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앙트필 Entphil Aug 04. 2024

기술 ‘창작’ 시대의 예술작품

AI가 예술품을 '창작'하는 시대. 예술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Part 1 : 기술 ‘창작’ 시대의 도래     



<우주 오페라 극장> - Jason M Allen (사진 출처: Midjourney)

    

 이 그림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유명 화가의 작품이라고 해도 될 만큼 굉장히 잘 그린 예술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신가요? 제목과 머리글을 통해 이미 유추하셨을지 모르겠지만, 놀랍게도 이 작품은 AI가 그린 작품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제이슨 앨런이라는 사람이 AI 그림 창작 플랫폼인 미드저니(Midjourney)에 명령어(Prompt)를 입력하여 만들어낸 이미지이죠. <우주 오페라 극장>이라는 이름의 위 작품은 2022년 미국 콜로라도에서 열린 한 미술 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했습니다. 동시에 예술계에서는 앨런의 수상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림을 구상하고, 제작하고, 완성하는데 들어가는 노력을 모두 AI가 대신하였음에도 수상의 영광은 앨런이 가져가도 되는가에 대해 양측이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누군가는 앨런의 수상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손수 하나의 작품을 그려내는 화가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주장하였고, 누군가는 작품의 전체적인 구상을 떠올려 AI에 올바른 명령어를 입력하고, 만들어진 수많은 작품 중 적합한 작품을 선택하여 추가적인 가공을 진행한 앨런의 노력 역시 예술 활동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죠. 결국, 관련한 규정을 제대로 가지고 있지 않았던 해당 공모전에서는 앨런의 수상에 대해 별도의 조치를 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논란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상의 적합성을 넘어서 과연 ‘AI를 통해 작품을 만드는 행위가,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낸 작품이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라는 철학적인 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이렇게 기술의 발전이 예술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비단 어제오늘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이전에도 기술의 발전은 예술작품의 제작함과 향유함에 있어 변화를 일으키는 큰 요소였습니다. 그중에서 예술계에 가장 큰 충격을 일으켰던 기술은 바로 ‘사진’이었죠. 사진의 발명은 ‘기술복제’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예술계, 특히 미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사진의 발명이 예술에 끼친 영향에 대해 예술사적으로, 그리고 철학적으로 해석하고 규명하고자 한 이가 바로 발터 벤야민*입니다. 벤야민은 그의 논문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1935)을 통해 사진의 발명이 예술작품, 예술작품을 만드는 예술가 그리고 예술작품의 감상자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술의 변화가 인류의 문화에 어떠한 파급효과를 가져왔는지 고찰하였죠.     


인물 소개: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독일의 문학평론가이자 철학자입니다. 마르크스주의를 바탕으로 역사와 예술을 넘나들며 인류의 문화에 대해 날카로운 시선을 던진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제 벤야민이 그의 사상을 펼쳤던 1900년대의 ‘기술복제’ 시대를 넘어, ‘기술창작’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새로운 기술이 예술을 비롯한 문화 속에 편입되고 있는 현시점에서도 여전히 유의미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이에 우리는 벤야민의 사상을 차근차근히 살펴보며, 사진을 통한 기술복제를 넘어 AI를 통한 기술창작시대에서의 예술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려 합니다.     



part 2: 예술작품에는 ‘아우라’가 있었다.     


 

 벤야민을 알고 계신 분도, 그렇지 않은 분도 아마 ‘아우라’(Aura)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숭고한 자연의 경관을 보며, 멋있거나 예쁜 사람을 보며, 아름다운 예술품을 보며 ‘아우라가 흐른다’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그렇게 물건이나 사람 또는 광경이 품고 있는 고유한 영적인 분위기를 우리는 아우라라고 하죠.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라는 개념 역시 우리가 익히 사용하는 용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는 아우라가 ‘대상과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한 어떤 일회적인 현상’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말 그대로 비일상적이고 신비한 느낌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그는 예술작품에는 이러한 아우라가 깃들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벤야민은 예술작품의 아우라가 곧 특정한 예술작품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분위기, 즉 그 작품의 역사적 ‘유일성’과 ‘진품성’을 구성하는 일종의 직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때의 아우라란 오직 ‘진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오리지널리티입니다. 우리가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천지창조>*라는 작품을 마주할 때 느끼는 감상은 구글에 <천지창조>를 검색해서 이미지를 보며 느끼는 감상과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 우리는 시스티나 성당의 바로 ‘그’ 천장에 그려진 <천지창조>를 보며, 미켈란젤로가 천장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 고개를 한참 젖히거나 선반에 누운 자세로 작업했을 4년간의 고난을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또는 성당이라는 성스러운 장소에 있는 종교적인 그림을 보며 특유의 신성한 분위기를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때 여러분이 그림을 감상하며 느끼는 바로 그 분위기가 <천지창조>라는 작품이 가진 고유한 ‘아우라’인 것입니다.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의 경당 천장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사진 출처: https://smarthistory.org)

