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셀프 체크인 호텔이 가지고 있는 위험함에 대하여
얼마 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거쳐 체코의 프라하로 이어지는 여행을 했다. 여행 동안 이런저런 재미난 일들을 많이 겪었는데, 셀프 체크인 호텔에서 ‘당했던(?)’ 경험이 유럽을 여행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여행 첫날, 14시간 넘게 비행한 다음 부다페스트 공항에 도착했다. 곧바로 택시를 타고 예약한 호텔로 갔다. 부다페스트는 크지도 않고 복잡하지도 않았다. 자연히 교통 체증이란 것이 없어 30분도 걸리지 않아 호텔에 도착했다.
순조롭기만 했던 여행 첫날이었다. 하지만 호텔에 도착한 직후 문제가 벌어졌다. 우선 호텔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은 비밀 번호로 통한다
10박 일정으로 떠났던 여행이다. 당연히 떠나기 전 일정에 맞춰 호텔을 모두 예약한 상태였다. 문제는 부다페스트에서 첫날 묵기로 한 호텔이 이른바 ‘셀프 체크인 호텔’이란 사실이었다.
호텔 예약을 하던 중, 셀프 체크인 호텔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보통의 호텔에 비해 가격 대비 시설과 도심 접근성이 좋았다. 게다가 마침 내가 원하는 지역에 셀프 체크인 호텔이 있어 고민 없이 예약을 했다. 셀프 체크인이 말 그대로 스스로 알아서 예약된 방으로 찾아가면 되는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할 복병이 있을 줄은 전혀 알지 못했다.
호텔 출입문은 중세시대 성문처럼 높고 육중했다.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비밀번호가 필요했다. 인터폰 같은 것은 없었다. 오직 비밀번호를 눌러야만 문이 열렸다. 그때 즈음에야 나는 호텔 예약을 마치자 호텔 쪽에서 ‘체크인 12시간 전에 휴대폰으로 비밀번호를 알려주겠습니다’라고 보냈던 문자가 생각났다. 곧바로 휴대폰을 열어 문자를 확인했다. 안타깝게도 호텔에서 보낸 비밀번호 문자는 없었다.
한참 뒤에야 그 이유를 알았다. 전화기를 로밍해 가지 않았으니 문자 수신이 되지 않았던것이다. 부다페스트 공항 도착 직후 유럽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심칩으로 교환했다. 칩을 바꿔 끼자마자 인터넷 사용이 가능했다. 카톡도 실시간으로 들어왔다. 자연히 ‘휴대폰 사용에 아무 이상 없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이 있던 중이었다. 전화와 문자 수신은 안 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저기, 누구 안 계셔요?
호텔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서성이다 안에서 사람이 나오는 틈을 이용해 호텔 안으로 들어가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셀프 체크인 호텔답게 안에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서너 평 쯤 되는 공간에 작은 테이블과 의자 두 개가 전부였고, 조금 떨어진 곳에 엘리베이트가 두 대 있을 뿐이었다.
가끔 사람들이 출입문을 열고 들어와 엘리베이트를 타고 사라졌다. 모두 자신이 예약한 방의 비밀번호를 아는 여행객들이었고, 호텔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궁금한 것을 물어볼 사람도, 상황을 하소연할 사람도 없다는 뜻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은 예약 사이트로 들어가 현재 상황을 메일로 알리는 수 밖에 없었다.
서툰 영어로 메일을 보내 상황을 설명했다. 생각보다 답이 빨리 왔다. 셀프 체크인 호텔은 세계 곳곳에 체인을 두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개별 호텔에는 관리하는 사람이 전혀 없고,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는 관리 사무실에서 답장을 해 온 것 같았다.
내가 처한 안타까운 상황과 달리 답장은 간단하고 무미건조했다. ‘예약 당시 적어준 휴대폰의 문자로 비밀번호를 알려드렸습니다. 호텔 출입구 비밀번호와 예약된 방의 비밀번호가 같습니다.’ 딱 두 줄이었다.
다시 메일을 보냈다. 휴대전화 로밍을 해 오지 않아 문자를 확인할 수 없으니 메일로 비밀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다. 금방 답이 왔다. ‘규정상 불가능하다’는 아주 무시무시한 답변이었다.
4시간 동안의 고군분투
그러는 사이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14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왔으니 무척 피곤하고 배도 고팠다. 하지만 바퀴 달린 무거운 가방을 끌고 다시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날은 바야흐로 점점 어두워갔다. ‘체크인을 포기하고 다른 호텔을 알아봐야 하는 것 아냐?’ 하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다.
