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간의 미국 유학 생활에 관한 이야기
소위 말하는 아메리칸 드림을 가지고 미국이라는 땅에 오게 된지도 어느덧 6년이 넘었다. 이제는 대화중에 불쑥불쑥 영어가 튀어나올 정도로 언어는 꽤 익숙해졌고, 동생이 떡볶이 50인분을 싸들고 미국으로 날아오는 얼토당토않은, 추억 잠긴 꿈도 더는 꾸지 않는다.
한국의 평범한 여고에서 한 학기를 마친 뒤 오게 된 미국은 내가 그려오던 화려함과 웅장함 따위의 것들과는 사뭇 달랐다. 오하이오 주의 조용한 시골 마을에 처음 발걸음을 내딛자마자 보인 것은 광활하게 펼쳐진 옥수수밭과 근근이 보이는 지붕 있는 주택들 뿐이었다. 하전했다. 학교가 파한 뒤 할 수 있던 일은 그저 한적한 거리 사이의 잔디밭에 털썩 앉아 잔잔한 알앤비 음악을 틀어놓고 낮잠을 청하는 것이었다.
오하이오 주에서의 1년, 지금에서야 돌이켜 보면 익숙하지 않던 것들이 익숙해지기 시작하던 때였다. 오가는 곳이 학교 학원 독서실뿐이던 나에게 매일 주어진 열 시간의 여유가 너무도 어설펐다. 구름이 예쁘게 걸터앉은 하늘을, 바람결에 바사삭 거리며 부딪치는 나뭇가지들을, 날이 어두워지자마자 선명해지는 별빛을 가만히 앉아 바라보는 것, 그때의 나는 모두 낯설어했다. 한국의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는 절대 누리지 못할 것들을 누리고 감사를 배우게 된 귀중한 시간이었다.
조금씩 주어진 여유를 즐길 줄 알게 됐을 무렵, 안락지대에서 벗어나 학년 말에 다녀온 뉴욕은 나에게 있어 큰 충격이었다. 학교 미술 캠프로 열댓명의 친구들과 처음으로 방문하게 된 뉴욕은 나에게 새로운 것들을 보여주었다. 주위 친구들이 높은 건물들과 쇼핑몰들에 눈이 멀어 있을 때,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타임스퀘어만 바라보았다. 현란하고 거대한 전광판들에 나는 완전히 사로잡혔었다, 너무 감명받아 눈에 눈물이 고일 정도로. 최면에 걸린 듯 한참을 화려한 전광판 속 반복되는 광고들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서 나는 내 꿈을 구체화하였다. 타임스퀘어에 내가 기획한 광고를 싣는다는 것, 10년 뒤쯤 꼭 이 자리에 나의 광고를 싣겠노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때부터 마냥 꿈꿔왔던 것은 뉴욕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 매일같이 매디슨 에비뉴와 타임스퀘어 광장을 누비는 것이었다. 이어진 3년의 고교 학창 생활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뉴욕에 대한 동경 하나 뿐이었다. 광고도 좋았지만, 빠릿한 도시 분위기가 좋았다. 그곳에서라면 분주한 사람들 속 함께 화려한 삶을 살게 될 것 같았다. 바쁜 게 좋았다. 세계 최대 도시를 누비며 인정받는 게 좋았고, 우쭐한 기분도 좋았다.
오하이오에서 고등학교 일 년을 마친 뒤, 일리노이 주의 작은 도시로 학교를 옮기게 되었다. 시카고에서 조만치 떨어져 있는 곳인지라, 운 좋게도 고등학교 3년 간 또 하나의 대도시를 종종 경험할 수 있었다. 사실 시카고는 그다지 즐거운 도시는 아니었다. 꿈꿔오던 뉴욕이 너무 화려해서였을까, 회색빛 시카고는 이도저도 아닌 기분이었다. 이은 유학 생활에 대한 나의 자만이자 건방이었달까. 실은 칙칙함이 아름답고 조화로운 도시였는데. 찬찬히 도시를 거닐다가 시카고 강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하기는 참 좋았다. 그땐 미처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만큼 차분함이 매력적인 도시였다.
뜻하지 않게 대학은 뉴욕이 아닌 캘리포니아 주로 오게 되었다. 앞서 지내왔던, 또 꿈꿔왔던 곳들과는 너무 달랐다. 처음에는 싫었다. 고대하던 화려함이나 분주함과는 정반대의 곳이었다. 캘리포니아는 죽어도 오기 싫다던 나였는데, 그곳에의 특유의 느긋함을 한심하게 여기던 나였는데 – 뒤숭숭한 심경을 못다 정리한 채 북가주 땅에 도착했다. 앞으로 적어도 4년은 이곳에서 지내야 한다니, 공항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설렘보다 못내 아쉬운 감정이 맴돌았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를 처음 다녀온 뒤로는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미국에서의 두 번째 충격이었다. 뉴욕처럼 복작하거나 시카고처럼 칙칙하지 않아서였을까. 생각치도 않던 이곳은 일과 여유를 모두 즐길 수 있는, 호화롭지는 않지만 소박하지만도 않은 도시였다. 높게 솟은 건물들 속을 누비며 발걸음을 재촉하다 근처 항구에 잠시 멈춰 일렁이는 물결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게 나는 너무도 신기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세상이 더불어 어울러져 있었다. 그 날 나는 함께 있었던 친구가 그만하라고 몸서리 쳤을 정도로 종일 "새롭다"라 연거푸 독백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무섭게도 나는 이곳이 좋아졌다. 이태껏 지내온 캘리포니아는 그간 대학 입시에 지치고 식어있던 나를 촉촉이 적셔주는 곳이었다. 학교 공부를 정신없이 따라가다가도, 때로는 내려놓음을 허락해 주었다. 바쁜 삶에 대한 갈망을 채워주면서도 잊고있던 여유를 되찾아준, 그런 소중한 곳이었다.
반면 작년 봄방학 중 하루 다녀온 나의 두 번째 뉴욕은 낯설었다. 광고에 대한 꿈은 여전하고, 4년 만에 돌아온 도시에도 크게 변한 점은 없었는데, 이전의 떨림과 설렘이 전혀 없었다. 타임스퀘어의 번쩍이는 전광판을 봐도 별 감흥이 없었다. 아, 이제 나는 5년 전 어리숙했던 내가 아니구나.
생각이, 주위를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앞으로 이곳 미국에서 느끼고 배울 감정들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