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rdinary 박사엄마 Jun 30. 2022

내 인생의 잔잔한 패턴은 내가 만드는 것

삶의 예쁜 순간들을 기록하는 지희 님 인터뷰

왜 저를 인터뷰하죠?
저는 그냥 애 키우고 너무나 별다를 것 없는 사람인데요. 뭔가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없을까 봐 걱정이에요. 제 이야기가 글이 될지 잘 모르겠어요.


바로 그 점이에요, 지희 님.
지희 님을 특별하게 하는 지점이 바로 그 평범함에 있답니다.
‘우리’가 솔직히 평범하기 쉽지 않잖아요. 지희 님 보면 참 흔들리지 않고 자기 자신과 가족, 그리고 일상을 예쁘디예쁘게 잘 지키며 살고 계신 것 같아요. 특별히 애쓰지 않아도 특유의 밝은 분위기로 아이의 ‘장애’가 별거 아닌, 그저 평범한 걸로 만들어 버리는 재주를 갖고 계세요. 여기에 이런 사람이 있다, 알리고 싶어요.    


2022년 6월, 육퇴를 마친 밤늦은 시각, 지희 님과 내가 초췌한 몰골로 줌을 켜고 만났다. “애들은 다 잠들었나요?”로 서로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건 3년 전 여름. 아이의 장애를 알고 SNS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이런저런 연유로 장애아이 엄마 몇몇이 함께 장애인 무용제를 보러 갔었다. 그때 이후로 우리는 독서모임을 함께 하며 지속적인 교제를 해 왔는데, 만날 때마다 나는 그가 참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느꼈다. 밝고 사랑스러운 목소리, 맑은 눈웃음, 다정한 말투로 주변 분위기를 환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매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흔히들 생각하는 ‘장애아이 엄마’의 우울함과 그늘, 삶에 찌든 고단한 모습이 그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어쩜 이렇게 표정이 해맑고 예쁠까? 나는 진작에 잃어버린 소녀 적 미소를 여전히 장착하고 있는 그를 이 글에 초대하고 싶었다.




#1. 아이들을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 장애아이를 낳다


나: 자기소개를 좀 해 주세요.

지: 요리하기를 좋아하고 애 키우며 육아하는 게 나름 적성에 맞다고 자부하는 서른여덟 ‘짤’ 동안 아줌마 김지희입니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장애를 가진 7살 훈이와 세상에 온 지 1년 조금 넘은 비장애 윤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나: 하하. 맞아요. 지희 님 진짜 육아를 어쩜 그렇게 잘하시는지... SNS 보면 진짜로 애들 밥도 너무 예쁘게 정성스럽게 잘 만들어 주시고, 애들도 너무 예쁘게 윤이 나게 잘 케어해 주시고, 참 사는 모습이 이렇게 예쁜 것도 능력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지: 제가 어릴 적부터 원래 아가들 되게 예뻐했었어요. 또 애들도 그걸 알아 가지고 나를 너무 잘 따르고, 사람들이 너한테 무슨 (아이들이 좋아하는) 냄새가 나나 보다 할 정도로 애들이 저를 좋아하고 저도 애들을 좋아하고요. 그러다 보니 대학도 자연스럽게 보육학과에 진학하게 됐고 사회복지도 같이 전공하고 계속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다가 이제 훈이를 만나게 됐죠.

나: 그렇군요. 저랑 반대네요. 저는 저도 애들을 별로 안 좋아하고 애들도 저를 안 좋아했는데, 하하. 훈이를 만나기 전부터 워낙 밝고 사랑스러운 사람이셨나 봐요.

지: 아, 꼭 그런 건 아니고요. 정말 그냥 평범한 가정에서 부모님 말 잘 듣고 그냥 평범하게 굴곡 없이 살아오다 보니, 생각보다 제가 은근 소심했어요. 변화를 두려워하기도 하고, 그냥 주어진 울타리 안에서 평탄하게 조용하게 사는 게 가장 좋지 않나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뭔가에 크게 도전하지도 않고 작은 테두리 안에서 살았던 사람? 그랬던 것 같아요.

