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이성적이던 흉부외과의사 승도(박신양)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 소미(이레)의 심장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쳐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소미는 이상한 말과 행동이 잦아져 걱정스럽기만 하다. 부모의 목을 짓누르는 소미는 예전의 사랑스러운 딸이 아니었다. 이러다가는 가족이 파탄 날 것 같아 엄마 지연(박민정)은 평소 가깝게 지내던 성당을 찾아 한 신부님을 소개받는다.
이내 구마 사제 해신(이민기)이 집에 찾아와 구마 의식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귀를 막고 문밖에 서 있던 승도는 구슬픈 부름에 이끌려 도끼로 문을 부수고 방에 들어간다. 성숙이라 생각했던 구마는 예상치 못한 소미의 죽음으로 급반전을 맞는다.
삼일장 대신 약식으로 진행하면 어떻겠냐는 병원 관계자의 권유에도 장례절차를 강행한다. 장례식장에서 소미의 친구들과 승도의 동료들은 이상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원인 모를 불길한 일과 어두운 기운이 빈소를 에워싼다.
한편, 구마에 실패한 해신은 그날 이후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고, 실패 없던 의사 승도는 원인을 찾아 고군분투한다. 둘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며 그것의 존재를 확신하기에 이른다. 해신은 구마 의식을 할수록 몸과 마음의 상처가 깊어지지만 고통의 경험자이자 사제의 의무감으로 버티며 일을 끝내려고 강행한다.
하지만 죽은 자의 마음속에 기생하여 산자의 마음속을 헤집어 놓는 그것의 속삭임은 날로 더해가기만 한다. 죽은 딸의 목소리가 들리고 눈이 깜박이며, 시체가 저절로 움직이는 등 섬뜩한 일이 벌어져 혼란을 가중한다. 결국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다는 사실을 안 승도는 죽은 딸을 살리기 위해 희생을 자처한다. 항상 북극성 같은 길잡이가 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아빠의 절절한 마음을 담아 해신과 힘을 합친다.
새로운 시도에 도전한 배우들
영화는 화가로 변신해 연기 활동을 중단했던 박신양의 11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이다. 딸과 애틋한 마음을 나눈 자상한 아빠를 연기하며 특별한 부성애를 선보인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감정의 그리움이 절절하게 드러난다. 3일 후면 영영 떠나보내야 하는 고통과 딸을 죽게 했다는 죄책감이 피부로 전해질 정도다. 특히 굳어버린 주먹 쥔 손을 입김을 불며 어루만지며 피는 장면은 압권이다. 며칠 동안 갈지 않아 때가 낀 밴드까지 철저히 계산한 모습이 역력하다. 오랜 공백기에도 녹슬지 않은 캐릭터 해석력이 <사흘>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작용한다.
한국의 여러 사제 캐릭터가 떠오르지 않을 만큼 자신만의 색깔을 찾은 이민기는 사연 있는 사제를 선보였다. 과거의 트라우마가 떠올라 현재의 구마 의식에 영향을 끼친다는 독특한 설정이다. 과거와 현재는 불가분의 존재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철저히 괴롭힌다. 그것에 씌어 구마 의식을 받았던 경험이 불현듯 사제가 된 일상을 뒤흔드는 미혹도 잦아진다. 구마를 거듭할 때마다 고통받지만 사명감과 책임 의식이 강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중심을 잃지 않는다.
아역 시절부터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 온 이레는 그것에 빙의된 연기를 완벽하게 해낸다. 심장이 좋지 못해 아프지만 걱정할 아빠를 위해 오히려 밝은 모습을 보이는 성숙함을 보여준다. 그것에 지배되어 완전히 다른 인물이 되어버린 모습과 고난도 액션을 소화했다. 앞으로가 주목되는 배우다.
오컬트와 휴먼 드라마의 장르 결합
<사흘>은 다수의 국내외 오컬트 영화의 레퍼런스가 떠올라 기시감이 든다. 한국의 장례절차에 걸리는 3일 동안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1일 운명, 2일 입관, 3일 발인으로 나눠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 편집했다. 떠나보내지 못해 붙잡아 두려는 미련과 인물 간의 알력 싸움이 클라이맥스로 향하며 거세진다. 각자의 목적에 따라 이겨내려는 강인함이 사제, 소녀, 아빠의 역할에 맞게 발현된다.
보이지 않는 존재에 맞서는 인간과 현혹되는 인간의 연약함을 나방의 이미지로 극대화했다. 나방은 영화 곳곳에 등장해 불길함을 조장한다. 모두 CG의 힘을 빌려 탄생해 소름 끼치는 장면을 선사한다. 나방이 변태를 거쳐 성충으로 탈피하는 일련의 과정과 몸을 빌려 부활을 꿈꾸는 그것의 목적과 맞물리며 의미를 부여한다. 그밖에 한 건물에서 일어나는 폐쇄성이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린다. 염습실, 영안실, 장례식장, 보일러실을 오가는 인물들은 마치 미로 속에 갇힌 기분이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구성은 위문이다. 가톨릭의 악마, 구마 등 오컬트의 전형적인 장르물과 가족의 사랑을 품은 휴먼 드라마 장르가 결합했다. 복합장르물이 대세를 이루는 때 한국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장르 시도가 반갑다.
다만, 두 장르의 밸런스 조절에 실패한 듯 보인다. 세 배우의 색다른 모습은 충분히 매력적이었으나, 소미가 이식받은 심장의 정체가 밝혀지자 긴장감은 맥없이 풀리고야 만다. 영화 보다 기괴하고 아름다워 빨려 들어갈 것 같은 포스터 이미지만 더욱 강렬하게 다가올 뿐이었다. 매니아성 짙은 장르를 대중적으로 끌어올리며 장르 혼잡 조합에 성공을 거둔 <파묘>의 높은 허들을 넘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