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프랑켄슈타인>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평생에 걸쳐 만들고 싶었던 숙원 사업이다. 메리 셸리가 18세의 나이에 쓴 원작을 바탕으로 했다. 이미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된 19세기 이야기는 200년이 지나 재창조되었다.
크리처 장르의 거장 기예르모 델 토로의 손에서 빚어진 영화는 운명 같다. 7살 때 제임스 웨일의 고전 <프랑켄슈타인>(1931)을 접하고 11살에 메리 셸리의 소설을 읽고 매료된 순간부터 시작된 여정의 피날레다. <피노키오>와 <프랑켄슈타인> 두 편을 죽기 전에 만들고자 했던 염원은 드디어 성사되었고 기예르모 델 토로 만의 <프랑켄슈타인>이 세상에 나왔다.
200년 후 새롭게 탄생한 고전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프랑켄슈타인>은 빅터와 괴물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다. 빅터가 괴물을 만들어 낸 것처럼 정교한 오페라를 보는 듯 장엄하다. 과학자이지만 예술가이기도 한 ‘빅터(오스카 아이작)’는 크림 전쟁의 시체더미에서 괴물(제이컵 엘로디)을 창조해 냈다. 하지만 광기에 사로잡혀 자신과 닮은 존재를 만들기만 했을 뿐이다. 부모 될 준비가 되지 않았던 빅터는 괴물이 탄생하자 뜨거웠던 열정이 차갑게 식어버린다.
백지상태인 괴물은 신생아와 같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돌봐줘야 할 버거운 존재가 되어버린다. 언어를 가르쳐 주었지만 빅터라는 단어만 되풀이할 뿐 지적 능력의 한계와 폭력성이 커지자 이내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어머니(미아 고스) 죽음을 통해 이를 정복하겠다는 일생의 목표를 이룬 뒤틀린 패기는 사라졌다.
한편, 괴물은 엘리자베스(미아 고스)를 통해 잠시나마 따스함을 느끼지만. 불행히도 사랑의 가치를 깨우치기도 전에 불의의 사고로 은신처가 파괴되어 예고된 비극은 시작되어 버린다. 드디어 자신의 태생과 존재의 이유를 자각한 빅터는 창조주 빅터를 집요하게 쫓는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자전적 재해석
영화는 원작과 다른 재해석으로 창조주와 피조물, 신과 인간, 부모와 자식 등 관계성을 중심에 두고 있다. 이는 본인 이야기와도 맞닿아 있다. 1998년 아버지가 납치되는 사고가 발생한다. 괴롭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해가 뜨고 지는 하루가 반복되자 <프랑켄슈타인>을 만들고자 결심했다고 전해진다.
참 오랜 시간이 걸렸렸다. 마흔이 넘어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자 비로소 깨닫게 된다. 아버지와 다르게 살고 싶었으나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꼈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변화를 시도했다. 따라서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정체성이자 뿌리에 관한 고민, 그리고 인류애가 녹아들어 간 일종의 자기 고백이기도 한 셈이다.
그래서일까. 그동안 프랑켄슈타인을 소재 삼은 창작물 중 가장 인간적이다.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정형성을 선사한 과학자, 나사못과 꿰맨 자국의 흉측한 괴물은 없다. 괴물을 공포의 대상이 아닌 아웃사이더의 운명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데 주력했다. 인간의 오랜 꿈인 영생을 얻었지만 저주가 되어 돌아온 부메랑은 괴물을 괴롭게 만든다. 자신과 똑같은 존재를 만들어 달라며 창조자를 찾아 애원하는 서글픈 통곡이 애처롭기만 하다.
빅터로부터 시작된 이 이야기는 결국은 괴물의 이해와 사랑의 구원 서사로 마무리된다. 빅터는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한 후 죽음을 정복하고자 고군분투했다.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상처를 그대로 괴물에게 투영하며 대물림한다. 각고의 노력 끝에 시체를 이어 붙여 부활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가르치는 데는 실패했다.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는 이유도 외면한 창조자를 끝까지 붙잡는 건 순수한 괴물이다. 낳은 정은 차가웠지만 기른 정은 달랐다. 괴물은 눈먼 노인을 통해 편견 없는 사랑과 언어를 배우며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간다.
슬픈지만 희망찬 우화
기예르모 델 토로는 어떤 이유로든 태어났다면 자기 몫을 살아가야 한다는 질문과 답을 동시에 전 한다. 부모와 자식의 끊을 수 없는 관계를 잔혹하리만큼 아름다운 미장센에 덧입혀 확장했다. 삶은 누구나 완벽하지 않고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괴물은 인간의 어두움과 비범함을 동시에 드러내는 존재다. 죽지 않은 삶은 고통이며 끝이 있어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갈 기회를 얻는다.
사랑과 이해, 용서를 통해 세상의 모든 이치가 통하는 대전제는 150여 분 동안 슬프고 기이하지만 아름답게 펼쳐진다. 인간의 오만과 어리석음을 꼬집는 우화로도 해석되는 영화는 원작처럼 슬프고 잔인한 결말이 아닌 희망으로 나아가는 미래가 확연히 다르다. 결말에 이르러서는 진짜 괴물 누구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를 완벽하게 해석한 배우들의 진가를 확인하기에 충분하다. 어머니와 동생의 약혼자 엘리자베스를 완벽하게 소화한 미아 고스는 빅터와 괴물의 마음을 흔든다. 오스카 아이작은 어머니를 상징하는 빨간 장갑을 벗지 않고 늘 우유만 마시는 미성숙한 천재성을 표현했다. 아티스트의 면모까지 끌어안은 연약함 불완전한 인간 자체를 상징한다. 괴물로 변신한 제이컵 엘로디는 창백한 회색 외피로 시선을 압도한다. <키싱 부스>로 인해 하이틴 로맨스 스타로 인기를 얻었던 만큼 연기파 배우로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넷플릭스라는 OTT 플랫폼에 갇혀 있기 아쉬운 작품이다. 일부 극장에서 상영 중에 있으니 기회가 된다면 스크린에서 감상하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