작품 소개: 미켈란젤로가 1511년에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린 벽화로 이 중 하느님이 최초의 인간 아담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창세기 속 성경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아담의 창조>(The Creation of Adam)가 유명합니다.


 벤야민에 따르면 예술작품이 가진 이러한 아우라의 기원은 예술이 가지고 있던 제의적 가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예술이란 우리가 지금 예술을 대하는 태도와 같이 단순히 유희를 위한 향유의 대상이 아닌,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 상징물의 역할을 해 왔습니다. 태초의 예술품이라고 여겨지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상>은 풍요와 다산을 비는 부적이었습니다. 현존 최고最古의 회화인 <알타미라 동굴 벽화>가 그려진 알타미라 동굴은 (그 의미에 대해 다수의 해석이 존재하지만) 당대의 예배당이었다고 여겨지죠. 고대 그리스의 신상들은 신에 대한 숭배의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다른 수많은 문명에서도 해당 문명이 숭배하는 신이나 신화를 모티프로 예술품을 제작했지요. 특히 유럽 중세시대의 예술작품들을 보면 거의 모든 작품이 성경을 바탕으로 제작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예술에는 신성하고도 주술적인 의미가 있었습니다. 벤야민은 이러한 예술의 주술적 의미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고 있어요.     


 주술에 봉사했던 태고의 예술은 실천에 쓰이는 모종의 기록들을 확정 짓는다. 즉 태고의 예술은 아마도 마법적 절차들을 수행하는 데 쓰였거나, 그러한 마법적 절차를 지시하는 일로 쓰이기도 했고, 끝으로 어떤 마법적 관조의 대상으로 쓰였다.
-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中 -   

         

 이러한 종교적 예술품은 감상자들이 그러한 예술품을 보며 신비감이나 경외감 같은 신성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러한 조각상이나 회화는 대부분 교회와 같은 ‘종교적 공간’에 배치되었기에 그 신성성이 극대화되었습니다. 그 작품들은 다수의 대중에게 보이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선택받은 소수의 신도가 바로 그 자리에서 신비하고 마법적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였죠. 벤야민은 우리가 예술품을 마주하며 느끼는 아우라가 그러한 신성성과 특정성에서 기원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기존의 예술품이 가지고 있던 종교적 가치를 ‘제의가치’라고 불렀어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상> (기원전 2500~20000)과  <알타미라 동굴 벽화> (기원전 15000~10000) 두 작품은 인류 최초의 예술품으로 꼽힌다.(사진 출처: 위키백과)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예술은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며 점차 종교적 의미로부터 멀어졌습니다. 종교 중심의 세계관이 붕괴하고 인본주의적인 세계관이 그 자리를 대체하며 예술의 의미 역시 달라졌습니다. 화가들은 신이나 천사가 아닌 실제 인간을 그렸고, 신화의 이야기가 아닌 일상을 그렸습니다. 무엇보다 이제 예술작품은 종교적인 가치, 그러니까 제의가치를 넘어 다수의 대중에게 선보이기 위한 가치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를 그는 ‘전시가치’라고 불렀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예술에 더 쉽게 접근하게 되었고, 감상자가 작품을 보며 느끼는 ‘신성함’은 ‘유희’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술작품이 가지는 아우라 역시 줄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아우라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어요. 그것은 ‘원본’이 가지는 고유한 예술성 때문이었죠.