나: 오, 전에는 좀 소심하고 변화를 두려워하고 살던 세계에서 조용하게 사는 것을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그럼 어떻게 보면 훈이를 만난 게 인생에서 최고로 변화의 폭이 큰 사건이었겠네요. 살던 세계를 완전히 뒤흔드는 사건이었을 테니까요.

지: 그렇죠. 훈이 만나고 제가 엄청나게 변화됐죠. 원래 밝은 성향인 것은 그대론데, 그때랑 지금은 제가 많이 달라진 기분이 들어요. 예전엔 별로 자신감도 없고 뭐 진취적이지도 않고 그랬는데, 장애를 가진 훈이를 낳고는 제가 용감하게 세상으로 나갈 수밖에 없더라고요. 비장애아이를 키울 때도 마찬가지지만 장애아이를 키우면서는 더더욱 끊임없이 선택의 상황에 놓이잖아요. 훈이는 또 뱃속부터 아픈 걸 알고 낳았고, 낳자마자 백일도 안 돼서 큰 수술을 하고 돌 때까지 수도 없이 병원 생활을 너무 많이 했으니까요. 처음엔 너무 정신이 없고 우울하고 내가 육아를 하는 게 아니라 병원만 따라다니는 기분이고 막 힘들기만 했는데, 훈이가 돌 지나고 어느 순간, 제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아이가 평생 이렇게 장애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거면 내가 빨리 받아들이고 아이를 위해 좋은 걸 줘야지 싶었어요. SNS도 그때 시작했고요. 우리 아이가 이렇게 존재만으로 빛나는 아이다, 보여주게 된 거죠. 엄마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제가 많이 성장한 것 같아요. 



#2. 하지만 여전히 잔잔하게 살아가는 사람


나: 처음에 정말 힘든 시간 보내셨네요. 그래도 훈이가 지금은 진짜 건강해 보여서 좋아요. 그리고 지희 님 진짜 유명인도 아니고 거기서 장사를 하는 것도 아닌데 SNS 순수 팔로워가 2천이 넘잖아요. 그만큼 지희 님과 훈이, 윤이의 일상을 예쁘다 느끼고 계속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데요. 지희 님 피드를 들여다보면 정말로 아이의 장애가 삶의 아주 작은 일부분일 뿐 그것이 지희 님의 일상을 뒤흔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지: 맞아요. 실제로 훈이랑 함께 하는 일상이 행복하고요. 또 훈이만 있을 때도 행복했지만 요즘은 윤이가 태어남으로 해서 더 꽉 찬 행복을 느껴요. 물론 애가 둘이 되니까 시간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힘에 부치는 건 사실인데 진짜로 육아가 체질에 맞기도 하고 너무 행복합니다.

나: 저는 지희 님의 그런 부분이 장애인 가족은 무조건 힘들고 우울할 것이다 생각하는 이들의 편견을 깨 준다고 생각하거든요.

지: 그렇죠. 힘든 부분이 왜 없겠어요. 게다가 저는 진짜 무탈하게 살아온 사람이고 내가 크게 좌절해 보거나 슬퍼해 보거나 내 인생을 좌지우지할 만큼 큰 일을 겪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니까요. 아, 예전에 20대 때 친구랑 점집을 간 적이 있는데, 그때 거기서 그 무당도 저한테 그랬어요. 너는 이런 데 다니지 말라고. 니 인생은 그냥 무난하니까 점 같은 거 볼 필요 없다고요. 너는 너무 무난해서 곡선으로 따지면 그냥 이렇게 굴곡 없는, 평평한 곡선을 그리며 살게 될 거라고요. 근데 저도 그런 줄 알다가 훈이 낳고 무난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된 거죠. ㅎㅎ 그때 당시에는 그 무당 돌팔이네, 족집게 아니네, 나한테 이렇게 심한 굴곡이 있는데 그 사람이 잘못 봤네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인생의 이런 잔잔한 패턴은 나 스스로가 만들어 가면서 살고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됐어요. 굴곡이 크게 있어도 그걸 내가 잔잔한 걸로 만들면 되는 거예요. 무당이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니고, 나는 나 스스로가 내 인생에 어떤 일이 생긴다고 해도 그걸 이렇게 잔잔한 패턴으로 바꿔서 살아가게끔 그런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구나, 그렇게 생각해요. 

