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여성복과 남성복의 경계를 확연히 그을 수 없는 시대다. 패션의 경계는 취향이지 더 이상 성별이 아닌 시대가 온 것이다. 바야흐로 '젠더리스 패션'의 시대다.
페미닌한 패션의 상징이었던 리본이나 드레이핑이 남성 패션에서도 흔하게 발견되고 컬러감 또한 주로 페미닌한 컬러로 여겨졌던 핑크와 레드 계열이 과감하게 쓰여진다. 구찌에서도 꽃무늬 자수가 가득한 자켓과 바지를 내어놓고 핑크에는 눈을 주지도 않던 남자들의 마음까지 사로잡고 있다. 적어도 패셔니스타들 사이에서는 어떤 옷이든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어떻게 나의 특유한 감각을 표현할 것인가가 옷입기 철학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향수에도 젠더가 없다. 딥디크의 도손은 남성들이 쓰기도 좋지만 여성들이 쓰기도 좋은 향수다. 니치 퍼퓸들이 속속 등장라면서, 과거 여성 향수와 남성 향수의 구분이 뚜렷했던 보수적인 통념이 깨어졌고, 특정 성별의 향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이제는 당연한 듯하다. 비단 향수뿐일까. 어쩌면 모든 것이 그저 통념에 불과하지는 않았을까.
여성의 전유물로 생각되던 주얼리도 점점 더 유니섹스해지고 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그 클래식한 디올 옴므에서조차 세련된 수트에 주사위 모양이나 리본 브레이슬릿을 매치한 룩을 선보이고있으니까.
여성 주얼리 라인 자체가 볼드해질 뿐 아니라, 어떤 성별이든 구분 없이 걸칠 수 있는 주얼리 컬렉션이 인기를 얻고 있다. 시대의식의 변화도 있겠지만, 3D프린트의 발전이나 다양한 소재의 활용으로 인해 주얼리 활용에 있어 무궁무진한 도전이 가능해진 덕도 있다.
최근 주목하고 있는 주얼리 브랜드 중에 ‘펠릭스 돌(felix doll)’이 있다. 스위스에서 디자인하고 네팔에서 생산되며 독일에서 세공하는 글로벌 주얼리 브랜드는 중저가에 현대적이면서도 세련된 주얼리를 선보이는데, 모두 유니섹스라는것이 독특하다. 남녀불문 젠더불문 쉽게 걸칠 수 있는 콘템프러리 주얼리가 그 모토다.
브라질의 유명 주얼리 디자이너 페르난도 호르헤(Fernando Jorge)도 마찬가지다. 최근 그가 발표한 패러럴(parallel) 컬렉션은 남녀 모두를 위한 컬렉션으로 타겟 성별이 모두임을 명확히 밝혔다. 유명 모델 케이트 모스와 콜라보를 한 아라 바타니안(Ara Vartanian) 또한 남녀 누구나 착용할 수 있는 주얼리 라인을 발표하고 같은 주얼리를 남녀 모델 모두가 착용하는 다소 획기적인 화보집을 찍기도 했다.
이런 다소 마이너했던 흐름이 주류가 된 데에는 역시나 구찌의 덕택이 크다. 시그니처 더블G 로고를 활용한 다양한 주얼리를 내어놓고 데일리 주얼리이자 젠더리스 주얼리로서 소개하면서다. 이런 흐름이 이제는 국내 주얼리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효진이 모델로 있는 에르게(Erghe)도 젠더리스 주얼리를 내어놓으며 국내 트렌드를 이끌어가고 있다.
사실 주얼리의 젠더리스한 속성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의 귀족들은 남성임에도 그 누구보다 금붙이와 보속을 사랑했고, 이집트에서는 남녀 모두가 같은 종류의 장신구를 즐겨했다. 르네상스와 고전시대는 또 어떻고. 주얼리가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생각 자체가 몹시 최근에 굳어진 선입견일지도 모른다. 주얼리는 젠더 불문 아이덴티티를 심어주는 마지막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하이패션은 선진적이고 그 선진성은 비단 패션이라는 의복문화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문화를 담고 있는 시대의 미래를 더 선진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당장 내가 살아가는 현실은 여전히 젠더리스와는 거리가 멀지만, 언젠가 젠더리스한 사상이 새로운 기준을 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문화는 늘 그래왔다. 안전지대에서 생계를 꾸려나가는 나와 달리, 시대 전선의 끝에서 경계를 밀어나가는 아티스트들은 한 발자국 먼저 세상의 흐름을 읽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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