      

 예술은 어떻게 보면 곧 ‘모방’의 작업입니다. 과거의 예술은 자연을 모방하거나, 신 또는 신화를 모방하거나, 인간을 모방하거나, 일상을 모방하기도 했죠. 그런데 어떤 모방은 다른 모방에 비해 위대한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뛰어난 예술가의 작품은 그 작품이 어떤 대상을 모방하였든 그 자체로 큰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즉 ‘그’ 작가가 그려낸 ‘그’ 작품만의 유일성과 진품성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원본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그 작품만의 아우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천지창조>라는 작품을 예시로 들었죠? 그 역시도 종교적인 예술품이기 때문에 또 다른 예시를 들어볼게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어떤가요? 모나리자를 본뜬 그림은 세상에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모나리자>의 이미지를 손쉽게 구할 수 있죠. 그런데 루브르 박물관에 가보면, <모나리자>의 원본 앞에 수많은 관광객이 작품을 보기 위해 서 있습니다. 이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려낸 바로 그 원본만이 가지는 고유한 가치와 분위기를 루브르 박물관이라는 상징적인 장소에서 느끼기 위해서, 즉 아우라를 느끼기 위해서입니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모나리자>의 원본과 고화질 이미지 <모나리자> (사진 출처: pixabay , 위키피디아)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오늘날 정작 그렇게 <모나리자>의 원본을 본 이들의 감상을 들어보면 마냥 대단하다는 반응은 아니라는 것이죠. 예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아니라면, “오 내가 알던 모나리자가 여기 있네.” 아니면 “이게 그 유명한 모나리자야?” 정도의 감상이 주가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특히 다빈치가 누구인지, 왜 <모나리자>가 대단한 작품인지 배우지 못한 어린이들은 “저거 인터넷에서 봤어! 인터넷에서 본 게 더 예쁘다.”라고 말하는 경우도 많다고 해요. 원작보다 더 선명하고 크게 모나리자를 볼 수 있는 오늘날 ‘아우라’라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벤야민은 그러한 아우라의 본격적인 붕괴가 사진 기술의 발달과 함께 이루어졌다고 주장했어요.    



part 3. 기술복제 시대와 ‘아우라의 붕괴’     



 사진의 등장은 당시 예술계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기존의 예술이 하나의 ‘모방’이었음에도 그 나름의 아우라를 가졌던 것은 그 모방이 ‘수공적 복제’의 과정, 즉 사람이 직접 행하는 복제를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작품을 만든 예술가의 창의성과 노력에 가치를 부여하고 이에 따라 그가 만든 바로 그 작품을 고유의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또한, 복제가 사람에 의해 행해지는 이상 원본과 복제품은 결코 같은 것일 수 없었죠. <모나리자>를 누군가 아무리 열심히 따라 그린다고 해도 그 모작은 분명 원작과 다른 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원 작가의 숨결이 녹아있지도 않죠. 하지만 사진은 어떤가요? 사진은 예술작품을, 인물을, 자연을, 바로 그 순간을 ‘기술적’으로 복제합니다. 이 복제는 원본과 가짜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합니다. 아니, 그 자체로 원본이 됩니다.     


 사진의 등장으로 인해 ‘진품’이 가지는 오리지널리티는 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수많은 진품‘들’ 이 세상에 퍼져있고,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진품을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그 자리, 그 순간에서만 마주할 수 있던 진품의 아우라는 이제 그 신비를 잃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사진 기술의 발전으로 등장한 영화는 현실보다 더 생생하게 현실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사진과 영화는 이제 때로는 원작보다 뛰어난 복제품을 만들어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원본들은 복제 가능성을 전제로 생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원본과 복제의 구분이 없고, 원본이 없는 복제가 행해지고, 때로는 원본보다 복제가 더 중요해지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죠.

     

 벤야민은 원본과 복제의 역전이 일어나 복제기술이 원본의 생산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는 그러한 시대를 ‘기술복제 시대’라고 명명합니다. 기술복제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술작품으로는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가 있습니다. 앤디 워홀은 마릴린 먼로의 사진을 프로젝터에 띄워두고 그 선을 따라서 여러 색의 마릴린 먼로를 그렸습니다. 이때 어떤 마릴린 먼로가 진짜 마릴린 먼로인지, 어떤 색의 마릴린 먼로 그림이 원본인지는 중요하지 않죠. 작품에 담긴 모든 먼로와 먼로를 그려낸 그림들은 원본이자 복제품이 됩니다.     

     

 <Marilyndiptych> - 앤디 워홀.  위 작품을 바탕으로 여러 색깔을 가진 그 유명한 <마릴린 먼로> 그림이 탄생하였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앤디 워홀과 <마릴린 먼로> :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은 미국의 예술가로 시각주의 예술과 팝아트의 선구자로 손꼽힙니다. <마릴린 먼로>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1962년 먼로의 사망 직후 위 사진에 나와 있는 <Marilyndiptych>가 발표되었고, 이후 1967년에 우리가 알고 있는 다양한 색깔의 <마릴린 먼로>가 발표되었습니다. 이외에도 그는 <캠벨 수프> 등의 유명한 작품들을 다수 남겼습니다.


