의 한계점과 단점을 보고 사용해야 한다고 혹자는 주장한다. 가령 비트코인 채굴은 상당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며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의 욕망이 커지는 만큼 전력을 소모하게 되며 결국 환경 피해와 자원 소모를 상당량 부추기게 된다는 것이다.


김상욱 물리학 교수가 말한 바 있듯, 수도권과 먼 근교 지역 간 도로가 개통되어 출퇴근이 가능해졌다고 하자. a 지역에서 서울까지 한 시간 반을 운전하면 출근이 가능한 것이다. 이는 도시 발전과 라이프 스타일의 향상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그만큼 먼 거리를 이동하며 더 많은 에너지와 비용을 소모하는 환경으로 자신의 삶을 허락하는 꼴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발전과 편의, 낭비와 피해 간의 정도와 일종의 균형점을 찾으려는 노력은 우리의 삶과 삶을 지속하게 하는 환경에 대한 긍정적인 고찰이 될 수 있다. 무언가를 사용한다는 것은 무언가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다. 우리의 선택으로 특정 대상이 영향을 받으며 그 영향은 나에게로 돌아올 수 있다.



태초의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의 원형인 재료들만을 먹고 취했던 유인원은 시간이 지나 자연을 가공하고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이용하기에 이르렀다. 현대적 유인원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자연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내어주고 있는가?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변화하는 환경에 어떻게든 몸과 마음이 적응한다는 의미이다. 기후 변화는 인간의 관점에서만 문제가 된다. 자연의 관점에서 과연 문제라는 개념이 적용되기나 하겠는가? 인간의 에너지 사용에 따른 기후 위기는 그저 자연적 흐름과 과정일 뿐이다.



지금껏 겪지 못했던 새로운 양상의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시대이다. 문명의 발전과 지속은 삶의 생존과 도태 간의 양극화를 심화하고 자연의 힘 앞에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시점을 앞당겼다. 이러한 '위기'가 점점 피부로 다가오는 지금, 인간의 오늘은 여전히 더 많은 소모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어떠한 목소리를 듣지 않고, 어떠한 행위를 하지 않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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