나: 오, 나 지금 지희 님한테 반했어요. 맞아요. 인생에 굴곡 없는 사람이 어딨어요? 지희 님은 그 굴곡을 잔잔한 패턴으로 바꾸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고요.

지: 그렇죠. 누구나 어느 정도의 굴곡은 있되, 그거를 나 스스로가 별 거 아닌 걸로 만들고 잘 이겨낼 수 있으면 그게 그냥 무난한 삶이지 않을까요.  



#3. 돌봄샘, 내 인생을 지켜주러 온 나의 구원자


나: 그런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큰 굴곡을 잔잔한 패턴으로 바꾸는 힘.

지: 많이들 하는 이야기지만 나 스스로가 행복해야 내 아이도 행복한 게 진리 같아요. 내 아이가 행복하려면, 내 남편이 행복하려면 '우선 내가 행복해야 돼!!'라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어요. 그래서 훈이의 장애를 받아들이고 나서 가장 노력하려고 했던 게 내가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거였어요. 제가 전업 맘이고 일도 안 하는데 훈이 두 돌 때부터 일찌감치 돌봄 제도(중증장애아동돌봄서비스)를 이용하고 있거든요. 사실 주변에서 걱정 되게 많이 했어요. 이 작은 아이를, 게다가 아픈 아이를 어떻게 남의 손에 맡기냐고, 엄마도 남편도 걱정을 많이 해서 그게 좀 힘들긴 했는데, 막상 맡기고 나니까 정말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 생겨서 너무 좋은 거예요. 

나: 맞아요. 돌봄의 손길 진짜 필요하죠. 나만의 시간 있어야 해요.

지: 많은 시간은 아니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거 내가 하고 싶은 걸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생기는 거잖아요. 막 혼자서 영화도 보러 가고, 네일도 받으러 가고, 그러면서 아! 나 너무 행복해, 나 오늘 이렇게 행복했으니까 집에 가서 내 가족한테 이 행복한 에너지를 전해줘야지 이런 마음도 들고요. 남편도 처음에 걱정했는데 막상 내가 행복해하는 걸 보고 본인도 행복해하고, 내 좋은 기운이 가족에게,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해져서 다 같이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우리가 돌봄샘을 너무 잘 만나 가지고 막 주말에도 오시겠대요. 남편이랑 가서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데이트하고 오라고요. 그러니까 이젠 남편이 더 맛을 들여 가지고 주말에 돌봄샘 언제 오시나 기대를 하더라고요.

나: 돌봄샘을 만난 게 지희 님에게도 남편에게도 굉장히 좋은 자극이 되었네요.

지: 저는 어린 장애아이 키우는 엄마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아픈 아이 맡기는 거 두려워하지 말고 돌봄제도 꼭 이용하라고요. 저는 이게 꼭 제 시간과 행복을 지키기 위한 것뿐만이 아니라 '장애아이의 돌봄'에 대한 시야를 넓히는 데도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제가 훈이를 계속 혼자 끌어안고 우리 세 가족만의 작은 울타리 안에서 키우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문을 열었잖아요. 그러면서 여기에 좋은 사람, 새로운 사람이 한 명 두 명 이렇게 개입이 되면서, 이 아이를 돌보는 게 더 이상 우리들만의 문제가 아닌 게 되는 거죠. 아이를 사회에서 함께 키워주고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돼요. 훈이로 인해서 우리가 늘 슬퍼하고 낙담하지 않고 우리만의 행복을 찾아가는 방법이 있다는 걸 저는 진짜 경험으로 증명했으니, 다른 엄마들, 특히 어린 장애 아기 키우는 엄마들도 용기 내서 돌봄제도 이용하고 조금이라도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면 좋겠어요. 



#4. 나와 너, 우리의 갓생을 위하여


나: 지희 님은 지금 갓생을 살고 계신다고 생각합니까?

지: 저는 훈이 낳고도 한 번도 불행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윤이라는 반짝반짝하는 아이가 하나 더 태어남으로 해서 지금은 정말 다 가진 느낌이에요. 윤이가 자라는 게 아까워서 하나 더? 이런 생각을 할 정도로요. 원래도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내 아이들을 키우며 난 진짜 육아가 체질이다, 너무 행복하다 생각하죠. 그런 게 갓생이라면 갓생입니다.  

