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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장cine 수다

<얼굴> 미(美)의 편견에 갇힌 어두운 얼굴

by 장혜령

연상호 감독은 단편 애니메이션에서 장편 독립 애니메이션을 하다가 실사 장편 상업 영화로 건너뛰며 기념비적 성공을 이루었다. 한국 좀비물의 대표작이라 할만한 <부산행>으로 흥행과 명성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이후 한동안 OTT 시리즈와 영화의 시나리오, 연출, 제작에 몰두해 왔다. 대중은 거침없는 행보에 놀라면서도 초심을 잃어버렸다는 말로 실망감을 표출했으나 여전히 신작이 발표되면 화제의 중심에 연상호가 있었다.


한편, 필자는 오랜 팬으로서 다양한 작품에서 환희와 실망을 동시에 경험했다. 언젠가 다시 만화나 애니메이션, 독립 영화로 돌아와 특유의 사회 고발적인 메시지를 보여주길 희망해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던 중 드디어. 연상호 감독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2018년 구상한 작품으로 본인이 쓰고 그린 그래픽 노블을 바탕으로 한 영화 <얼굴>을 선보였다. 날카로운 사회 비판 메시지를 더해 밀도와 디테일을 살려 완성했다. 그의 뿌리이자 동경하던 창작 형태인 ‘만화’로 만든 자유로운 창작욕을 영상으로 옮겼다. 날 선 단어로 채워진 풍자와 직관적이며 불편하다 못해 불쾌하기까지 한 묘사는 초기작의 향기가 느껴졌다.


열지 말아야 할 판도라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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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40년 만에 백골 사체로 돌아온 어머니 정영희(신현빈)의 왜곡된 과거와 지워진 얼굴을 찾아가는 아들 임동환(박정민)을 시선을 통해 아버지 임영규(권해효)의 민낯을 확인하는 영화다. 사회가 애써 지우려던 개인의 얼굴을 하나씩 그려나가는 추적 미스터리 형식을 빌렸다.


1인 2역을 맡은 박정민의 청년과 노년의 권해효의 얼굴이 겹치며 묘한 시너지를 낳는다. 좁게는 부모와 자식의 세대 차이, 그리고 가족의 갈등, 나아가서는 사회라는 거대한 집단 속 개인의 고군분투와 양면성을 조명한다. 국가 성장이란 거시적 목표 아래 짓밟힌 개인의 미시적 삶을 훑는다. 결국 국가 폭력의 한 형태이자, 시대를 초월해 대물림되는 미의 가치와 변함없는 고질적인 문제를 거론한다.


선천적 시각 장애로 세상을 보지 못했던 임영규(권해효)는 세상의 멸시를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있는 신화로 거듭났다. 앞을 보지 못하지만 전각 분야 장인으로 예술적 성취를 드러냈고, 홀로 아들을 키우며 고군분투했던 세월까지 모두 인정받는 인물로 성공했다.


한편, 전각 장인 임영규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겠다는 PD 김수진(한지현)은 취재 도중 이 가족의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임영규의 드라마틱한 삶보다 40년 만에 듣는 아내이자 어머니였던 여성의 소식이 확실히 자극적일 거란 직감이 든다. 카메라를 가방에 숨기고 정영희와 관련된 인물의 인터뷰를 진행하며 의도적인 질문을 유도해 분량을 채워간다.


동환(박정민)은 아버지를 통해 자신이 어릴 적 집을 나가 소식조차 알지 못했다고 들었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수진은 아들 동환과 어머니의 친척, 어머니의 옛 동료들, 사수, 사장을 만나며 어머니의 과거와 진실에 다가간다. 파면 팔수록 드러나는 사건의 실체와 사람들의 진심은 기억조차 없던 어머니를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하지만 어머니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못생겼다’는 말을 내뱉는다. 노골적이고 원색적인 단어를 써가며 ‘그래도 심성은 착하다’는 아이러니한 말을 전하며 조롱한다. 어머니의 사진 한 장조차 없어 얼굴을 알지 못하는 동환은 하나같이 ‘괴물’이라 부르는 어머니의 얼굴을 스스로 직조해 나가며 진실에 다가간다.