그때 떠오른 생각이 있어 밖으로 나갔다. 지나는 헝가리 아주머니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 휴대폰 전화 한통화를 부탁했다. 예약 사이트에 적혀 있는 전화번호를 보여주면서... 메일 상으로는 무미건조하게 규정만 내세웠지만 직접 전화를 걸어 사정을 이야기하면 혹시 알려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마음씨 좋아보이던 헝가리 아주머니는 흔쾌히 도와주겠다면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런데 보여준 예약 사이트 안내 전화번호를 보더니 ‘헝가리가 아니에요’했다. 자기도 알 수 없는 외국 전화번호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불안감이 점점 더 강하게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다시 곰곰이 해결 방법을 생각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로밍을 해서 문자를 확인하면 되었다. 그런데 ‘로밍은 출발하기 전 한국에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인터넷에 들어가 검색을 해 보았다. 현지에서 로밍하는 방법을 누군가 자세히 인터넷에 올려놓았다. 30분 넘게 씨름한 끝에 로밍에 성공했다. 부다스페스트에 도착한지 4시간이 지났을 때다.
로밍에 성공한 뒤 다시 메일을 보내 비밀번호를 한 번 더 보내 달라고 했다. 잠시 뒤 문자 수신함을 열어보니 비밀번호가 와 있었다. 무려 4시간 만에 받은 소중한 비밀번호였다.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어떤 문제가 벌어졌을 때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 할 수 있는 ‘사람’이 너무나 그리웠던 순간이었다.
호텔에 들어가 짐을 푼 뒤 가장 먼저 한 일이 호텔 예약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이었다. 6일 뒤 프라하에서도 셀프 체크인 호텔에 머물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실수를 또 할 수 없어 예약 사이트에 들어간 다음 비밀번호 수신처 난에 메일 주소를 추가했다. 체크인 날짜가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인지 수신처 추가가 간단했다.
새로운 복병
6일 뒤, 프라하로 갔다. 예상대로 숙소 비밀번호가 메일로 왔고, 나흘 동안 특별한 불편함 없이 호텔을 드나들었다. 그런데 마지막 날, 예상치 못한 복병을 또 만났다.
마지막 날에는 특별한 일정이 없어 느지막하게 일어나 늦은 아침을 먹고 숙소로 돌아갔다. 큰 짐은 대충 싸 놓았기 때문에 옷만 갈아입고 나와 공항으로 가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방문이 열리지 않았다. 비밀번호를 잘못 입력했나 싶어 여러 차례 시도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참 뒤에야 11시로 되어 있는 체크아웃 시간을 넘겼기 때문이란 사실을 알았다. 어느 나라에 있는지 알 수도 없는 호텔 관리실에서는 세계 각국에 있는 개별 호텔의 개별 숙소 상황을 알 리 없을 것이다. 그들은 체크 아웃 시간이 지났으니 새로운 투숙객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하고, 그 시작이 새로운 비밀번호를 도어락에 부여하는 것이었을테다. 호텔로서는 지극히 제 할 일을 한 셈이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아직 짐도 챙겨 나오지 못한 방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망할놈의)셀프 체크인 시스템이다보니 호텔 안에는 도움을 청할 직원이 아무도 없었다.
부다페스트에서의 악몽이 떠오르면서 자칫 비행기를 놓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다. 호텔 쪽과 연락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메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상황을 설명하는 메일을 보냈다. 다행히 금방 답장이 왔고, 체크아웃 시간이 지났는데 왜 짐을 챙겨 나오지 않았냐는 질타성 내용이 두 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아주 시혜를 베풀 듯 10분의 여유를 줄테니 얼른 짐을 챙겨 나오라고 했다. 10분 후에는 문이 자동으로 잠긴다고 했다. 최악의 상황은 피해갔지만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던 것은 사실이다.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어 가격대비 더 좋은 시설을 투숙객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셀프 체크인 호텔이다. 아주 낮은 수준의 무인 자율 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때로 비대면 서비스가 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렇지만 문제가 벌어졌을 때, 아무런 도움도 못 받고 오직 혼자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고 보니 아날로그적인 사람의 손길과 목소리가 그리웠던 것도 사실이다.
유럽 여행을 준비하면서 혹시라도 셀프 체크인 호텔에 묵을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사실을 미리 생각해 두고 가면 도움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