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 가심비 잡은 킬러 콘텐츠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끈 뮤지컬 원작 <위키드>가 영화 버전으로 만들어졌다.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소설 《위키드: 사악한 서쪽 마녀의 삶과 시간들》을 원작으로 하며 2020년 기준 브로드웨이 가장 흥행한 뮤지컬 2위를 기록했다. 한국에서는 2012년 초연되어 꾸준히 사랑받아온 스테디셀러다. 진정한 힘을 발견하지 못한 엘파바(신시아 에리보)와 진정한 본성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글린다(아리아나 그란데)가 각자의 결핍을 채우며 스며들어 가는 이야기다.
지상 최고의 원 소스 멀티 유즈 콘텐츠 중 하나다. 소설 발간 이후 영화, 뮤지컬, 연극 등 다양한 매체로 만들어져 킬러 콘텐츠의 영향력을 갖추게 되었다. <오즈의 마법사>와 연결된 서사로 세계관을 공유하는 프리퀄이자 스핀오프로 생각하면 편하다. <오즈의 마법사>는 토네이도에 실려 오즈로 오게 된 소녀 도로시와 허수아비, 사자, 양철 인간, 강아지 토토가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다.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에서 알고 있던 선악 구도를 뒤집으며 판타지의 이면을 들추어 낸다.
<오즈의 마법사>가 꿈과 환상의 디즈니 같은 동화라 치면 <위키드>는 냉소적인 어른들의 잔혹 동화로 비유된다. 그래서 다소 어둡고 무겁게 흘러간다. 오즈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위대한 마법사의 진실, 선민의식에 빠진 글린다의 착한 아이 콤플렉스, 남들과 다른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엘파바의 궐기 등.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현실 세계의 축소판을 목도할 수 있다.
<스텝 업 2>의 춤, <지. 아이. 조 2>의 무술 액션, <나우 유 씨 미 2>의 마술,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파티, <인 더 하이츠>의 뮤지컬 군무 등 화려한 퍼포먼스와 영상미에 타고난 감각을 발휘한 ‘존 추’ 감독의 모든 것이 집대성되었다. 다가올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맞아 볼거리와 의미를 쌍끌이 할 뮤지컬 블록버스터다. 팬데믹으로 몇 차례나 오른 티켓값이 부담스러워 극장에 발길이 뜸했다면 오랜만에 극장을 찾아보자.
가성비와 가심비를 모두 잡는 영화의 탄생을 목격할 수 있다. 뮤지컬 넘버를 몰라도 줄거리를 몰라도 상관없다. 극장에서 즐기는 뮤지컬 공연 VIP 좌석 효과를 충분히 느낄 수 있어 티켓값이 아깝지 않다. 오히려 관람하지 않는 게 손해일지 모를 전무후무한 경험이 될 것이다.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고 시기하다 룸메이트로서 묘한 우정을 나누는 과정이 파트1에서 펼쳐진다. 올해 파트1을 개봉하고 2025년 파트2가 선보일 예정이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파트 2에서 풍성하게 다루게 된다.
가창으로 실력이 검증된 뮤지컬 스타 ‘신시아 에리보’와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가 각각 엘파바와 글린다를 맡아 최고의 재능을 발휘한다. 넷플릭스 시리즈 [브리저튼]으로 단숨에 스타로 떠오른 ‘조나단 베일리’의 춤과 노래뿐만 아니라, 속내를 알 수 없는 쉬즈 대학교 총장 역에 ‘양자경’, 오즈의 최고 권력자인 마법사 ‘제프 골드브럼’까지 환상의 캐스트를 뽐낸다.
특히 아리아나 그란데는 어릴 적부터 동경해 온 위키드에 헌정하며 꿈을 이루었다. 미카의 ‘파퓰러 송(popular song)’에 피처링했었는데, 훗날 영화 속 글린다가 된 건 운명이지 싶다. 뮤지컬 넘버의 일부를 차용해 만든 노래답게 본인이 원하는 바를 이룬 상황이 가사와 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성악설과 성선설을 비트는 질문들
영화는 ‘선’과 ‘악’에 관한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진다. 선한 영향력은 전염되기 마련이라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는 긍정의 메시지도 전하고 있다. 오프닝에서 서쪽 마녀가 죽었다며 자축하는 사이 한 소녀가 글린다에게 묻는다. ‘사악함은 왜 생기는 건가요?’라는 질문에 곰곰이 생각에 잠기다, 학창 시절 가깝게 지낸 엘파바를 떠올리게 된다.
파트1만 봐서는 글린다는 전체적인 성격과 변화를 눈치채기 힘들지만 그저 남을 돕는 일이 취미라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편협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모두의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공주병도 있었다. 몸이 불편하거나 가난한 사람을 대놓고 동정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도와준다면 자신은 꽤 괜찮은 인간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본명 갈린다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 글린다로 말하던 염소 교수 딜라몬드의 죽음을 기리며 글린다로 개명한 일은 형식적인 선행일 뿐이었다.
하지만 엘파바를 만나 조금씩 변화하게 된다. 이는 엘파바도 마찬가지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이기적으로 행동했던 점을 고쳐가며 동반 성장해 나간다. 엘파바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시를 세웠지만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위해 싸우겠다고 결심한다. 외모 때문에 사악하고 나쁘다고 오해받을 뿐 진국인 인물인 셈이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고 약자를 향한 탄압에 정면으로 저항한다.
남들과 다른 피부색과 특별한 능력 때문에 따돌림과 미움을 동시에 받는 엘파바는 종교, 인종, 이념, 정체성, 계급이 달라 고통받는 소수인과 약자를 상징한다. 엘파바의 동생 네사로즈는 엘파바의 출생의 비밀에 얽혀 장애를 갖고 태어나 책임감과 죄책감을 동시에 안겨준다. 태생부터 시작된 차별과 부채감은 스스로 독립적이고 강인한 인물로 성장하도록 돕는다.
그로 인해 마법 세계 오즈는 혼란이 가중된다. 서쪽 마녀는 악인, 북쪽 마녀는 선인으로 나눠 편 가르려는 시도는 지금 시대와 다르지 않다. 오인되어버린 진실은 세력을 유지하려는 정치적 선동 도구로 쓰여 일파만파 커지게 된다. 말하는 동물의 능력을 제거하고 철창에 가두어 지배하려는 것도 더 나은 세상, 올바른 정보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억압 중 하나다. 각자의 정체성을 빼앗고 발언권을 묵살하며 침묵을 강요하는 일은 비단 마법 세계뿐만 아닌 피부로 와닿는 현실이라 공감된다.
한편, 160분이란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으며 만족스럽다면 N 차 관람으로 이어지리라 예상한다. 영화를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2D 상영관보다 특별관의 관람을 권하고 싶다. 오리지널 버전도 좋지만 국내 더빙 버전도 특수 포맷으로 만들어져 생동감 넘치는 뮤지컬의 장점을 즐길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