과연 누가 악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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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임영규라는 시대의 산증인이자 에너지 강한 사나이의 뒤틀린 내면으로 안내한다. 장애가 만든 자격지심, 수없이 반복된 모멸감과 수치심 속에 살았던 임영규가 아름다운 글씨를 깎아내며 사람들을 현혹했지만. 정작 본인의 어두운 내면은 다듬지 못했던 모순적 이야기다.


분에 못이여 살인을 저지른 임영규, 권력으로 진실을 누르려는 백주상, 쓰디쓴 진실을 알고도 삼켜버린 임동환. 이 세 남성의 모순적 행동이 소수자이자 여성인 정영희를 외면과 내면을 짓밟는 데 일조했다.


임영규는 과거의 행동을 아들에 의해 추궁당할 때, 변명하지 않고 오히려 설명하는 태도로 맞선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역사와 시대의 흐름 속 어쩔 수 없는 생존 방식이라 말한다. 나아가 아들만큼은 같은 일을 겪지 않게 하려는 보호 장치였을 뿐이라고 답한다. 그 또한 급변하는 한국 사회의 피해자이자 소시민이란 영역에 가두어 버린다.


진짜 범인이 밝혀지면서 악인이라 믿었던 사장 백주상(임성재)의 이미지도 다소 희석된다. 월급 한번 밀린 적 없는 호인으로 불리지만 사실은 어두운 진실을 품은 그는 여성들의 사진을 찍어 줄 때면 ‘예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는다. 외모 칭찬은 ‘착한 사람’으로 평가되며 무소불위 권력을 만들어 낸다. 자기 말을 잘 들으면 예쁘고 착한 사람이고, 정영희처럼 반기를 든다면 못생기고 나쁜 사람이 된다는 흑백 논리를 펼친다.


임동환 또한 아버지의 진실이 밝혀지면 본인까지 무너질 위기가 불 보듯 뻔하다는 계산이 앞서 진실이 담긴 영상 일부를 편집한다. 동환 또한 아버지가 평생 느껴온 멸시와 모멸감을 느끼며 부조리를 눈 감아 버린다. 세 인물의 시너지는 한 인물의 인생을 완전히 붕괴시켜 버린 것이다.


상대적인 미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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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얼굴>은 외모에 가려져 천대받았던 정영희의 속마음을 비추며 인간의 편견까지 지적한다. 개인적으로 원작에서 본 마지막 페이지의 충격이 잊히지 않는다. 정영희의 얼굴은 평범한 그 자체였다. 군중 속에 섞여 있다면 큰 인상을 얻지 못할 모습이었다. 인간이 얼마나 타인의 말과 행동에 영향을 받는지 뚜렷이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로써 괴물은 태어나는 게 아닌 만들어지는 것이며, 누구도 피해자와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전한다. 위선은 생각보다 힘이 세고 인간은 아름다움에 언제나 매료된다. 편견에 사로잡혀 파멸할 것이 불 보듯 뻔하지만 우매한 인간은 같은 일을 반복했다. 먹지 말아야 할 선악과를 먹은 이브, 남편의 얼굴을 확인한 프시케, 열지 말아야 할 상자를 연 판도라, 금기의 방을 연 푸른 수염의 아내 등. 신화, 성경, 전설 속 레퍼런스가 <얼굴>에서도 동일하게 쓰였다.


아무튼 <얼굴>은 ‘연니버스(연상호 유니버스)’의 시초로 불리며 영화 제작 시스템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게 만든다. 2억으로 3주 동안 20여 명의 스태프가 만든 초저예산 작품은 어릴 적 B급 저예산 장르 영화를 보고 자란 연상호 감독의 또 다른 실험장과 돌파구가 되어주었다. 주인공이자 1인 2역을 한 박정민은 노 개런티로 참여했고. 이 또한 제작비 상승의 원이 중 하나로 지적되는 배우 개런티 논쟁에 또 다른 불씨를 지필 것으로 예상한다. 여러 의미로 <얼굴>의 기획부터 제작, 개봉과 성적, 앞으로의 행보까지 기대하는 바가 큰 영화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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