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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태진 Mar 17. 2024

해냈어요, 멸망

언행불일치 지구인들의 인류멸망 보고서


늦은 새벽 혼자 피식거리며 두드린 분노의 타이핑이 책이 되었다.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는 사실을 외치던 그 누군가와 비슷한 마음으로 써왔던 글이었다. 그런데 나라도 재미있으면 그만이라는 속 편한 마음의 글들이 ‘발가벗겨’ 대중에게 드러나게 되었으니, 이거야말로 벌거벗은 임금님을 바라보는 심정이다.


처음 글을 살펴봐 주신 편집자님은 이 원고를 ‘달달한 독설’이라고 했다. 나의 울분 가득한 독설들이 달달하게 느껴졌다니 아직 내공이 한참이나 부족하다. 독약처럼 잔인한, 가슴에 비수를 꽂는 독설이 되어 눈물을 찔끔 흘리게 만들기를 바랐는데 말이다. 


많은 후회가 남는 글이지만, 그럼에도 관심이 생겼다면 찾아봐 주시길 부탁드린다. 일말의 달달함에 취해 쉽게 드러나지 않는 칼날같은 매력을 느끼는 이들도 있을지 모르니까. 제목부터 독설 가득하지 않냔 말이다. 

<해냈어요, 멸망.>



지구를 망가트리는 인간의 무자비한 속도에는 여유가 없다. 심지어 누구도 그 질주를 멈출 수 없다. 인간이 섬기는 신들은 하나같이 자비로워 신실한 기도와 풍족한 성금, 뉘우치는 '것처럼 보이는' 마음 정도면 다 용서해준다. 덕분에 인간은 자유롭고 거침없이 자연을 파괴하는 중이고, 빠르게 멸망하고 있다. 

- 〈프롤로그〉 중에서


모든 생물을 파괴하고 심지어는 자신의 삶의 터전까지 망가트리고 있는 지금의 인간들을 신이 그냥 내버려두는 것은 어쩌면 벌을 줄 필요조차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자멸할 것을 잘 알기에 귀찮게 직접 나설 필요가 없는 거다. 그런 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굴뚝에선 하얀 연기가 폴폴 나오고 있다. 

- 〈물건의 최후〉 중에서


늘 그렇듯 인간은 쉬운 문제 해결을 고집스럽게도 외면해왔다.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면 안 된다는 상식을, 마시다 남은 커피를 모르는 척 쓰레기통에 넣어서는 안 된다는 양심을 편의에 따라 잊어버려 왔다는 게 문제다. 결국 인간은 책임을 지게 되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지금껏 벌인 모든 악행의 책임을 몇 배로 키워 돌려받으려는 중이다. 그동안 저지른 자잘한 일들을 '인류 멸망' 이라는 죗값으로 받아내겠다는 걸 보면 인간이 무책임하다는 생각은 나의 편견이었던 것 같다. 

- 〈쓰레기통〉 중에서


나 역시 자동차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차를 좋아한다. 돈을 잘 벌지 못해 좋은 차를 타고 다니지는 못하지만, 돈만 있다면 물론 좋은 차를, 연비고 뭐고 무조건 좋은 차를 타고 다닐 것이다. 환경이야 더 빠르게 파괴되거나 말거나, 나 혼자 '그저 그런' 차를 타고 다닐 수는 없다. 더구나 우리를 유혹하는 고급 차는 끊임없이 쏟아지고 수많은 매체가 그것을 사라고 독려하니 버텨낼 재간도 이유도 없다. 다행이라면 참을성이 없는 만큼 돈도 없어서 그저 바라만 볼 뿐이라는 거다. 

-〈자동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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