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둥지둥 대던 초보 엄마 아빠도 이쯤 되니 아가의 무언의 신호를 용케 조금은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아가가 생후 9일째에 집으로 돌아왔다.
산후조리원 사정상 7일밖에 머무르지 못한 댔다. 몸은 당연히 회복될 리 없었고, 출산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이었다. (보통 2주~3주 조리를 하니 생후 16~23일 이후 집으로 온다.)
우리 아간 신생아 치고도 잠이 정말 없었다. 비교군이 없는 우리였지만 3주를 함께해주신 산후도우미 이모님도 올해 들어(그때는 10월이었다) 본 아가 중에 잠 없는 아가에 손꼽힌다고 했다.
신생아가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한다는 말을우리는 절대 공감할 수 없었다.
친정엄마도, 어머님도, 주변지인들도 하나같이 말했다. 아가 잘 때 같이 자야한다고. 그때 꼭 옆에서 자라고.
생후 30일.
아침 8시 일어나면 오후 6시까지 1~2시간도 채 자지 않았다. 물론 졸려했고 자고 싶어 했다.
자는 법을 모르는 아가와 재우는 법을 모르는 초보 부모.
그로 인해 아가는 품에 안겨있는 그 5분을,10분을 자다가 내려놓음 다시 깼고 졸음을 이기지 못하며 밥을 먹으면서 자다가도 트림을 하며 잠이 깼다.
우리는 신생아의 기본 욕구를 해소시켜주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오후가 될수록 아가는 악을 쓰고 울었고 신생아임에도 저녁잠을 3~4시간씩, 가끔은 6시간까지도 깨지 않고 쭉 자줬다.
그 당신엔.
안아 재우지 말라는 산후도우미 이모의 그 말을 지키려 부단히 애썼다. 지금 생각해보면 더 안아줄 걸, 안아서라도 재워줄걸 하는 마음이 자꾸 맴돈다.
정말 사람들 말처럼,
30일이 지나자 진짜 조금 나아졌고, 50일이 지나자 더 나아졌다. 70일이 지나자 제법 괜찮아졌고 그렇게 100일의 기적을 기다렸다(100일의 기절이 오지 않길 바라며). 100일이 되자 정말 기적이 왔고 이전보다도 더더 나아졌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이렇게 시간이 지나 더 나아져도, 진짜 조금 더 살 것 같아도 여전히 너무 피곤하고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이전보단 확실히 살 것 같았지만 여전히 편하고 여유롭진 않았다.
남편이 그랬다.
'우리는 밤낮으로 달리는 기차를 타고 있다고. 연중무휴. 자면서도 움직여야 한다고.'
그렇게 아가가 70일 좀 지나자 아가도 우리도 서로와의 어색했던 동거가 익숙해졌다. 아가의 어설픈 패턴을 읽을 수 있게 됐다.
아가 자는 시간은 우리의 유일한 쉬는 시간, 자유시간이었다. 이 자유는 정말 '한여름밤의 꿈'처럼 아가가 일어나는 순간, 어떤 예고도 없이 그냥 끝이 난다.
실제로 아가 생후 70일쯤 되자 우리는 그 시간을 쪼개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했다.
나는 남는 시간 동안 드라마, 예능을 쪼개 보기도 했다. 손을 놓고 있었던 과거 유일한 취미, 수세미 뜨기를 하기도 했다. 집안의 풍경(사실은 당시에는 '집안의 꼴'이 더 자연스러운 표현일 것 같다.)이 눈에 들어올 즘 식물도 살펴보고 가지치기, 식물 삽목, 분갈이, 식물 물꽂이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자유시간에 남편과 나란히 앉아 '우리 둘의 이야기'를 이전보다 더 나누기도 했다.
아가가 태어난 지 100일 넘어가 더욱 눈에 보이는 패턴이 생겼을 때에는 아가 낮잠시간을 쪼개 해리포터 시리즈를정주행하기도 했다. 정주행 하기 위해 블루투스 이어폰도 샀다.(ㅋㅋㅋㅋ)
이제 갓 210일 넘은 우리 아가는 부쩍 낮잠 시간이 줄어 40분, 40분, 40분 3번 잔다.
(출처: 똑게육아, 보통 7개월 아가의 낮잠 총 시간은 3~4시간이다.)
이 짧디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집안 정돈도 해야 하고 점심밥도 먹고, 아가 용품도 설거지 해야하고, 이유식도 만들어야 하고 브런치에 글도 써야 하고 수세미도 떠야 한다.
아니,솔직히 말하면 그 남는 시간에 브런치에 글도 쓰고 싶고 수세미도 뜨고 싶고 드라마, 예능, 영화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