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경력 없는 김우진(송강호)은 어느 날 프로 여자배구단 핑크스톰의 감독을 맡는다. 파직, 파면, 파산, 대출, 이혼 경력은 있지만 우승 경험은 없는 게 오히려 마음에 든다는 재벌 2세 구단주 강정원(박정민)은 물건처럼 선수들을 사고팔며 팀의 사기를 떨어트린다.
뭘 어쩌겠나 해체 위기의 팀을 기사회생 시킨 구단주의 입맛대로 움직여야지 않겠나. 새 구단주는 시즌권 완판을 목표로 세웠다. 지킬지는 모르겠지만 시즌을 통틀어 딱 한 번만 이기면 상금 20억을 풀겠다는 공약을 내세운다. 어차피 대충 시간을 때우다 대학팀으로 옮기려고 했던 김우진은 차라리 잘 된 거라며 크게 힘 빼지 않았다.
하지만 연이은 패배로 사기가 떨어 질대로 떨어진 팀을 보니 자신의 과거가 떠올랐다. 믿고 의지했던 감독이 자신을 버렸다는 실망감에 선수 생활을 포기하게 되었다. 이런 일이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된다는 마음은 김우진을 다시 일어서게 한다. 선수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끌어올려 주고, 단점을 고치거나 내치기보다 장면으로 승화할 수 있는 리더십을 발휘하게 된다.
스포츠 영화의 전형을 따르지 않는 재미
영화 <1승>은 국내 최초로 만들어진 배구 영화다. 후반부에 펼쳐지는 랠리 시퀀스가 압권이다. 와이어 캠 7대를 달아 박진감과 현장성을 살렸다. 직접 살을 부대끼지 않고 자기 포지션에서 공을 때리고 받고 넘기는 네트 위의 경쟁심을 긴장감 있게 그려냈다.
2000년대 후반 인기를 끈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국가대표>로 불렸던 고질적인 스포츠 영화의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 드라마틱한 반전 서사 보다 잔잔한 유머와 감동을 선사한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감동으로 마무리 짓는 전형적인 신파 구조를 따르지 않아 개운하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페넌트 레이스 방식도, 스포츠 영화에서 자주 쓰는 토너먼트 방식도 따르지 않는다.
어쩌면 현시대의 관객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한 스포츠 영화의 트렌드가 될지도 모르겠다. 4년 전 촬영한 영화지만 배구공처럼 빠르고 통통 튀는 전개가 숏츠에 익숙해진 관객의 입맛을 저격한다. 신연식 감독에 의하면 첫 공개 전주까지 치열하게 편집했다는 후문이다. 꼴찌였던 선수들이 감독의 진정성 있는 분석과 응원에 힘입어 어제 보다 조금 나은 내일을 만들어가는 현실적인 모습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각본가로도 활동한 신연식 감독의 장기가 발휘된 실화 같은 가짜 이야기도 재미를 더한다. 영화의 큰 축이되는 이야기는 <록키>다. 그는 비록 졌지만 드라마틱한 서사로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깊게 남은 상징적 영화 이야기에 비유된다. 한 번이었던 이벤트 경기의 빛나는 순간을 첨가해 스포테인먼트의 재미와 짜릿함을 더했다.
또한 신연식 감독과 <거미집>, <삼식이 삼촌>, <1승>까지 세 작품을 협업한 송강호의 밝고 경쾌한 캐릭터가 펄떡인다. 그동안 무겁고 짓눌린 캐릭터를 연속으로 보여준 송강호의 인장에서 가벼운 캐릭터를 만나는 즐거움이 크다. 촬영 순서로 보자면 가장 먼저 촬영한 <1승>이 가장 늦게 선보이게 되었는데 <기생충> 이후 작품 선택의 고민을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해 보인다.
그냥 1승이 아닌 내 인생의 1승
오르막과 내리막, 평지와 구덩이, 절벽도 있는 만큼 인생은 길고 평탄치 않다. 다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긍정적 에너지를 잘 모아 둔다면 조금은 수월한 여정이 되겠다. 제목 1승은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1등만 기억하는 성과 우선주의 세상에 소확행을 바란다.
실패와 좌절을 매일 겪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응원을 전한다. 생각대로 풀리지 않아 괴롭고 힘든 게 인생이지만, 일생일대 원하던 일을 후회 없이 해봤다면 그것도 인생인 거다. 삶에서 1승은 그다지 원대한 꿈도 성공도 아니다. 뼈아픈 실패의 과정까지도 값진 경험이라 말한다. 반복되는 일상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겨보는 시작인 셈이다.
종국에는 감독, 선수 모두 한 뼘씩 성장한다. 꼴찌라고 무시당하고 상처받았던 언더독을 일으켜 세운 한마디는 아이러니하게도 ‘한 번만’이었다. 모두가 안 된다고 했던 오합지졸, 루저라는 무시 속에 단 한 번 반짝이는 순간을 목표로 달려가는 사람들을 비춘다.
흔히 각본 없는 드라마라 불리는 스포츠에도 성공을 위해 치열한 분석과 노력, 피 땀 눈물이 바탕이 되어있음을 되새겨 본다. 올해도 한 달 정도 남은 상황에서 연초 목표했던 일들이 얼마나 지켜졌는지 되돌아볼 기회다. 언제 어디서든 오늘을 사는 당신이 진정한 승자다. 작은 것 하나라도 이뤘다면 인생의 승리가 마땅한 것이다. 사소한 성공을 위해 오늘 하루 치열하게 고군분투한 당신에게 담백한 위로를 건네는 영화가 <1승>이다.
한편, 마지막에 혜성처럼 나타난 신인 김연경과 실제 배구선수들, 김세진, 신진식, 이숙자, 한유미 등을 찾는 재미는 덤이다. 조정석은 슈퍼걸즈 감독으로 분해 <관상> 이후 송강호와 재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