나: 하나 더? 아이고, 저는 절대로 못 하겠지만 지희 님은 왠지 하나 더 키워도 잘 해내실 것 같아요.

지: 사실은 윤이한테 의지할 만한 비장애형제를 하나 더 만들어주고 싶기도 해서요. 장애, 비장애 아이들 키우는 부모들이 다 똑같이 하는 걱정이 부모가 죽었을 때 비장애아이가 겪어야 할 장애 형제에 대한 돌봄 부담이잖아요. 윤이를 위해 하나 더 낳고 싶기도 한데, 이제 나이도 있고 ㅎㅎㅎ, (아이 키우는 데) 돈도 너무 많이 들어서 포기했어요.

나: 맞아요. 저도 생각 안 해 본 건 아니에요. 그런데 저는 큰애가 비장애고 둘째가 장애다 보니 더 어린 작은애를 하나 더 낳는 건 큰애한테 당장은 더 미안한 일이 되겠더라고요. 암튼 그래서 전 바로 접었죠, 하하하.

지: 그럴 수도 있겠네요. 암튼 지금 행복한 것만 보면 갓생이기는 한데, 앞에 인터뷰한 J님처럼(전편 참고) 막 열심히 살고 있지는 못한 것 같아요. 워낙 태생이 밝고 성격이 둥글둥글하다 보니 '투쟁' 이런 게 좀 어렵기도 하고요. 하지만 훈이 낳고 당장에 피부로 와닿는 문제들이 있으니까 저도 부당한 일에는 목소리를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 저희 아파트에서 장애인주차구역에 쓰레기를 쌓아두는 문제로 민원 제기해서 문제를 해결한 일이 있었거든요. 전에는 문제가 있어도 나서서 말하거나 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말하지 않으면 누구도 먼저 알아주지 않는다는 걸 알아요. 같이 독서모임 하면서 다른 분들한테도 많이 배우고 자극받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윤이가 어려서 독서모임에 성실히 참여하지 못하고 있긴 한데 이제 슬슬 다시 책도 꺼내 보려고 해요. 윤이 어린이집 적응하면 복직하는 것도 계획해 보고 있어요.

나: 아이가 어릴 땐 물리적으로 시간이 정말 없죠. 지희 님 지금 정말 잘하고 계시고, 지희 님한테 자극받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꼭 기억해 주세요. 복직은 무조건 응원합니다.


* 인터뷰이 지희님 인스타그램: https://instagram.com/hooyou._.mom?igshid=YmMyMTA2M2Y= ​


너무나 평범해서 특별한 그런 사람이 있다.
본인은 무난하고 평범해서 이야깃거리가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하지만, 그의 인생을 그렇게 무난하게 만든 것이야말로 그가 가진 대단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훈이와 함께 세상에 나아가며 그의 인생 곡선은 어쩌면 앞으로 더 많은 굴곡을 그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당장 내년에 학교 입학을 앞두고 근처에 특수학교가 없어 고민하고 있는 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앞으로 또 어떤 큰 파도가 와도 그는 그것을 재료로 또 예쁜 이야기를 써 내려갈 것임을. 그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있음을 나는 안다.

하지만 개인의 밝은 에너지만으로 그 평범함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행복을 지켜 준 것 중 하나는 많은 선배 부모들이 국가와 투쟁하여 얻어낸 '중증장애아동 돌봄서비스 제도'였다.
평범한 국민이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잘못이 아닌 일로 예기치 못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때, 그 일로 인해 갑자기 그의 인생이 요동치게 되었을 때, 국가는 그 국민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안전하게 보호할 의무를 가진다. 그런 국가에서만이 국민은 안심하고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펼쳐 놓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갓생을 살고 싶다.
장애아이 부모도 꿈이 있고 더 즐겁게 더 충만하게 인생을 살고 싶다.
우리의 갓생은 우리 혼자만의 힘으로는 지킬 수 없다.
국가가, 사회가 안전하게 지켜주기를 바라며, 우리는 또 이렇게 목소리를 내고 있다.
듣고 있나요?  
매거진의 이전글 더 멋진 나를 만들어 같은 라운드 테이블에 앉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