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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너스톤 Apr 02. 2019

매들린 올브라이트, 브로치로 외교하다

미국 최초 여성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에게 브로치가 갖는 의미

한국에는 몹쓸 속담이 많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거나 '여자 팔짜 뒤웅박 팔자' 같은 가부장제의 흔적이 드러나는 몹쓸 말들. 그런데 가끔은 그런 속담들이 툭툭 내뱉어지면서 사회 곳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많은 동료 여성들의 마음에 상처를 내곤 한다. 정치판처럼 남성이 오랜 기간 지배적인 우위를 다져온 곳은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항상 애써 두세배 노력을 더 하며 세상을 바꿔온 여성들이 전세계 곳곳에 있으니, 여성 최초 미국 국무장관인 매들린 올브라이트(Madeleine Albright)를 빼고 말할 수 없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외교정책 보좌를 하다가 UN 주재 미국 대사로, 또 미국 최초의 국무장관으로도 일하면서 전세계를 상대로 탁월한 협상능력을 선보인 그녀는, 지금은 조지타운 대학교에서 교수로 있으며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책을 출간해내고 있다. 강경한 대처와 유려한 협상력으로 클린턴 정권의 외교노선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던 그녀는 뛰어난 패션 감각으로도 유명하다. 단순히 고상한 자태를 자아내는 데에 그친 것이 아니라 패션에 철학을 담았기 때문이다.


여성 정치인이 등장하면 항상 어떤 옷을 입었는지에 주목하는 언론에 응수하기라도 하는 듯, 옷깃에 브로치를 달았고, 그 안에 협상 테이블에서 취할 포지션과 외교적 메시지를 담았다. 올브라이트에게 있어 브로치는 대화의 물꼬를 트는 흥미로운 소재가 되기도 하고, 비언어적인 암시를 통해 협상의 방향을 제시하는 상징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각각 뱀 모양의 브로치와 시계로 눈을 만든 자유의 여신상 브로치


올브라이트가 처음 브로치를 외교에 사용한 것은 UN 대사로 있을 때였다고 한다. 걸프전 직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과 이라크 언론이 그녀의 집요함을 보고 '독사'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전혀 반기지 않는, 최악의 여자'라는 식으로 비판을 하자, 그녀는 이라크로 가서 뱀 브로치를 착용했다고 한다. 그 위트 있는 우아한 대응이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올브라이트는 브로치 외교에 재미를 붙였다고 한다.


협상 전망이 긍정적일 때는 나비와 꽃을, 부정적일 때는 산짐승과 곤충 쉐입의 브로치를 착용해서 협상 상대방에게 미리 협상 포지션을 전달하는 전략을 취한 적도 있고, 시간 조절이 핵심인 협상 테이블에서는 눈이 시계로 만들어진 자유의 여신상 브로치를 착용해 참석자들에게 시간의 중요성을 암묵적으로 전달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브로치를 하고 올 때면 모두 시간에 민감해진다고 하니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되는 꽤나 효과적인 전략인 것 같다.


각각 넬슨 만델라와 김정일을 만난 올브라이트


유명한 해외 인사들과 만날 때도 브로치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는데, 넬슨 만델라와 만났을 때는 아프리카의 평화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 얼룩말 브로치를 착용했다고 한다. 올브라이트는 국무장관으로 재직 중이었던 2000년에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을 만났는데, 첫날에는 미국을 상징하는 성조기와 독수리를 둘째날에는 진솔한 대화를 뜻하는 심장 모양의 브로치를 착용했다고 한다.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지난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는 선언을 하면서는 독수리 모양의 브로치와 힐러리의 이름과 함께 깨진 유리가 이어진 브로치를 했는데, 미국의 미래에 대한 우려와 함께 힐러리가 유리천장을 깨고 대통령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그런 브로치로 표현했다고 한다. '지옥에는 동료 여성을 돕지 않는 여성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는 어록을 남기도 한 그녀는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젊은 여성들을 위한 강연을 종종 열기도 한다.


올브라이트의 브로치 컬렉션 중 일부


올브라이트가 '브로치 외교'로 유명해지면서 결국 '내 브로치를 읽어봐: 어느 외교관의 보석상자에서 나온 이야기들(Read my pins: Stories from a Diplomat's Jewel Box)'이라는 책을 출판하고, 자신의 브로치 컬렉션 200점 가량을 모아 전시회를 하기도 했다. 그녀의 주얼리 컬렉션에는 앤틱한 고급 파인주얼리부터 벼룩시장에서 구매한 저렴한 주얼리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그녀가 가장 아끼는 주얼리는 딸이 다섯살 때에 직접 말렌타인 데이 선물로 만들어 준 하트 모양의 브로치라고 하는데, 지금은 박물관에 다른 컬렉션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젊은 여성들 앞에서 연설하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올브라이트의 정치 성향과 외교 노선과 별개로, 그녀는 전세계 여성들에게 훌륭한 롤모델임은 분명하다. 여성 정치인에게 패션은 언제나 민감한 문제다. 여성 정치인들의 경우 정작 다른 것보다도 패션에 지나친 관심이 몰릴 뿐 아니라, 신경을 쓰든 쓰지 않든 쉽사리 비판에 노출되어 있기에. 메르켈 총리처럼 패션에 신경을 덜 쓰면 자기관리가 부족하다고 비난을 듣고, 테레사 메이처럼 패션에 신경을 많이 쓰면 사치스러우니 일이나 똑바로 하라는 비난을 듣는, 어떻게 하든 외모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여성 정치인들의 숙명인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어떤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패션이라는 것을, 그중에서도 브로치라는 고상한 패션 아이템을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담은 메시지로 활용을 했다. 물론 유머 한 스푼을 덜어 넣는 것도 잊지 않았고. 그렇게 '브로치 외교'라는 자기만의 트레이드마크를 구축했을 뿐 아니라, 우아한 방법으로 당시 팽배했던 여성 정치인에 대한 비아냥거림에 대처했던 것이다.


나의 신념, 나의 철학, 나의 취향. 어느 때보다도 현대 여성들은 '누군가의 누군가'가 아닌 '나'로서 존재하길 간절히 바란다. 나만의 특별한 정체성을 드러내고 올브라이트처럼 우아한 방식으로 상대방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면, 특별한 브로치를 활용해보는 건 어떨까.



                                                  www.connersto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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