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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Nov 06. 2024

<청설>첫사랑 재질, 도파민 시대 손끝으로 전하는 마음


철학과를 졸업하고 꿈도 목표도 없던 용준(홍경)은 남들처럼 취업 준비를 해야 할지, 부모님의 도시락 가게를 도와주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엄마 등쌀에 밀려 억지로 수영장 배달을 가던 날, 햇살 같은 여름(노윤서)을 보고 첫눈에 반하고야 만다.     


그때부터 용준은 흐지부지했던 인생 목표가 새롭게 수정된다. 바로 여름을 향한 사랑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것. 여름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 힘들고 지칠 때 곁에 있어 주는 친구 이상의 수호천사가 되어준다. 고백할 때를 틈틈이 노리지만 쉽지만은 않다. 듣지 못하는 여름과 가을 자매에게 행여나 큰 부담과 결례를 범하지 않을까 노심초사, 전전긍긍하다 때를 놓치고 만다.

한편, 여름은 동생 가을(김민주)의 뒷바라지 말고는 눈에 들어오는 게 없다. 꿈과 목표가 동생과 같다. 가을이 수영선수로 성공하는 것뿐이다. 최근 친해진 용준을 만나 오래된 스쿠터도 고치고, 도시락도 얻어먹고, 난생처음 클럽도 가면서 보살핌을 받지만 마음 한구석이 편하지 않다. 언제나 주는 데만 익숙해진 탓에 괜한 미안함과 부담이 커진다.      


여름은 타인의 친절을 처음으로 맛본다.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 되는 기분이 이런 걸까’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충만한 행복이었다. 다만 ‘지금 누군가를 좋아할 때가 아닌데’라며 자꾸만 앞서가는 마음을 억누르기 바쁘던 날. 중요한 선발전을 앞둔 가을에게 사고가 생겨 버린다. 하필이면 자리를 비웠을 때 생겨 자기 탓인 것만 같아 죄책감이 차오른다. 마침내, 이대로 괜찮은 걸까 고심하던 여름은 용준에게 무거운 마음을 전하기로 결심한다.      


순수하고 풋풋함 살린 첫사랑 로맨스     

영화 <청설>은 20대의 아름다운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을 선사한다. 10대에는 다가올지 모를 첫사랑의 기대감을, 20대에게는 언제 올지 모를 설렘을, 이후 세대에게는 과거를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누구에게나 찬란했던 시절은 있지만 바삐 사느라 잊고 지냈던 때를 잠시나마 떠올려 보는 시간이다.      


원작의 감성을 살리면서 한국만의 현실성을 더해 각색했다. 그 와중에도 ‘순수함’은 흐트러짐 없이 간직했다. 언어와 문화, 배우가 다르기 때문에 한국 자매 관계의 특수성을 새롭게 설정했다. 동생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희생정신 강한 언니 여름을 노윤서의 맑고 성실한 얼굴로 전한다.      


홍경은 만화, 웹툰에만 존재하는 비현실성 보다 주변에 있을법한 현실 남사친의 정석을 담아냈다. 그는 사랑, 성장, 실패로 국한된 청춘 이미지를 넘나든다. ‘결백’, ‘정말 먼 곳’, ‘댓글부대’, ‘약한영웅’ 등 장르성이 큰 작품에서 잊지 못할 존재감으로 한정된 스펙트럼을 벗어나는 배우다. <청설> 속 용준은 자신의 본모습 같은 자연스러움으로 공감과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일조한다.     

‘수어’ 대사가 90% 이상을 차지하는 설정도 잘 살렸다. 비어 있는 음성 언어의 공간은 아기자기한 효과음과 톡톡 튀는 음악으로 채웠다. 수어는 상대방의 눈을 보고 말하는 또 다른 언어다. 잠시라도 딴생각, 딴짓을 할 수 없이 오로지 상대에 집중해야 한다. 육성에 익숙한 세상에서 마음을 전하는 다채로운 방법이 웃음과 감동, 슬픔을 유발한다. 특히 상대를 향한 배려가 지나쳐 서로를 오해하게 되는 부분은 결말에 다다라 소소한 반전으로 돌아온다.      


첫사랑 영화의 본국 대만의 동명 영화를 14년 만에 리메이크했다. 로맨스 판타지, 로맨스 회기물, 로맨스 사극 등 장르의 배합 없는 단일 장르를 지향한다. <유열의 음악앨범>, <동감>, <20세기 소녀> 이후 청춘 로맨스 영화의 계보를 잇게 되었다. <말할 수 없는 비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이 개봉을 앞두고 있는 상황 <청설>은 대만 리메이크 버전의 첫 타자다. 2000년대 초반 극장가를 물들인 <엽기적인 그녀>, <클래식>, <내 머리속의 지우개> 등 청춘 로맨물이 자취를 감춘 상황 속 현시대를 대표하는 20대 라이징 스타가 모여 요즘 세대의 감성을 전한다.      

그래서일까. 도파민이 만연한 시대에 무해한 매력을 정공법으로 택했다. 영화만의 매력, 영화만의 감수성을 전한다. 느림의 미학, 아련한 감정과 성장통을 느끼고 싶다면 추천한다. 첫사랑 로맨스 장르의 강국인 대만과 일본의 감수성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인터뷰] 여름 역의 '노윤서'배우 


[인터뷰] 용준 역의 '홍경'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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