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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고 힘들지 말라는 법 없는 건데'

이런 생각이 오히려 고통을 견딜 수 있는 단단함을 준다

나는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이 맞벌이 셔서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인 편이었고 가부장적인 분위기는 전혀 없었다. 민주적인 분위기에서 내 생각을 존중받으며 자랐다. 우리 가정의 언어에는 격려와 축복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내가 자라왔던 환경을 생각하며, 나의 결혼 생활 역시 행복하고 순탄할 줄만 알았다. 전혀 다른 사람들과 가족이 되는 것인데, 똑같을 거라고 기대했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근거 없는 기대였다.


당시 나는 결혼하기 전에 하나님께 확실한 응답을 받았고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결혼을 했었다. 그래서였을까. 이건 하나님 뜻에 합한 결혼이니까 잘 살게 해 주실 거라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물론 오랜 시간을 인내한 끝에 지금은 화목하게 살게 되었지만) 내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결혼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내가 자라온 환경과 상반된 분위기, 날 선 언어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우울감이 나를 덮쳤다. 그때의 나는, 예수님도 하나님께 순종하셨지만 그 길에 십자가가 있었다는 것을, 사도 바울도 선교의 사명에 순종했지만 갖은 고난의 시간을 겪었던 점을 망각했던 것이다. 순종 후에 바로 축복이 오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십자가의 길을 지나야, 각자의 광야를 지나야 한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나의 광야는 20대가 가장 험했다. 사회 초년생의 어리숙함, 결혼 적응의 어려움, 처음 경험해보는 출산과 육아, 사업, 어설픈 리더십 등으로 비롯된 총체적 난국이랄까. 


잠시 25~26살이었을 때를 회상해본다. 전략기획실에서 일할 당시, 계속되는 야근으로 자정 전에 집에 들어가는 일이 드물었다. 거기다 주말에는 풀타임으로 한국대학생인재협회(이하 '한대협') 운영, 대학생 교육, 부서별 회의 및 피드백, 성가대 지휘, 성경공부 인도 등 너무나도 많은 사역을 감당했다. 체력이 좋은 편이었음에도 몸에 무리가 갔다. 덩달아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 그 시절을 생각만 해도 숨이 가빠지는 것 같다. 회사, 가정, 한대협 어디서도 편안하게 있을 수 없었다. 나는 그 때 첫 아이를 임신 15주 차에 잃었다. 그리고 그때 생겨버린 갑상선 혹이 결국엔 문제가 되어 제거하는 수술을 해야만 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내가 나 자신을 더 힘들게 했던 것은 '내가 세운 잘못된 가설'이었다. 특히 결혼에 대한 잘못된 가설. 어렸을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대요.'로 끝나는 동화들을 자주 읽어서 그랬을까? 주인공들의 행복한 웨딩마치로 끝나는 드라마를 자주 봐서 그랬을까? 왜 나는 '결혼하면 행복해질 거야'라는 근거 없는 가설을 세웠을까? 그 가설 때문에, 그 기대 때문에 남편이 나를 실망시킬 때, 낯선 시댁 문화를 맞닥뜨릴 때, 날 선 언어를 들었을 때 더 낙담했던 것 같다.


'나라고 힘들지 말라는 법 없는 건데...' 


결국 나는 이 생각을 못해서 더 힘들었던 것. 그때의 나는 그런 인사이트를 갖기엔 너무 어렸다. 주변에 이런 조언을 들을 수 있는 인생 선배도 없었다. '나라고 힘들지 말라는 법 없다.' 이 생각이 참 건강한 생각이다. 살다 보면, 가정 때문에, 건강 때문에, 인간관계 때문에, 일 때문에, 돈 때문에 등등 갖가지 힘든 순간들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이 문장을 떠올리면 그 고통을 수용할 용기가 더 생기더라. 고통의 감정에 허덕이지 않고, 내 마음이 덤덤해지면서 단단해지는 것이다. 


또 하나 버팀목이 됐던 생각은, '예수님도 고통을 당하셨는데 나라고 없겠는가'라는 생각이다. 예수님은 선한 일만 하셨고 완전한 인격체이셨는데도, 제자들에게 배신당하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당하고, 욕먹고, 침 뱉음 당하고, 채찍질당하시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나는 예수님보다 훨씬 불완전하며 때로는 악한 모습도 있는 사람인데, 당연히 비난받을 수도 있고 배신당할 수도 있고, 억울한 일 당할 수 있겠구나 싶은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나라고 힘들지 말라는 법 없는 거다. 이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이 내게 정말 큰 힘이 되었듯이,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도 이 메시지가 힘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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