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영화 <성적표의 김민영>
너희의 이야기를 보고 생각했어. 아무래도 우리는 방황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게 아닐까?
사실 나부터도 그렇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살아오면서 겪어온 시행착오 자락을 붙들고 스스로를 방황하는 사람이라고 여기곤 했으니까. 생각해 보면 딱히 방황을 한 것도 아닌데.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할 수 있는지, 살면서 뭘 중요하게 여기고 싶은지 모른 채 살아온 시간이 오래되어서 그저 탐험을 했을 뿐인데.
삶은 길고 멀잖아.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에 비하면 지금도 어리고 젊잖아. 우린 왜 그리 조급증을 내고 지레 늙은 척을 했을까, 뭔가를 새롭게 알아가고 시작하기에 늦은 듯이 굴었을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묻기도 전에, 내가 사는 세계를 제대로 바라보려고 하기도 전에, 삶을 견뎌낼 용기를 내보기도 전에.
일 년 정도 늦은 시작, 차분하게 이런저런 시도들을 하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인 정희에게 방황이라는 말을 붙이는 건 너무 가혹한 오해와 실례가 아닐까 생각했어. 정희는 방황이 아니라 유영을 하고 있는 거니까. 물고기가 하는 유영 말고 우주 비행사가 하는 유영. 실험이나 탐사를 위해 우주 공간을 헤엄치는 일.
그리고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일 거야. 우리는 목적 없이 정처 없이 헤매는 게 아니야. 가까이서 봤을 땐 알기 어려운, 그러나 분명 목적이 있는 이동을 하고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