 얼핏 보면 기술복제 시대가 만들어낸 아우라의 붕괴가 곧 예술의 붕괴가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우라의 붕괴로 예술이 사라지게 된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예술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과 시각이 바뀐 것이죠. 이제 예술품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가치들은 힘을 잃었습니다. 원본을 목도하는 마술적 경험을 통해 신성함을 체험하게 하는 ‘제의가치’는 사라졌습니다. 반면 기술 복제는 더 많은 이들에게 작품을 선보일 수 있도록 하여 ‘전시가치’를 높였죠.


그렇게 예술은 대중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제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대중의 일상 속에서 언제 어디서나 균질적으로 향유되는 예술의 ‘아름다움’(미적 가치)과 ‘메시지’(정치적 가치)뿐입니다. 이에 벤야민은 기술복제 시대의 도래가 기존 소수의 기득권 사이에서만 향유되던 예술을 대중화했을 뿐 아니라, 대중을 전통적이고 봉건적인 권위의 속박으로부터 해방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part 4. 기술의 발전과 인식의 변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대중의 인식이 변화한다는 벤야민의 이러한 생각은 마르크스가 말했던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이야기와 닮아있습니다. (실제로 벤야민은 유명한 마르크스주의자였죠.) 즉, 물질이 인간의 정신을 형성하는 기반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때 하부구조는 생산 방식, 기술을 비롯한 물질적 토대를 의미하며 상부구조는 문화나 법률 정치 체제를 비롯한 관념적인 구조를 의미합니다. 벤야민이 주목했던 복제기술의 발전은 그러한 하부구조의 변화이며, 예술과 문화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는 이에 따른 상부구조의 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part 3의 마무리에서 언급했듯, 벤야민은 사람들이 예술을 향유 하는 방식이 달라진 것이 단순히 예술관의 변화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그보다는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를 의미했습니다. 기술복제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사고방식은 분명 그 이전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사고방식과 다릅니다. 그렇게 인간의 사고방식은 시대가 흘러가며 변하는 것이고 그 밑바탕에는 기술과 같은 물질적 토대가 있죠. 무엇보다 기술복제 시대에서 벤야민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미디어’ 즉, 매체의 힘이었습니다.*


더 알아보기: 이에 벤야민은 매체 철학의 시초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매체 철학을 하는 모든 이는 벤야민의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기술복제 시대에 이르러 사람들은 활자나 그림과는 완전히 다른, 사진과 영화라는 새로운 매체의 등장을 목도 했습니다. 특히나 영화의 경우 고정된 그림만을 볼 수 있던 대중들에게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매체가 가지는 생동성이 이전의 매체들에 비해 급격히 증가하게 된 것이죠. 벤야민은 이에 따라 대중의 지각방식이 시각 중심에서 촉각 중심(다양한 감각의 종합)으로 변화하였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촉각 중심의 지각방식이야말로 복잡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가져야만 하는 올바른 지각방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영화와 같은 매체는 사람들의 정신을 현대에 맞추어 ‘훈련’ 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죠.

     

 벤야민이 매체의 힘을 중요하게 생각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벤야민은 하부구조가 변화하는 속도에 비해 상부구조가 변화하는 속도는 매우 느리다고 이야기했어요.*



상부구조의 변혁은 하부구조(토대)의 변혁보다 훨씬 느리게 진행되어 그것이 문화의 제반 영역에서 생산조건의 변화를 관철시키는 데 반세기 이상이 소요되었다.
-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中-     


더 알아보기: 프랑스의 니에프스가 자연 풍경을 최초로 고정한 헬리오그라피를 완성한 것은 1826년, 탈보트가 칼로타입을 발명해, 음화(陰畵), 양화(陽畵) 방식의 길을 연 것은 1840년경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벤야민이 주목했던 사진 복제기술은 1880년대에 완성되었죠. 이에 대해 벤야민은 그러한 사진 복제기술의 영향력이 그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작성한 1930년대에야 명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분석합니다. 반세기 가량의 간극이 존재하는 것이죠.


 이에 영화와 같은 매체에 의한 의식의 훈련은 이러한 간극을 줄이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벌어진 기술의 발전과 물질적 토대의 변화는 우리의 삶에 분명히 영향을 줍니다. 하지만 이러한 영향력은 사람들이 그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기도 전에 갑작스레 우리 곁에 찾아오고 우리의 감각과 의식은 매체를 통해 그 변화를 뒤늦게 따라갑니다. 그리고 기술 발전의 속도는 점차 가속화되고 있죠. 이 지점에서 우리는 오늘날 우리 삶에 갑자기 찾아온 기술에 대해 다시 떠올려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바로 AI 말입니다.



