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 년은 아니고 2022년이요
종종 생각했다. 내 삶은 목적도 없이 모래로 대충 지어놓은 집 같다고. 옅은 바람에도 대책 없이 휘청거리고 언제 무너질지 몰라서 아슬아슬한 그런 집.
어릴 때부터 "n 년 뒤의 너는 어떤 사람일 것 같아? 어떤 삶을 살고 있을 것 같아?"라는 질문에 답하는 게 무척 어려웠다. 답을 떠올리면 미래의 내 모습은 안 보이고 깜깜한 어둠만 보였다. 꽤 상상력이 풍부한 편인데도 내 앞날만큼은 상상할 수 없었다. 당장 1년 뒤의 삶을 그리는 일조차 버거울 만큼.
한 치 앞을 생각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퍽퍽하고 드라마틱한 상황 속에서 자란 것은 아니다. 온갖 풍파와 역경을 헤치며 살았다는 대단한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다. 멀리서 보면 큰 문제없어 보이는 형편과 서사를 지녔음에도 거세게 방황했다.
누군가는 배부른 정신병에 걸렸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억하자. 세상은 넓고 참 다양한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극한의 상황에서도 강인한 정신력을 발휘하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범한 삶 속에서도 발견한 자그마한 골칫거리에도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도 있는 거다.
나라고 좋아서 예민하고 소심한 성격을 골라서 태어났겠는가. 엄청난 경우의 수를 뚫고 4.0Kg의 우량아로 태어나는 일에 온갖 운을 다 쏟아부은 탓에 마음은 나약한 걸로 받았는지도 모른다. (랜덤으로 걸려 받은 게 이 모양인 것을 어쩌겠는가. 아, 물론 엄마를 원망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그 덕분이다. 비교적 순탄하게 살아오면서도 종종 혼란 속을 헤매고, 별 것 아닌 문제도 크게 만들며 호들갑을 떨면서 오지게 마음 고생하며 자란 이유가. 중고등학교 때까지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대학교를 가서도, 아니 회사를 들어가서도 해마다 4+n 춘기를 앓았다.
그리고 올해는 역대급으로 센 정신적 위기가 왔다. 결혼을 생각할 만큼 더없이 사랑했던 남자친구에게는 만우절에 차이고, 드디어 꿈의 회사를 찾은 것 같다고 동네방네 소문내며 입사한 스타트업에서는 1년도 채우지 못한 채 낙엽처럼 쫓겨났다. 새해를 맞이하며 '올해는 일과 사랑 모두를 얻는 해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웬걸 둘 중 하나도 붙잡지 못하고 놓쳤다.
매일매일 조금씩 헐어지는 마음 한 켠을 간신히 틀어막는 기분으로 가을을 보냈다. 당분간은 갈 일 없을 것으로 생각한 정신과도 다시 다니게 되었다. 나에게 2022년은 오랫동안 흔들거리던 모래집이 기어코 폭삭 붕괴되어 버린, 그런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