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유정>은 사랑하지만 겉으로 표현하지 못했던 자매의 속내를 깊이 들여다보는 이야기다. 자매에 한정되어 있지만 부모와 자식, 배우자 관계 등 친밀한 가족의 본질을 묻는다. 내가 알고 있던 가족의 모습과 전혀 다른 면을 봤을 때 충격과 배신감을 세대와 성별을 초월해 진심을 전달한다.
한 집 살아도 알지 못한 가족의 속내
가족이니까 이해하고 받아 줄 거라 믿는 단순한 사고방식을 뛰어넘는다. 오히려 가까워 말하지 못한 진실을 꺼내 놓고 해체하는 작업 방식을 택했다. ‘희생’이란 키워드에 갇혀버린 가족의 존재를 버리고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원한 적 없는 희생은 대화의 단절을 야기하고 오해를 부르며 의무감, 죄책감으로 퍼져 멀어지게 한다.
어릴 적 부모님을 여의고 세상에 단둘인 자매. 가장 친밀한 사이라고 생각했던 둘은 언젠가부터 소원한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나 때문에’라는 미안함과 죄책감에 사로잡혀 버린 것이다. 그러던 중 교내 ‘영아 유기 사건’이 발생한다. 당사자가 동생 기정(이하은)이란 소식에 언니 유정(박예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허탈하다. 내가 알던 기정이 모습은 이미 과거에 박제되어 버렸을 뿐. 변화무쌍한 사춘기 상황을 생계라는 핑계로 애써 덮어버리려 했던 결과다.
“기정이는 그럴 아이가 아니에요”라는 유정의 말은 핑곗거리가 되지 않았다. 사건을 알아보러 찾아간 학교, 무죄를 증명하러 간 경찰서를 쳇바퀴처럼 돌며 유정은 허탈해한다. “기정이는 단 거 안 좋아해요”라는 친구 희진(김이경)의 입에서 어렴풋한 진실을 듣는다.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투성이다. 왜 임신 사실을 몰랐던 걸까? 그리고 왜 아기를 버린 걸까?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충격받은 유정은 애써 기정을 이해해 보려 한다.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우리 애는 내가 더 잘 안다’는 주장을 펼치는 부모를 종종 접한다. 이는 사실 대화 부족에서 오는 섬뜩한 진실이다. 소통하지 못하는 가족은 SNS의 팔로워보다도 못할 때가 많다. 빈말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가시 돋친 말로 상처를 주고받는 것도 가족이다. ‘가족이니까’, ‘가족한테는 그래도 돼’라는 보이지 않는 칼날은 굳어버린 상처를 파고들어 또 다른 상처를 내버린다.
기정과 유정은 한 집에 살지만 대화를 나누지도, 밥을 함께 먹지도 않는다. 간호사인 유정은 밤에 병원에서 일하고 낮에 집으로 돌아온다. 고3인 기정은 낮에는 학교를 가야 하기 때문에 엇갈린 생활 패턴은 둘 사이를 갈라 놓는 직접적 원인이 된다. 집은 생활감 없이 적막이 흐를 뿐이다. 유정은 동생 끼니를 챙기고 돌봐주지 못하는 미안함 대신 출입문에 용돈을 붙여두고 간다. 기정은 혹여 언니가 불편할까 봐 늦은 시간까지 귀가하지 않고 밖을 서성인다. 서로를 향한 배려는 불편함이 되고 불신을 초래한다.
인물의 표정에서 얻는 감정
영화는 영아 유기라는 무거운 소재를 통해 생명의 잉태와 탄생, 가족의 의미를 심도 있게 질문한다. 의문과 이해, 불편한 감정을 부르는 침묵의 무게감이 상당하다. 침묵이 얼마만큼 사람을 짓누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장치가 영아 유기인 셈이다. 범죄물이 아닌 드라마의 기능을 지키려는 태도를 유지한다. 따라서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기정의 사연을 일일이 캐묻지 않는다. 담담하게 관찰할 뿐 자극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카메라 윤리를 지킨다.
그래서일까. 영화 속 인물들은 대사가 많지 않다. 기정은 범죄를 자백했음에도 이후 어떤 말도 속 시원히 해주지 않는다. 친한 친구였던 희진마저 멀어진 후에도 여전히 기정 옆으로 서성이며 의문을 품게 한다. 의뭉스러운 캐릭터 전사로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더한다. 어떤 이유에서 아이를 가졌는지, 아이 아빠는 누구인지, 아이를 유기하게 된 이유 등. 사건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주지 않는다. 직접 보여주거나 말하지도 않기 때문에 얻어 가는 효과가 상당하다. 남성 감독이 연출했다고는 믿기 힘든 세밀한 여성의 심리가 반영되어 있다.
그밖에 유정이 근무하는 종합병원을 무대로 삼아 임신 순번제의 고충, 간호사 태움 문화, 강한 모성애를 가진 산모 등 면밀히 사회 문제를 들여다본다. 그 과정을 함께하며 가족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낯간지럽다는 이유로 가장 존중해야 할 가족과 애써 등 돌리며 살지 않았는지 말이다. 그동안 가족과 소원했다면 이번 기회에 짧은 안부를 건네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 말하지 않았을 뿐, 어떠한 일에도 당신을 품어 줄 가장 가까운 곳은 가족이란 안식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