Part 5. 기술 ‘창작’ 시대에서 우리는      



 어쩌면 AI가 만든 예술작품이 예술계에 준 충격은 벤야민 시대에 사진이 주었던 충격보다 훨씬 큰 것일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당시의 기술복제 시대는 인간에게서 예술‘창작’의 유일한 권리를 빼앗아 가지는 않았기 때문이지요. 사진 기술이 가져간 것은 원본을 ‘복제’하는 영역이었지 원본을 그리고 예술품을 ‘창작’하는 인간의 능력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사진을 예술품으로 취급해도 되느냐에 대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작품을 오랫동안 고민하고 그려내는 작가의 노력이 들어가지 않은 채 셔터만 눌러 찍은 사진에 어떠한 예술성이 들어가냐는 것이었죠.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사진을 하나의 예술이라고 여깁니다. 사진을 찍는 데에는 그 순간을 기다리고 포착하는 작가의 능력과 노력, 그 사진에 의미를 담는 창의성 등이 복합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또한, 우리는 앞서 언급한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와 같이 기술을 이용한 작품들에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이제 영화는 예술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장르가 되었죠. 그리고 단순한 사진의 복제를 넘어서 예술의 디지털화와 인터넷의 발달은 복제기술을 극단적으로 발전시킴과 동시에 예술의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주었죠. 그렇게 복제기술은 어느덧 우리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오히려 창작과 향유 모두의 측면에서 예술의 영역을 더 다채롭게 확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예술의 경우, 여전히 그것을 창작하는 것은 모두 인간입니다. 사진도, 미술품도, 영화도 음악도 모두 기술을 활용하여 인간이 한땀 한땀 만들어내는 작품들입니다. 기술의 발달이 그러한 창작을 편하게 만들고, 새로운 시도들을 가능하게 했지만, 예술작품의 창작자가 누군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진 작품을 보며 그 창작자가 소니 카메라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처럼요. 그러나 미드저니와 같은 AI가 그린 작품에 대해서는 그러한 창작자가 도대체 누구인지에 대해 쉽게 이야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앞서 이 글의 시작에서 다룬 <우주 오페라 극장>의 경우 그 창작자는 명령어를 입력하고 작품을 골라내 후처리를 진행한 앨런일까요? 아니면 명령어를 해석하고 작품의 전체적인 구상부터 내용물까지 모든 부분을 아름답게 그려낸 미드저니일까요?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든 답이 나오더라도 우리는 또다시 이러한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예술작품일까요? 예술작품이 아닐까요?

      

 우리는 지금껏 꽤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벤야민의 사상에 대해 알아보았지만, 그 사상만으로 이러한 어려운 질문에 곧바로 대답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에 허탈함을 느끼는 분들도 분명히 계실 것으로 압니다. 다만 우리는 그가 사진이라는 새로운 기술과 예술의 관계,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인간의식의 변화를 고찰하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AI라는 새로운 기술의 침투로 인한 하부구조의 변화가 우리의 삶과 인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질문이 떠오르실 수도 있고요. 그러한 모든 사유의 과정이 미래의 예술을 넘어 미래의 사회와 인류 전체가 AI와 공존하는 먼 훗날을 대비하는 일종의 훈련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기술창작시대의 예술작품’은 어떤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될까요? AI 예술작품이 사진과 같이 당연시되는 시대가 올 수도 있을까요? 예술의 미래는 어디에 있을까요? 명확한 답이 아닌 수많은 질문을 남기며 이만 글을 마치겠습니다. 함께 고민하며 답을 찾는 그곳에 미래가 있을 테니까요.


오늘의 질문

<우주 오페라 극장>은 앨런의 작품일까요? 미드저니의 작품일까요?

그리고 ‘기술창작시대의 예술작품’은 어떤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될까요? AI 예술작품이 사진과 같이 당연시되는 시대가 올 수도 있을까요? 예술의 미래는 어디에 있을까요? 본문에서 물었던 그 질문을 다시 한번 던지고 싶습니다.


참고문헌

발터 벤야민, 최성민 역, 『기술복제시대의 예술 작품』, 도서출판 길, 2007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을 계속 연기하면 진짜 사랑이 될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