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미니멀리즘의 기준점을 찾아가는 길
간단히 운동 후 개운하게 샤워한다. 오랜만에 땀을 흘려서인지 틀어놓은 음악에 절로 흥얼거린다.
다시 찾아온 나를 마주한 뒤론 그 어느 하나 흥나기가 쉽지 않았는데.
기분 좋게 몸을 닦으며 겨울을 보고 머리를 말리고. 그러다 선반에 시선이 멈춘다.
이걸 저쪽으로 옮겨서 진열하면 좀 더 깔끔해 보이지 않을까_ 저걸 그냥 버리는 게 어떨까_
젖은 샤워타월을 좀 더 안 보이는 곳에 말릴 순 없을까_
또 등장한 사감선생이다.
그러고 보니 아까도 운동하면서도 훈수를 뒀었지.
여기 의자들을 저쪽으로 치우고, 저기구석에 있는 운동기구를 이쪽으로 옮기면 좀 더 깔끔하고 운동도 기분 좋게 하게 되지 않을까_
머릿속 사감선생을 인지하게 된 건 이번에 찾아온 나와의 대화를 시작하면서였다.
나는 그리 깔끔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내 이상이 정의한 내 삶은 깔끔한 사람이었다.
깔끔하고 간결한 삶. 요즘 유튜브에도 많이들 보이는 간결하게 사는 행복한 삶.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사람.
적당한 이상향은 우리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준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을,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구분하지 않은,
그저 쿨하고 멋져 보이는 삶에 대한 동경은.
타협이라곤 없는 사감선생이 되어 그렇지 않은 진짜 내 삶을 모두 부정해버린다.
그래서 그렇게 종종 힘이 들었다고, 다시 찾아온 나는 나에게 말해주었다.
어릴 적 덧셈 뺄셈을 못해 밤새 책상 앞에 엄마와 마주 않아 왜 그걸 못하냐고 밤새 다그치셨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렇게 나도 나에게 왜 그걸 못하냐고 스스로를 모질게 다그치고 있었다.
단순한 삶. 간결한 살림을 가꾸고 싶다.
그러나 잡지에서, 티브이에서 보여주는 다른 이의 삶은 아주 작은 참고그림이어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머릿속 사감선생 인척 낯선 타인을 대하듯 스스로를 질책하려던 찰나, 정신을 차리곤 나와 다시 맞춰간다.
내가 만들어 놓은 방향에서 하나씩 넣어도 보고 빼보기도 하면서 나만의 단순한 삶을 찾아가자고.
그렇게 울렁이던 마음을 진정시킨다.
설거지를 하고. 밖에 놓아둔 화분에 쌓인 꽃가루를 닦아 방으로 넣어두고, 바닥을 간단히 닦는다.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깔끔하기 위해 빼려고 했던 일들은 그저 있는 데로, 덧셈 인체로 놓아두었다.
오늘 나만의 뺄셈은 충분히 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