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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리 Dec 24. 2023

내가 미생을 좋아한 이유

소년시대를 보고 미생 장그래가 떠올라 쓰는 리뷰

안녕하세요. 김경리입니다.

갑자기 웬 드라마 리뷰인가 싶겠지만... 저는 평소 책, 영화, 드라마, 음악에서 삶에 영감과 도움을 주는 메시지를 찾는 취미가 있답니다. 이 모든 작품들은 결국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므로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거든요. 그 안에서 정말로 마음을 울리는 부분을 발견하게 될 때는 마치 산삼을 캔 심마니처럼 기쁘기도 합니다.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소년시대'에서 주연을 맡은 임시완 배우를 보니 오랜만에 예전에 본 드라마 미생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겸사겸사 내 맘대로 미생 리뷰를 시작합니다. (소년시대 리뷰 아님) 아, 이미 몇 년 된 인기 드라마이긴 하지만 혹시 아직 못 보신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스포 있습니다.


소년시대 장병태역의 임시완

사진 출처


물론 이 역할도 꽤 잘 어울리지만 저에게 언제나 임시완은 미생의 '장그래'입니다. 드라마가 한참 방영할 때는 못 보고 몇 년 뒤에 뒤늦게 우연히 봤다가 빠져서 원작 웹툰까지 정주행 했던 기억이 나네요. 참고로 웹툰 미생(윤태호 작)은 시즌 2가 아직 연재 중입니다.


제가 미생을 좋아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짐작이 가시나요? 혹시 미생을 보셨다면 여러분이 좋아했던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한 번쯤 복합기와 고독한 싸움을 벌여 본 사회 초년생이었던(또는 현재 그러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장그래의 심정을 알 수 있습니다. 무언가 잘 해내고 싶지만 딱히 할 수 있는 게 아직은 없을 때의 그 초조하고 또 초라해지는 마음을요.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직은'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미생 장그래역의 임시완

사진 출처


미생에는 수많은 명대사와 인상 깊은 장면들이 있습니다.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이 정도네요. (떠오르는 대로 적은 거라 디테일한 부분은 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잊지 말자. 나는 어머니의 자부심이다.' by 장그래

'우리...라고 했다.' by 장그래

'일하러 왔으면 일을 해. (정치하지 말고)' by 오 과장(오 부장)

'이 실내화는 사무실의 전투화입니다.' by 장그래

'장그래, 더할 나위 없었다. YES!' by 오 과장(오 부장)


그중에서도 제가 미생을 좋아한 이유 첫 번째는 바로 다음의 대사가 나오는 장면입니다.


"나는 그냥 열심히 하지 않은 편이어야 한다. 열심히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하지 않은 것으로 하겠다." by 장그래


바둑을 그만두는 장그래

사진 출처


어릴 적부터 한국기원 연구생이었던 장그래는 어려운 형편에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바둑을 두지만 계속 프로 입단에 실패합니다. 그렇게 연구생으로서 마지막 해를 맞이하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아프셔서 바둑을 그만두게 됩니다. 후드 모자를 뒤집어쓴 채 그동안 공부했던 책들을 내다 버리면서 그가 속으로 읊조린 내레이션 중에 위의 대사가 나옵니다. 정말로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다른 이유들을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아프니까'라고 하며 그냥 본인이 열심히 하지 않은 걸로 하겠다는 저 담담한 대사는 왠지 눈물을 참을 때 코가 찡할 때의 느낌을 줍니다. 


또한 상황을 탓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집중하려고 하는 그의 태도는 단순한 안타까움 이상의 울림을 주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절망 속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렇게 첫 화에서부터 장그래의 굳은 심지가 느껴졌습니다.


제가 미생을 좋아하는 이유, 그 두 번째는 바로 아래의 장면입니다.


한국기원 연구생 출신 앞에서 바둑을 논하는 오 과장

사진 출처


 과장이 장그래에게 '너는 잘 모르겠지만'이라고 운을 떼며 바둑에 대해 논하는 장면입니다. 그 유명한 미생, 완생에 대한 명대사가 나오는데요, 저는 대사보다도 그 이후가 더 인상 깊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결정적으로 이 드라마를 인생 드라마 중 하나로 꼽게 된 연유가 되었습니다.


그건 바로 장그래의 반응입니다. 바둑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부분이요. 어릴 때부터 그야말로 평생 바둑을 두며 살아온 자신에 비해 말하자면 그저 '일반인'인 오 과장이 한 수 알려주듯이 바둑 용어를 이야기할 때, 장그래는 그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좋아합니다. 여기서 장그래의 범상치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프로 입단에는 실패했어도 바둑에 대해서는 원인터(장그래가 인턴으로 들어간 회사) 사람들보다 적어도 수십 배 아니 수백 배는 더 빠삭할 그는 바둑에 대해서는 모든 회차를 통틀어 (원작 웹툰과 마찬가지로) 일언반구도 하지 않습니다. 내레이션을 빼고는 말이죠.


저는 이점에 가장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장그래가 자신의 실패한 과거를 언급하고 싶지 않아서였을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제 생각에 이것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의 '현재', '본인'에게 집중하려는 경향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경향이라고 표현했으나 좋은 능력이네요. 그 밖의 추정되는 이유는 아무래도 장그래의 내재된 듯한 겸손함과 적은 말수 때문일 겁니다.


뽐내고 자기 어필을 열심히 해야 살아가기 수월한 경쟁 사회에서 장그래의 이런 어딘가 선비 같고 수행자 같은 면모는 묘한 감동을 줍니다. 남들에게 굳이 자신의 바둑 이력을 어필하기보다, 그냥 지금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바둑에서 배운 것들을 적절히 활용해 어려움을 극복해 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작중 장그래는 비록 인턴이지만 인생의 방향을 제시하는 좋은 선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볼수록 아무도 깨트릴 수 없는 내면의 단단함과 고귀함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그건 우리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나마스떼- 당신과 내 안에 신성한 빛에 경배합니다'라는 요가식 인사의 뜻처럼, 우리는 모두 내면에 함부로 꺼트릴 수 없는 고귀한 빛을 품고 있습니다. 다만 현실의 아픔과 어려움 등에 몰두되어 잊고 있을 뿐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말을 지금의 저에게도 해주고 싶네요. 사업자를 내고 맨땅에 헤딩 같은 새 요가 명상 센터를 만들어서 어머니와 함께 운영하는 일, 이 모든 것이 처음이니까요. 포기하지 않고 바둑돌을 하나하나 신중히 얹듯이 나의 바둑을, 이 센터를, 삶을 풀어나가겠습니다. 장그래처럼 지금 여기에 집중하며 담담히 가는 힘을 줄 매일 명상을 계속하면서요.


와- 간단히 적으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새벽이 되었네요. 이만 리뷰 마칩니다! 나를 비롯한 이 땅의 모든 장그래들, 응원합니다.


나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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