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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수필문학

감정의 기억

더 오래, 더 빨리 소환되는 감정의 기억

by 우연의 음악


일요일 오후, 배가 출출해 자전거를 타고 빵집으로 갔습니다.

굴다리 밑을 지나는데 저만치 한 사내가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었습니다.


사내는 바쁜 일이 있는지 앞만 보며 잽싸게 걸어왔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틀림없이 어디서 본 얼굴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디서 만난 누군지는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누굴까? 어디서 봤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내는 지나갔고, 나는 빵집을 향해 계속 자전거를 타고 갔습니다.

빵집으로 가는 동안 그 사내를 기억해 내려고 애썼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사내를 어디서 보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내 감정의 기억은 그 사내에 대해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사건)에 대한 기억보다 감정에 대한 기억이 더 오래가고,

더 빨리 그 기억을 끄집어 내는구나.’


빵을 사서 나설 때쯤, 사내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불친절했던 읍사무소 공무원이었습니다.


그 순간,

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좋지 않은 감정의 기억을 남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깨어 경계하지 않고, 자신의 말과 행동을 알아차리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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